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자치경찰제의 모순(矛盾)
상태바
한국형 자치경찰제의 모순(矛盾)
  • 김순석 신라대·경찰행정학
  • 승인 2022.04.24 15: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론]

압축 성장을 통해 이룩한 산업화와 투쟁적 민주화 과정을 통해 성취한 대한민국의 자유시장경제와 민주주의는 그 찬사와 성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의 그것들에 비해 다소 성글고 불안정한 측면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 이유가 한국이 처한 독특한 역사적·문화적 환경 때문이라면 이를 ‘한국형’이라 불러도 무방할 듯싶다.

민주주의의 핵심 아이디어와 가치가 구성원들이 권력을 나누면 나눌수록 구성원 개인의 자유가 확장된다는 원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형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자치분권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한 그간의 시행착오와 노력은 치하할 만하다. 

특히, 문재인 정부 후반 들어 이루어진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이 1991년 지방자치제도 도입 이후 32년 만에 이루어진 것만 보더라도 한국형 지방자치의 성립과 발전은 결코 쉽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이러한 지방자치의 발전과정은 그대로 한국 민주주의 현대사의 단면을 함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의 추진은 자치의 본질인 ‘주민’에 집중하지 못하고 정치적 권력집중의 견제와 같은 형식논리에 초점이 두어졌고, 이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도 주민의 참여와 주도와는 별개로 중앙 의존적으로 대응해 왔다. 따라서 지방자치의 본래적 의미 중의 하나인 주민참여를 통한 주민의 이익이라는 측면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었다. 

지방자치제가 처음 시행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지방자치의 당위성과는 달리 당시 대한민국의 정치 여건과 시민의식이 지방자치를 받아들이는 데 많은 부분 부족하다는 비판적 여론이 적지 않았다는 점을 이제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지방분권이라는 거대 담론의 실천으로 자치행정과 교육자치 시행이 30년도 넘는 시간 동안 그 토대를 마련하면서 단단하게 다듬어져온 것과는 다르게 치안자치로의 자치경찰제도(municipal police)는 2021년에야 비로소 그 첫발을 딛게 되었으며 여기에서도 과거와 같은 비난과 우려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공한 선진국 대부분이 민주주의적 권력분립의 바탕 하에 정도의 차이를 두고 있을 뿐 자치경찰제를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다는 점은 제도 도입에 대한 비난과 우려를 무색하게 할 만하다. 그러나 과거 여섯 번의 정부개편을 지나오면서 표류해온 자치경찰제가 드디어 시행되었지만 현재의 한국형 자치경찰제도의 성공과 기여를 기대하는 이는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는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는 중요한 정책 중 하나가 권력기관의 개혁이고 그중에서도 검경수사권조정과 맞물려서 추진되어온 자치경찰제도는 제도자체의 본질보다는 개혁을 위한 도구로서의 의미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즉, 검경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 설치를 통해 검찰개혁을 단행한 대신 자치경찰제를 도입하여 상대적으로 강해진 경찰력을 순화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자치경찰제도의 성공적인 정착과 그로 인한 주민들의 이익은 근본적으로 누구로부터의 자치인가? 그리고 누구를 위한 자치인가? 라는 고민에서 출발했을 때 제도의 근본적인 목표에 가까워질 수 있다. 자치경찰제도는 국가 및 중앙정부로부터 조직, 인사, 예산, 통제에 대해 일정 부분 자유로운 상태로 광역 또는 기초 자치단체 수준에서 설치되어 주민들의 의사에 따라 주민지향형으로 치안활동이 이루어지도록 운영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혹자는 조금 과장해서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경찰활동’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한국형 자치경찰제도, 그 어디에도 ‘주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치경찰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자치의 본질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모순(矛盾)을 안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본질뿐만 아니라 형식의 측면에 있어서도 현재의 자치경찰제도는 자치경찰 사무를 수행할 고유 조직이 부재(不在)하여 단순하게 기존의 국가경찰 사무를 국가경찰사무와 자치경찰사무로 구분하는 데 그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 조직이나 인력도 사실은 국가경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자치경찰제도 하에서 유일한 독자 조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자치경찰위원회이나 이 역시 집행력이나 예산권이 없는 유명무실한 조직일 뿐이다. 따라서 지자체의 자치권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표면적으로는 자치경찰제도를 시행한다고는 하지만 이는 조직 구성 권한 자체를 갖지 못하는 허상(虛像)의 자치인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주민을 위한 자치경찰 사무의 효율적이고 원활한 추진에 있어서 지휘통일의 원칙에 대한 균열을 가져올 수 있으며 심지어 자치경찰위원회의 지시사항이 국가경찰 지휘체계를 거치면서 왜곡되거나 약화되는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자치경찰의 주된 목적은 주민 참여를 통한 주민밀착형 치안서비스의 제공임은 분명하다. 경찰권의 일부 지방이양이 권력화나 비민주성으로 노정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더라도 자치경찰제도 본래의 주민참여를 통한 자치성과 주민편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정부가 자치경찰제를 검경수사권 조정의 부속물로만 인식하지 말고 경찰의 범죄예방 능력강화나 주민 생활과 관련한 각 기관 간 공조강화 및 개인과 지역의 안전의식 강화와 같은 실질적이고 체감 가능한 효익(效益) 창출의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것만이 한국형 자치경찰제가 자치경찰의 주체인 주민도, 자치경찰을 담을 껍데기인 조직도, 자치경찰을 통해서 얻고자하는 알맹이도 모두 부재(不在)한 제도의 모순(矛盾)으로 남지 않을 유일한 해결책이다.


김순석 신라대·경찰행정학

신라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찰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전공은 경찰행정학과 피해자학이다. 한국안전정책학회 회장 및 한국민간경비학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신라대 입학관리처장, (사)한국피해자지원협회 부산지부장, 부산경찰청 집회시위자문위원 및 부산일보 선거토론심의위원을 역임했다. 저서로 『경찰행정학』(공저), 『경찰행정법』(공저) 『피해자학』(공역), 『범죄예방을 위한 공간디자인』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들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