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퍼의 철학’과 ‘사회과 교육’은 어떤 점에서 관련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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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퍼의 철학’과 ‘사회과 교육’은 어떤 점에서 관련될 수 있을까?
  • 정호범 진주교대·사회과교육
  • 승인 2022.04.24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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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포퍼 철학이 사회과 교육에 주는 함의』 (정호범 지음, 교육과학사, 374쪽, 2022. 03)

 

▣ 이 책은 어떤 의도에서 집필되었나?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여러 교과 중 ‘사회과’는 민주시민 양성을 목표로 삼고 있는데, 해방 이후 미군정기에 미국으로부터 도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즉 우리나라의 사회과는 도입 시기부터 현재까지 미국의 교육 이론에 의존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도 유사하다. 이 책은 미국 이론 일변도의 사회과에서 탈피하여, 사회과 교육의 이론적 지평 확장을 위한 의도로 기획되었다. 즉 이 책은 칼 포퍼(Karl Popper, 1902~1994)의 철학을 통해 사회과 교육을 재해석하고, 양자의 관련성을 탐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포퍼는 1928년에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사고심리학의 방법 문제에 관하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초기에는 주로 과학철학을 연구하였는데, 자신이 주창한 과학철학의 논리와 방법을 그대로 역사철학·사회철학·정치철학 등의 분야로 확장시켜나갔다. 그는 많은 긍정적 사례의 축적을 통해 진리가 보장된다는 귀납 논리를 배격하고, 단 하나의 부정적 사례의 발견에 의해 지식이 확장된다는 반증(falsification) 논리를 주장하였다. 그는 역발상 혹은 사고의 전환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가령, 긍정보다는 부정에, 다수보다는 소수에, 행복보다는 고통에, 선보다는 악에, 정권의 창출보다는 정권의 제거에, 급진적 개혁보다는 점진적 개혁에 초점을 두고 세상을 분석하였다. 그는 국민 다수의 ‘행복’ 추구보다도 소수의 ‘고통’받는 사람을 줄이는 것이 시급하다고 보았고, 많은 ‘선’을 추구하는 것보다도 ‘악’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국민의 지배’ 혹은 ‘다수의 지배’가 아니며, 실제로는 ‘법의 지배’를 통한 ‘소수의 지배’임을 역설하였다. 그는 좋은 정부(권력)의 ‘선출’보다도 나쁜 정부(권력)의 ‘제거’에 더 강조점을 두었다.

 이러한 포퍼의 생각은 당시 주류적 입장에서 볼 때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들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포퍼의 역발상을 통한 접근은 주류 방법론을 크게 흔들면서 과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맑시즘과 파시즘을 비롯한 독재정치와 전제정치를 배격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이와 같이 세상을 역방향으로 분석했던 포퍼의 입장과 유사하게 최근 학교교육에서는 ‘거꾸로 수업’(flipped learning)이 유행하고 있다. 우리는 기존의 이론과 관념을 진리인양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포퍼의 관점에서 본다면 절대적 진리나 영원한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저자는 우리가 그동안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왔던 사회과 교육의 이론들에 대해서도 한 번 재해석을 시도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즉 포퍼의 눈으로 사회과 교육을 바라본다면 현재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사회과 교육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의 전환이 가능할까? 저자는 이러한 생각과 문제의식으로부터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 이 책은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었나?

이 책은 포퍼의 철학 이론과 사상을 통해 사회과 교육을 바라보고 재해석하는 내용으로서, 모두 1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포퍼의 생애와 사상을 전반적으로 소개하였다. 2장부터 10장은 사회과 교육의 목표·내용·방법·평가라는 교과교육의 네 가지 구조적 요소를 포퍼의 철학과 관련지어 다루었다. 즉 2장은 사회과의 교육목표, 3장은 사회과의 내용구성, 4장부터 9장은 사회과의 수업방법, 10장은 사회과의 평가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었다. 수업방법을 다루는 4장부터 9장은, 현재 사회과에서 중점적으로 실천되고 있는 수업모형인 문제해결학습, 탐구학습, 개념학습, 논쟁 모형, 가치분석 모형 등이 포퍼의 철학과 어떤 점에서 관련될 수 있는지를 탐색하고, 포퍼의 관점에서 이들 수업모형을 재해석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포퍼의 철학 이론과 사상을 토대로 사회과의 목표·내용·방법·평가라는 네 가지 교과구조적 요소를 전반적으로 다룬 세계 최초의 저서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사회과 교육을 미국 이론 일변도의 기존 입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 포퍼 철학과 사회과 교육은 어떤 점에서 관련될 수 있나?

