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영웅의 정치가 그리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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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영웅의 정치가 그리운 이유
  • 고성빈 논설위원/제주대학교
  • 승인 2022.05.01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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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빈 칼럼]

가끔 그려보는 역사 이야기가 있다. 임진왜란이 끝이 난 후, 백성들의 엄청난 지지를 등에 업은 이순신 장군이 무능한 왕과 신하들을 제압하고 정권을 장악한다. 두 번 사양한 후에 세 번째 천명을 받아들여 ‘신조선’의 제위에 등극한다.

그는 여느 왕들과는 달리 신속하게 문무 대신들을 장악한 후에 국가통합을 위해 막 출범하려던 일본 에도막부를 향해 ‘거북선 함대’를 총동원하여 임란의 전쟁배상금을 요구한다. 이에 놀란 쇼군은 1억 냥의 배상금을 지불하면서 ‘한일 상호불가침협정’을 요구한다. 양국은 평화협정을 맺고 제한된 범위의 교역을 하기로 약속한다.

계속하여 신조선은 국력을 가다듬은 후에 명조를 향해 마침 만주에서 세력을 모으고 있던 누르하치의 만주족을 같이 제압하자고 요청한다. 유약했던 구조선 왕들과는 달리 직접 군을 통솔하고 출병한 신조선의 태조 이순신의 군사적 능력을 너무 잘 알기에 명조도 자신감을 가지고 공동출병하여 만주족의 항복을 받는다. 신왕조는 명조를 향해 과거 ‘군신의 예’를 폐하고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세울 것을 요구하고 양국은 평등한 동맹관계를 확립한다. 만주 지방은 반분하여 각자의 영토에 편입한다. 이로써 신조선은 고구려의 고토를 회복하고 새로운 동아시아 평화의 시대를 주도한다.

아쉽게도 이렇게 역사는 흘러가지 않았다. 이순신은 자신의 사고를 조선을 넘어 동아시아로 넓히지는 않았다. 충군애국과 효순부모(孝順父母)의 훈작인 충무공(忠武公)으로서 조선의 역사에 남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그런데 왜 나는 이런 상상을 하는 것일까.

역사상 가장 유리한 조건인데도 불구하고 패배를 당한 진보정치의 무능함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삼국지에서 형주의 유표는 죽어 가면서 유비에게 영지를 받고 지켜달라고 했지만, 남은 가족들은 유비를 경계하여 조조에게 항복하고 만다. 조조는 이들에게 형주의 군사력이면 나에게 대항해도 되는데 한심하다며 호통을 친다. 작금의 진보가 이 모양이다. 싸우면 이길 수 있는데도 싸우는 게 무서워 덜덜덜거리며 보수에게 공손하게 항복문서를 갖다 바친 것이다. 

세종대왕이 착하기만 해서는 한글도 창제할 수 없었고, 천민 장영실을 임용하지도 못했고, 4군 6진을 개척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내내 보수적인 신하들의 맹렬한 반대(위협?)에 부딪히면서도 역사에 길이 남을 ‘정치적 결단’을 굽히지 않았다. 

지도자는 개혁의 초심을 잃고 어중간 타협으로 빠져드는 순간부터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망친다. 지난 5년간 역풍이 무서워서 해야 할 개혁을 머뭇거렸던 지도자와 정부의 존재가치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어설픈 협치 타령에 휘둘려 지난 몇 년간 촛불 국민은 모멸감만 잔뜩 안고서 지냈다. 고작 내린 정치적 결단이라는 게 경제원칙을 교란한 재벌을 석방하고, 적폐 대통령 사면해주는 것이었나? 맙소사, 이게 국민통합이라니? 저 옛날 쿠데타를 사후 승인해 준 얼간이들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촛불 국민이 지지한 유비가 사실은 유선이었다는 게 웃프다. 

나는 해방 이후 가장 뛰어난 정치인으로 김대중을 꼽는다.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그는 젊은 시절 ‘건준’에 가입한 후 ‘빨갱이’ 소리를 들으면서도 ‘진보적 개혁의 초심’을 평생 잃지 않았다. 한국전쟁 이래 최대의 국난이었다는 IMF 금융대란을 최단기에 극복하고, 반대가 극심했던 문화시장을 개방하여 오늘날 한류의 세계적 대약진에 초석을 놓았다. 

김대중은 한반도가 강대국에 의존하지 않고 자주적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진보 정치의 거인이었다. 한반도 역사에서 주변 강국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자주성을 발휘한 지도자는 몇 안 된다. 당 태종을 비웃은 연개소문, 명 태조의 오만한 서신을 던져버리고 요동을 정벌하자던 최영. 그리고 김대중은 미국과 중국이 떨떠름하게 쳐다보는 가운데 남북정상회담으로 꽉 막힌 한반도의 물줄기를 텄다. 해방 후, 그저 미국 눈치 보기와 중국과 러시아 무서워하기에 대한 보상심리로 북한 증오하기에는 용감하게 몰두했던 대통령들과 정치꾼들과는 그릇의 크기가 다른 인물이었다. 심지어 당시는 여소야대의 형국이었다. 

안팎으로 답답한 심정으로 지내는 요즘, 평소에 자주 하는 말을 다시 한번 하면서 글을 닫는다. 이른바, 우리가 주체적으로 북한과 대화하자는 것은 이미 철 지난 주체사상을 숭배해서가 아니다. 그들의 미사일 불장난에도 불구하고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선의 전략”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남북이 불화하면 할수록, 주변에 속이 시커먼 나라들에 의해 더욱 “이용만 당하기 좋은 상태”가 되는 것을 간파하기 때문이다.


고성빈 논설위원/제주대학교·정치학

런던대학(SOAS)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제주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아시아 사상과 역사논쟁에 흥미를 가지고 현재 동아시아의 사상사적 문제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 근현대사 역사의 현장』(공저), 『동아시아 담론의 논리와 지향: 비판이론의 탐색』이 있으며, 그 외 동아시아담론, 중국, 일본, 티베트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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