현실이 된 혐오사회, “우리는 혐오를 멈추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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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된 혐오사회, “우리는 혐오를 멈추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5.01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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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혐오의 과학: 혐오 범죄를 일으키는 인간 행동의 어두운 비밀 | 매슈 윌리엄스 지음 | 노태복 옮김 | 반니 | 496쪽

 

혐오는 이제 특수한 한 개인의 일탈로 볼 수 없다. 알게 모르게 일상 속에서 잦아진 혐오 표현과 행동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편견과 혐오의 아슬한 경계를 오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사회 분열적인 발언은 곳곳에서 심심찮게 들려오고, 소셜미디어는 이를 확대 재생산하며 혐오를 부추긴다. 이대로 계속된다면 우리도 머지않아 서구 사회처럼 혐오 폭력과 범죄로 얼룩진 일상을 살게 될지 모른다.

이 책은 신경과학, 심리학, 사회학, 통계학 등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통해 한 개인이 편견에서 혐오 행동(범죄)으로 넘어가는 티핑포인트를 포착한다. 궁극적으로 ‘혐오를 어떻게 멈추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이 시도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으려 할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혐오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인간 근원에서부터 탐구한다.

저자는 혐오 범죄 사례를 깊이 파헤치면서 피해자들과 가해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전문가들과 대화하며 뇌 스캔 등 최신의 과학적 수단을 활용한다. 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편견에 따라 행동하는지를 하나씩 단계별로 파헤쳐 나간다. 이는 편견에 사로잡힌 사고가 어떻게 혐오에 가득 찬, 때로는 치명적인 행위로 이어지는지 인간 마음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들여다보는 여정이다. “인간은 혐오를 타고 날까?”, “혐오를 멈추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여정에서 발견하는 인간의 본 모습은 우리가 왜 사회를 개혁하고 사회 제도들을 개선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일깨워준다.

왜, 사람들은 어떤 시간 어떤 장소에서는 조화롭게 잘 지내다가, 다른 시점과 장소에서는 분열적인 상황이 되어 대량학살도 불사하는 지경이 되는 것일까? 저자는 누구나 혐오 행동을 저지를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오직 일부만이 충분한 촉진제에 노출되어 혐오를 분출한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 혐오 범죄를 저지르려면 어떤 요건들이 필요한지, 혐오 범죄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한테로 급격하게 펴질 수 있는가를 밝히는 것이 바로 범죄학자로서 저자가 풀어야 할 숙제이자 소명이다.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먼저 개별 혐오 범죄 사건들을 조사한다. 혐오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본 다음, 혐오라고 규정할 기준이 무엇인지 그리고 혐오가 사회에 얼마만큼 존재하는지 알려주는 관련 통계 수치를 살펴본다. 이어서 혐오하는 마음이 모든 인간에게 공통되는 특징들인 신체적, 심리적 기본 구조와 사회화 과정 등에 의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깊이 파헤친다.

2부에서는 편견을 억누르는 우리의 능력을 감소시키고, 혐오를 촉진시키는 요소들에 대해 탐구한다. 혐오 행동을 벌인 이들의 개인적 역사를 탐구하며, 그들의 트라우마와 유년기에 경험한 깊은 개인적 상실이 어떻게 인생의 나중 시기에 혐오에 젖은 폭력적 방식과 연결되는지 살펴본다. 특히, 좌절을 겪은 개인이 극단주의 집단과 같은 정체성 집단과 융합할 때의 문제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각종 온라인 혐오 발언의 위험성을 철저히 파헤친다. 이러한 논의를 거친 후 마지막으로 무의식적인 우리의 편견이 차별과 혐오 행동으로 옮겨지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조치들을 일곱 단계로 제시한다.

책에서 다루는 여러 혐오 범죄 사건의 실상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미국의 식당에서 식사 중이었던 한 인도인은 퇴역 군인(백인)이 쏜 반자동소총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그가 죽기 전 들은 말은 “내 나라에서 나가”였다. 일본의 장애인 요양원에서 한밤중에 열아홉 명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자는 살인을 저지르기 전 트위터에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비참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이 과연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글을 남겼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레즈비언을 ‘치료’ 대상이라고 여기는 젊은 남성이 레즈비언을 강간하고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저자는 세계에서 벌어진 수많은 혐오 범죄를 조사하면서 무엇이 가해자들을 혐오에 빠지게 했는지 그 요소들을 주의 깊게 추출한다. 그리고 혐오 행동을 일으키는 요인들은 어느 것도 절대적이지 않다고 결론 내린다. 삶의 상황이 달랐고, 이 책에서 다룬 구체적인 촉진제에 덜 노출되었더라면 가해자들도 혐오의 길을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혐오를 방지하는 일곱 단계’는 그러한 촉진제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조치들이다. 저자의 말처럼 “범죄자들을 사악한 존재들로 치부해버리지 않고, 그런 종류의 행동이라도 합리적인 대처가 가능하다고 여길 수 있게” 될 때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것이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20년 전 자신의 성정체성 때문에 낯선 남성들에게 폭행당했던 기억을 꺼낸다. 그날의 충격은 기자에서 범죄학자로 저자의 진로까지 바꾸게 했다. 그런 폭행은 일종의 메시지였고, 그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몇 날 몇 주를 곱씹어보았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정체성 때문에 폭행을 당한 이들은 대체로 ‘왜 하필 나를?’이라고 묻지 않는다. 왜 나인지 알고 있으니, 그게 더 해롭다. 그게 마음을 온통 짓이긴다.”

어느 누구도 타인의 정체성을 비난할 권리는 없다. 정체성 때문에 고통 받는 이들의 심정을 이해해보기 위해 시간을 내보고,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는 것부터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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