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나각산 숨소리길…산길과 강길, 들길로 이루어진 MRF 이야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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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나각산 숨소리길…산길과 강길, 들길로 이루어진 MRF 이야기길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22.04.30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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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의 여행이야기]_ 경북 상주 낙동리 나각산 숨소리길

 

                        나각산 정산 나각정에서 북쪽으로 구름다리와 낙강정이 한눈에 잡힌다. 

낙동강이란 ‘낙양의 동쪽에 흐르는 강’이란 뜻이다. 낙양은 지금의 상주 땅을 말한다. 곧 ‘상주의 동쪽에 흐르는 강’이 바로 낙동강이다. 상주의 가장 남쪽에 낙동리가 있다. 부산에서 강을 거슬러 소금배가 올라오고, 버스를 실은 큰 나룻배가 강을 오가던 낙동 나루의 고을 낙동리. 낙동강에 접한 마을이 전부 몇 개나 되는지는 세어보지 않았지만 강 이름 ‘낙동’을 마을 이름으로 삼은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했다. 사람과 물자 성하던 옛날만큼은 아니지만 고요한 마을에 들어앉은 파출소와 중학교, 다양한 가겟집들과 2층짜리 제법 번듯한 정류소가 오래된 영화로움의 바통을 이어 쥐고 가만 섰다.   

 

   나각산 정상으로 향하는 나무계단을 오르다보면 암반위에 탄탄하게 올라앉은 테라스 형 전망대가 나온다. 

낙동리 마을 북쪽에 살짝 솟은 산이 나각산이다. 소라 모양이라 나각(螺角)이다. 아주 아주 오래 전 낙동리는 강이었다 한다. 어느 날 땅이 흔들리고 융기해 생겨난 것이 나각산, 이어 긴 시간 풍화되고 침식되어 생겨난 구릉성 평지가 마을이 들어앉은 땅이다. 마을 배면의 들을 가로질러 산으로 향한다. 무리지어 피어난 제비꽃을 오랜만에 본다. 논에는 아직 벼 그루터기들이 줄지어 서 있다. 밟으면 뽁뽁이 터지는 소리가 났었지, 옛 생각이 난다. 산 가까이에는 축사가 여럿이다. 순한 눈으로 바라보는 우리 소들과 실컷 눈 맞춤하다보면 곧 나각산 입구다. 
 

      전망대에서 본 낙동강과 낙동리. 상주와 의성을 잇는 낙단대교와 낙단교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뭔 바람내가 이리도 달까. 유별나게 단 바람에 절로 숨이 깊어진다. 상주 낙동리의 나각산. 해발 240m 정도의 만만한 산이다. 처음부터 바람이 달았던 것은 아니다. 초반에는 밭 거름 냄새와 한우 축사의 시큼한 향이 사람 좋아하는 강아지마냥 졸졸 따라 왔었다. 그러다 아마 산허리께 즈음이었을 게다. 바람이 달아진 것은. 나뭇가지 사이로 마을의 집들이 흘깃 보이고 영덕으로 향하는 고속도로가 산 밑동을 뚫고 휑하니 달려가는 모습이 훤한 그 즈음. 

 

      구름다리로 가는 아슬아슬 소나무숲길. 나각산 소나무들은 모두 날씬하고 춤추는 듯 굼실굼실하다. 
                                       구름다리 입구. 하늘문 통과하면 출렁출렁 구름다리다. 

등산길은 한동안 소나무 숲길이다. 날씬한 몸들이 굼실굼실 춤추듯 솟아 있고 좁장한 능선길이 척추처럼 나아간다. 길에는 동글동글한 차돌이 널려 있다. 산이 강이었던 시절의 강돌들이다. 바람은 달고 새 소리 맑다. 새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처음으로 만나는 것은 팔각정자. 마른 솔잎 쌓인 정자에 새 한 마리 쉬고 있다. 잠시 후 조르라니 줄 선 운동기구들을 지나치면 전망대가 있는 정상까지 200미터를 앞두고 나무계단이 시작된다.  

 

     해발 240.2m 나각산 정상 표지석과 나각정. 자갈콘크리트 덩어리처럼 강돌이 박혀 있는 역암 봉우리다. 

나각산 정상부는 대부분 바위다. 큼지막한 강돌이 박혀 있는 역암이 주를 이루는데, 마치 자갈콘크리트 덩어리 같다. 예전에는 오르기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계단이 설치되어 접근이 쉽다. 215개의 계단을 오르니 테라스 형태의 전망대다. 낙동강과 낙동리, 상주와 의성을 잇는 낙단대교와 낙단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백 미터를 더 오르면 나각산 정상이다. 정상에는 ‘나각산 해발 240.2m’라고 새겨진 표지석과 함께 나각정 전망대가 서있다. 사방이 막힘없이 시원하다. 굽이굽이 낙동강 물줄기와 너른 들판이 와락 달려들고 팔공산 북쪽 기슭에서 출발한 위천이 낙동강과 만나는 모습도 보인다. 멀리 아련한 것은 속리산 천왕봉인가. 북쪽 조금 낮은 봉우리로 이어진 구름다리와 아슬아슬 올라앉은 낙강정 전망대도 한눈이다. 하하 호호 구름다리 위 사람들의 소리 가깝게 들린다. 