이 책에서 포퍼의 철학과 사회과 교육의 관련성에 관하여 다루고 있는 여러 내용 중에서, 포퍼의 과학철학과 가치분석 모형의 관련성에 대하여 제시해본다. 즉 ‘지식’ 탐구 방법론으로 제시된 포퍼의 과학철학 이론이 사회과의 ‘가치’ 탐구(value inquiry) 방법에 어떻게 관련될 수 있는지 살펴보자. 논리실증주의자들이 ‘형이상학’을 과학의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과 달리, 포퍼는 형이상학과 과학의 불가분성을 인정한다. 포퍼는 형이상학을 비판적인 논의의 대상으로 포함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실재론(realism)을 지지한다. 실재론은 우리가 보는 세계가 우리의 인식과는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교설이다. 

형이상학에 대하여 이러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포퍼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의 과학철학은 직접적으로 ‘지식’ 탐구에 관련되지만, ‘가치’ 탐구 영역에도 관련된다고 추정할 수 있다. 특히 쿰즈와 뮤(Coombs & Meux)가 개발한 가치분석 모형은 형이상학적 가치원리(value principle)와 객관적 사실(fact)을 가치판단(value judgement)의 필수 근거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포퍼의 과학철학적 입장과 논리적으로 공유되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동안 가치분석 모형의 이론적 배경은 규정주의(Prescriptivism)와 정당근거론(Good Reason Theory)이라는 주장이 주류를 이루어 왔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포퍼의 과학방법론과 가치분석 이론이 많은 부분에서 중첩되거나 관련될 수 있다는 점이 새롭게 밝혀졌다.

첫째, 가치분석 이론에서 제시하고 있는 가치판단의 구조는 포퍼의 연역적 설명(deductive explanation) 구조와 논리적으로 동일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즉 가치판단의 구조는 연역적 3단 논법의 추론 형식을 띠고 있는데, 포퍼의 연역적(인과적) 설명 구조도 이와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둘째, 가치분석 이론에서는 어떤 가치판단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사실’(fact) 근거와 ‘원리’(value principle)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가치판단의 과정은 정당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러한 논리가 포퍼의 지식 성장 이론과 지식의 정당화 맥락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셋째, 가치원리의 수용성 검사의 논리적 특성이 포퍼의 반증 논리와 유사하다. 가치분석 이론에서는 가치판단의 결과에 내재된 ‘가치원리’를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지의 여부를 검사하는 절차를 마련하고 있다. 포퍼의 반증 과정은 가설(이론)의 수용 여부를 테스트하는 과정인데, 가치원리의 수용성 검사에서 말하는 가치원리는 바로 포퍼의 가설(이론)에 해당한다. 특히 가치원리의 수용성 검사 중 ‘새로운 사례 검사’는 포퍼의 반증 사례를 찾는 활동과 그 특성이 동일하다. 이런 점에서 양자는 논리적 구조가 동일하며 공통점이 있다. 

 

▣ 포퍼의 철학이 사회과 교육에 줄 수 있는 함의는 무엇인가?

이 책에서 관심을 갖는 포퍼의 철학 사상은 다음과 같다: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이 없으면 과학이 아니다’, ‘지식의 출처나 기원보다 그 지식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더 중요하다’, ‘지식의 성장 과정은 생물의 진화 과정과 유사하다’, ‘과학이든 지식이든 우리의 삶이든 그것의 발전 과정은 ‘문제’(problem)를 찾고 그것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다’, ‘과학이나 사회 진보의 원천은 우리의 대담한 추측과 상상력이다’, ‘우리는 누구나 실수할 수 있으며 그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다’, ‘우리 인류가 지향해야 할 길은 열린사회(open society)이다’, ‘우리는 급진적인 사회 발전보다 점진적인 사회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정치체제는 개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제도라야만 한다.’ 이러한 포퍼의 사상적 특성들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비판적 합리주의’(critical rationalism)로 표현될 수 있다. 이제 포퍼의 철학 이론과 사상이 사회과에 미칠 수 있는 교육적 의미를 간략하게 살펴본다. 

