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보도에 대한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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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보도에 대한 아쉬움
  • 신순철 한동대·언론
  • 승인 2022.05.0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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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1962년, 사진작가 아버스(Diane Arbus)는 뉴욕시의 센트럴 파크에서 어떤 어린이를 보고 깜짝 놀란다. 친구들과 해맑게 노는 그 어린이가 장난감 수류탄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장난감이라지만 어린이가 살상 무기를 들고 노는 것에 놀란 아버스는 그 어린이를 촬영했고, 그 사진은 당시 미국에 큰 반향을 일으킨다. 

1962년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이다. 미국의 방송에서는 연일 베트남의 전황을 생생한 화면과 함께 보도했다. 베트남 전쟁은 인류 최초로 (생중계는 아니었지만) TV로 중계된 전쟁이었다. 전쟁은 잘 팔리는 보도 상품이었고, 미디어는 열심히 전쟁이라는 상품을 팔았다. 그러나 미국의 미디어와 기성세대들이 간과한 문제가 있으니 그 전쟁을 미디어로 접한 어린이들이 전쟁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느냐는 것이었다. 그 문제의 해답이 아버스가 촬영한 사진 한 장에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1991년, <사막의 폭풍, Operation Dessert Storm>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다. 이 전쟁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생중계된 전쟁이었다. 실시간으로 이라크의 바그다드 상공을 날아가는 섬광탄과 각종 미사일을 설명하면서 미국 방송사의 앵커들은 “아름다운 불꽃놀이 같은 불빛”, “크리스마스트리를 연상하는” 등의 표현을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 

여전히 전쟁은 잘 팔리는 뉴스 상품이었다. 이 전쟁을 통해 미국 국방부가 기자단 풀을 운영하여 사실상 언론을 통제한 사실이나, 공습 시간이 미국의 황금시간대인 저녁 8시 전후에 시행됐다는 사실이나, 미군의 폭격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얼마나 발생했는지 등은 언론이 보도하지 않았다. 

유학 시절 <전쟁과 미디어>라는 강의를 수강한 적이 있다. 베트남 전쟁에 종군기자로 취재에 임한 경험이 있는 담당 교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전쟁을 보도하는 기자는 절대로 전쟁을 미화해서는 안 된다”라고. 그러나 전쟁이 터지면 가장 먼저 희생당하는 것은 진실이라고 하지 않던가? 왜 전쟁은 일어났는지, 전쟁으로 우리가 얻은 게 무엇인지, 전쟁이란 것이 얼마나 끔찍한 대살육의 현장인지, 그래서 인간성을 철저히 말살하는 반인륜의 잔혹 행위인지 언론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그저 어느 쪽이 이기고 있고, 어느 쪽이 지고 있는지, 마치 스포츠 경기의 점수를 알려주는 것처럼 전황을 재밋거리로 전달하는 데 더 열심이었다.

2022년, 러시아는 결국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 그리고 또다시 전쟁은 잘 팔리는 뉴스 상품이라는 점을 국제사회는 다시 목도하고 있다. 오늘은 누가 어디를 점령했고, 누가 얼마나 많은 전차를 잃었는지를 뉴스는 거의 실시간으로 우리에게 알려준다. 누구는 침략자를 비난하고, 누구는 침략당한 자를 비난하고, 또 누구는 둘 모두를 비난한다. 그렇게 강 건너 불구경하듯 전쟁을 바라보고, 전쟁에 대해 각자의 논평을 하고 있지만 사실 전운의 그림자는 전 지구를 서서히 뒤덮고 있다. 전쟁 자체를 중단하려는 노력은 어디서도 찾기 힘들다.  

1960년대의 베트남 전쟁이나 1990년대의 걸프전 당시 우리나라 미디어는 제대로 된 종군기자를 파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의 언론이 보도한 거의 모든 내용은 그냥 외국의 언론사로부터 공급받은 타급 기사였다. 심지어 실시간으로 미국의 뉴스 전문 채널을 연결하여 그 내용을 그대로 동시통역하는 것을 언론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언론의 기능이 통역의 수준에서 멈춘 것이다.

이번에 우리나라의 어느 방송사에서 전쟁을 취재하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했다. 그러나 그 결과물은 참으로 초라했다. 우크라이나 어느 지역의 슈퍼마켓에 가서 물품이 동났다는 내용을 보도하는 수준에 그치고 말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뉴스 꼭지에 이어서 중국이 ‘제로 코로나’를 위해 상하이를 봉쇄했고, 그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주민들이 식료품 수급이 안 돼 고통을 겪는다는 보도가 따라온다. 전쟁은 그저 식료품 조달이 어려운 정도로 인식하는 일이 생길까 걱정이 된다면 지나친 기우일까? 


신순철 한동대·언론학

미국 조지아 대학교(University of Georgia) 언론학 박사. 제임스 콕스 국제언론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2003년부터 한동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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