 

                   나각산 구름다리. 소라를 닮은 두 암봉을 연결한 길이 30m의 출렁다리다.  
              나각산 낙강정. 팔공산 북쪽 기슭에서 출발한 위천이 낙동강과 만나는 모습이 보인다.

나각산은 원래 부러 찾는 이 없는 동네 야산이었다. 이곳에 사람들이 찾아들기 시작한 것은 상주의 산과 강과 들을 아우르는 ‘MRF(Mountain-River-Field)’길이 만들어지면서 부터다. 총 13개의 코스 중 낙동리 들판을 지나 나각산을 넘어 낙동강을 끼고 걷는 오늘의 길은 호젓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숨소리길’이다. 소라껍데기에 가만히 귀를 대면 물결소리인 듯 숨소리가 들려온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숨소리길’은 낙동강 먹거리촌을 출발해 낙동리, 등산로, 정상, 구름다리, 낙강정 전망대, 마구할멈굿터, 낙동강 자전거길, 장승백이, 낙단보를 거쳐 먹거리촌으로 원점 회귀한다. 총 길이는 7.7㎞다. 이름 고운 ‘숨소리길’, 그러나 현실은 헉헉 숨소리 가쁘다. 설렁설렁 쉬운 산이라 누가 말했던가. 몸은 벌써 삐걱삐걱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니 산 낮다 만만하게 생각할 일 아니다. 

 

                                  낙강정 남쪽으로 보이는 나각산 정상의 나각정과 구름다리. 
마구할멈굿터. 굴속에는 강돌이 박혀 있던 흔적이 뻐끔뻐끔하고 사라진 마구할멈 대신 귀여운 돌 할매가 살고 있다.

하산길은 옛길이다. 나각산의 동쪽 사면으로 이어지는 길에 난 옛길로 나뭇길 혹은 토끼길 정도의 풍경이다. 낙강정 전망대에서 몇 계단을 내려가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머리 위로 구름다리가 지나간다. 조금 더 가면 커다란 바위에 뻥 뚫린 굴이 있다. ‘마구할멈굿터’다. 아주 먼 옛날 한 할머니가 살았단다. 할머니는 낙동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다 한다. 어느 날 할머니는 강가에서 소라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된다. ‘하늘에 사는 일곱 신선 중 가장 나이 많은 신선은 봉황 알을 먹고 젊음을 유지한대.’ 할머니는 칠월칠석날 밤 지상으로 내려온 신선들을 뒤쫓아 봉황 알을 숨겨둔 곳을 알아냈고, 몰래 훔쳐 먹은 뒤 점점 젊어지게 되었다. 봉황 알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된 신선들이 가만있을 리 없지. 신선들은 할머니를 마귀할멈으로 만들어 차돌 박힌 굴속에 살게 했다. 마귀할멈의 눈에는 굴 벽에 박힌 차돌이 봉황 알로 보였다. 할멈은 차돌을 하나씩 하나씩 빼먹다가 이가 모두 빠져버렸고,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지자 강 아래로 내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고 한다. 굴속에는 강돌이 박혀 있던 흔적이 뻐끔뻐끔하고 사라진 마구할멈 대신 귀여운 돌 할매가 살고 있다.   

 

                  하산하는 옛길. 좁은 산길이 오르락내리락하고 낙화가 한참인 참꽃들이 곱다.

마구할멈 굿터를 지나 좁은 산길이 오르락내리락한다. 길 양쪽으로 낙화가 한참인 참꽃들이 숨 막히게 곱다. 숨소리길은 낙동강 자전거길로 내려가 낙단보 거쳐 먹거리촌으로 향하는 것이 정식이다. 작열하는 봄 햇빛 피하려 자전거길 이정표를 무시했다가 길을 잃는다. 길 없는 길에서 골짜기 밭을 만나서야 마음을 놓는다. 질척거리는 밭둑을 아슬아슬 걷는 동안 한 그루 산 벚이 연분홍으로 쏟아진다. 곧 개가 짖는다. 안착이다.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대학에서 불문학을,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무가지 음악잡지 ‘Hole’을 만들었고 이후 무가지 잡지 ‘문화신문 안’ 편집장을 잠시 지냈다. 한겨레신문, 주간동아, 평화뉴스, 대한주택공사 사보, 대구은행 사보, 현대건설매거진 등에 건축, 여행, 문화를 주제로 글을 썼으며 현재 영남일보 여행칼럼니스트 겸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내 마음의 쉼표 경주 힐링여행』, 『청송의 혼 누정』, 『물의 도시 대구』(공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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