포퍼의 주장에 따르면, 과학적 탐구 방법은 귀납법에서 ‘가설-연역적’(hypothesis-deductive) 방법으로, 검증의 논리에서 ‘반증’(falsification)의 논리로, 발견의 맥락에서 ‘정당화’(justification)의 맥락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지식의 형성과 획득 과정에서 이러한 주장을 대변하는 이론이 바로 그가 주장하는 ‘탐조등 이론’(the searchlight theory of knowledge)이다. 그는 과학 방법에 있어서 모든 ‘관찰’은 ‘이론 의존적’이라고 본다. 여기서 ‘이론’은 곧 ‘탐조등’의 역할과 유사하다. 그는 논리실증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귀납적 인식론을 ‘양동이 이론’(the bucket theory of knowledge)으로 규정하며 수동적 인식론이라고 비판한다. 

그런데 그동안 사회과에서는 양동이 이론에 바탕을 둔 ‘벽돌쌓기식’ 교육이 주류를 이루어 왔다. 이제 학생들의 능동성과 적극성을 담보할 수 있는 탐조등 이론에 바탕을 둔 방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방향 전환을 통해 학생들은 기존 지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가설을 생성하거나, 기존 지식에 대한 반증 사례를 찾는 활동을 중점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즉 과거의 ‘정답 찾기’를 통한 ‘덧셈’ 위주의 활동에서 ‘오류 찾기’를 통한 ‘뺄셈’ 중심의 활동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대담한 추측과 반박 그리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상상력과 창의력을 기를 수 있고, 지식의 성장 과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포퍼의 철학에 내재된 ‘인간관’이 민주시민을 육성하는 사회과 교육에 줄 수 있는 함의는 상당하다. 포퍼가 생각하는 인간상은 크게 두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데, 하나는 그가 생각하는 인간 자체의 본성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추구하는 바람직한 인간의 모습이다. 포퍼는 ‘불완전한 인간’과 ‘진화(진보)하는 인간’을 자체적 인간 본성으로 꼽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이러한 인간의 속성은 다분히 생물학과 진화론의 관점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리고 포퍼가 추구하는 인간상은 ‘비판적․합리적 인간’, ‘능동적․창조적 인간’, 그리고 ‘자유로운 인간’을 꼽을 수 있다. 

포퍼의 인간관과 인간상은 그가 추구하는 ‘사회상’과 연동되어 있다. 즉 포퍼는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이 보장되는 ‘열린사회’(open society)와 개인들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 그리고 그 속에서 ‘점진적으로 진보하는 사회’와 ‘인도적 범세계주의 사회’를 꿈꾸었는데, 이러한 사회의 실현과 유지에 필요한 인간이 곧 포퍼가 추구하는 인간상이다. 따라서 포퍼 철학에 내재된 인간관(인간상)은 그가 추구하는 사회관(사회상)과 불가분의 관련을 맺고 있다. 

이러한 포퍼의 인간관과 사회관은 사회과 교육에서 추구하는 인간상과 사회상에도 많은 의미를 시사한다. 사회과 교육을 통해 바람직한 의사결정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인간을 길러야 한다는 점, 합리적이면서 개방적인 태도를 지닌 인간을 육성해야 한다는 점, 창의적이면서도 비판적인 인간을 육성해야 한다는 점, 미래 공동체에서 요구되는 민주시민을 육성해야 한다는 점, 지구촌 사회를 살아갈 세계시민을 육성해야 한다는 점 등에서 볼 때 포퍼의 사상은 많은 의미를 제공한다. 또한 사회과 교육을 통해 기르고자 하는 시민들이 살아갈 사회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포퍼의 사회관으로부터 의미 있는 시사를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포퍼의 철학이 만능은 아니다. 다만 포퍼라는 철학자의 눈으로 사회과 교육을 바라보는 것은 이론적·실천적 측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정호범 진주교대·사회과교육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과 교육 전공으로 교육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진주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에 재직하고 있다. 한국사회교과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관심 분야는 과학철학, 정치철학, 윤리학, 가치교육, 사회과 교수이론 등이다. 『자유주의 철학과 가치관 형성 교육』, 『사회과 교육과정에서 수업까지』(공저), 『창의성 교육의 이론과 실제』(공저), 『초등학교 수행평가』(공저) 등의 저서와 ‘사회탐구의 유형과 과학철학적 배경 – 포퍼의 이론을 중심으로’, ‘포퍼의 탐조등 이론에 터한 사회과 지식 탐구 방법 모색’, ‘포퍼의 과학철학과 가치탐구 방법’, ‘포퍼의 사회철학이 사회과교육에 주는 함의’, ‘포퍼형 토론의 철학적 배경’, 그리고 사회과 교육에 관련된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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