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지옥』이 고발하는 청말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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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지옥』이 고발하는 청말 감옥
  • 심재우 한국학중앙연구원·조선시대사
  • 승인 2022.04.16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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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우의 ‘법률과 사건으로 보는 조선시대’]

청말 사회고발 소설 『활지옥』

19세기 말 20세기 초에는 조선과 중국 모두 제국주의의 침탈로 인해 국가 존망의 갈림길에 처해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시 중국 청말의 혼란한 사회상을 풍자하는 사회고발 소설을 루쉰(魯迅)은 견책소설(譴責小說)이라고 불렀는데, 류어(劉鶚)가 쓴 『라오찬 여행기』는 청말의 대표적인 견책소설 중 하나이다. 

때로 소설이 현실을 더 정확히 진단한다. 읽어보신 독자들도 있겠지만 『라오찬 여행기』는 늙은 의사 라오찬이 중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관리의 폭정을 비롯하여 위기에 처한 중국의 정치, 사회상황을 폭로하는 내용이다. 딱딱한 역사책에서는 좀처럼 확인하기 힘든 사람들의 삶을 류어는 소설에서 실감나게 드러낸다.

그런데 4대 견책소설 작가의 한 명으로 알려진 리보위안(李伯元) 또한 여러 소설 작품을 남겨 관리들을 조롱하고 암울한 현실을 비웃는 등 부패로 가득한 사회를 풍자한다. 특히 그는 소설 『활지옥(活地獄)』을 통해 각종 불법과 비리로 얼룩진 청말 감옥의 실태를 생생하게 고발하는데, 사람들이 직접 경험하기 어려운 감옥의 천태만상을 고발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활지옥』을 쓴 청말 소설가 리보위안(李伯元:1867∼1906). 본명은 리바오지아(李寶嘉)이다.

사실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풍전등화와 같던 한말의 상황을 생각할 때 이들 소설에 나오는 청말의 모습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그럼 『활지옥』 속 감옥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리보위안(李伯元) 소설을 연구한 김석기의 논문을 참고하여 추적해보기로 한다.


추악한 감옥 안 풍경

리보위안은 『활지옥』을 통해 중국 각 지역을 배경으로 현관(縣官)의 가혹한 고문, 서리·차역과 같은 아전들의 횡포를 여러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고발하는데, 특히 불법과 비리로 얼룩진 감옥의 실태를 잘 묘사하고 있다.

같은 감옥이라도 뇌물의 유무에 따라 수감생활에 큰 차이가 있었다. 돈 한푼 없는 일반 잡범들은 좁은 방에서 사오십 명이 한데 뒤섞여 생활했다. 불결하기 이를 데 없는 이곳은 지독한 악취로 진동하였고, 의자 하나 없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반면 돈만 있으면 침대와 탁자가 갖춰져 있는 방에서 지낼 수 있으며,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다 먹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돈이 수감생활을 좌우하였는데, 간수들에게 뇌물을 쓰면 좋은 방에 배정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뇌물 액수가 늘어남에 따라 바닥에 침구를 깔고 높은 침대를 사용할 수도 있었고, 여기에서 돈을 추가하면 심지어 아편을 피울 수 있었으며 시중드는 사람까지도 둘 수 있었다. 감옥 안에서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액수가 정해져 있었던 셈이다.

 

『활지옥』 속 신참죄수 괴롭히기. 고참죄수들이 신참의 손가락, 발가락을 줄에 매달아 놓고 촛불로 고문하는 장면이다.

또한 신참 죄수들이 감옥에 들어오면 간수들과 고참 죄수들에게 선물이나 돈을 바쳐야 했다. 이런 규칙을 몰랐던 소설 속 왕소삼(王小三)이란 인물은 여러 죄수들에게 심한 구타와 가혹 행위를 당해야 했다. 어떤 죄수는 왕소삼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밧줄로 묶어 높이 매달아 놓고 밑에서 주먹으로 마구 때리기도 했다. 심지어 초에 불을 붙여 신참 왕소삼의 살을 태우는 자도 있었다. 돈이 없으면 한마디로 혹독한 신고식을 경험해야 했다.


매춘 위협에 시달리는 여자 죄수

감옥 안에서는 간수와 고참 죄수가 수감생활을 좌우했다. 이들에게 뇌물을 바치면 좋은 대접을 받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바닥에 앉을 수조차 없었으며 걸핏하면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간수들은 새로 죄수가 들어오면 이들에게서 돈을 뜯어내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결국 폭행을 당하거나 시설이 나쁜 곳으로 가지 않으려면 뇌물을 바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규칙에 예외는 없었다. 고관대작을 지낸 관리라도 일단 감옥에 들어가게 되면 간수들에게 돈을 주어야만 아편을 피울 수 있었으며, 그 외 다른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광서성의 서군문(舒軍門)이란 자는 해마다 100만 량의 군량을 착복하다 발각되어 조정으로 압송되어 감옥에 수감된다. 그는 간수들에게 3천 량의 뇌물을 바쳤으나 금액이 너무 적다고 실망한 간수들은 그를 설비가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은 텅 빈 감방에 넣어버렸다. 아편을 피울 연구(煙具)는커녕 이불조차도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활지옥』 속의 여자 감옥에서 관매파(官媒婆)가 죄수들을 고문하는 장면.

그런데 남자들과 달리 여자 죄수들은 매춘 위협까지 시달려야 했다. 여자 죄수들을 수감하는 감옥에서는 이들을 관리하는 관매파(官媒婆)가 있었다. 이들은 신참 죄수가 들어오면 간수들과 매춘하도록 협박하였는데, 응하지 않는 죄수들에게는 돼지를 묶듯이 손과 발을 모두 묶어 감방에 매달아 놓는 등 심한 고문을 가하곤 했다. 반대로 그들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는 죄수들은 감형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돈을 벌 수도 있었다고 한다. 


곳곳에 만연한 불법 고문

한편 『활지옥』에는 지방 고을의 현관(縣官)들이 죄인들에게 불법 고문을 가하는 장면들도 많이 등장한다. 이 중 당시 횡행했던 고문 도구로 참롱(站籠)이라는 것이 있었다. 

목에 씌우는 칼의 일종인 참롱은 입가(立枷)라고도 불렀는데, 나무 바구니 모양을 한 나무틀에 죄인의 머리가 위로 나오도록 씌운 다음 오랫동안 서서 있도록 하여 고통을 주는 도구였다. 당시 관청마다 여러 개의 참롱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악명높은 관리들은 죄인의 신분과 죄질의 경중을 확인하지도 않고 으레 이들을 참롱에 세워 고통을 주었다고 알려진다.

 

『활지옥』에 나오는 관아 풍경. 관아 앞에 여러 개의 참롱(站籠)이 있으며, 이 중 하나의 참롱에는 죄수가 들어가 있다.

『활지옥』에 등장하는 악독한 관리 중에는 호주(毫州) 지역 현관 단태야(單太爺)가 있었다. 그는 방금 소개한 참롱으로 여러 백성의 목숨을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고안하여 만든 새로운 형구로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두 명의 절도범을 잔인하게 처형했다. 그가 새로 만든 형구는 오자등과(五子登科), 삼선진동(三仙進洞)이라 불렀다. 

먼저 오자등과라고 불리던 형구로 고문하는 방법은 이렇다. 죄인의 얼굴을 위로 향하게 한 후 문짝 위에 올려놓고, 먼저 네 개의 못을 범인의 손과 발에 박은 후 다시 커다란 못을 심장에 박게 하는 방법이었다. 고문을 당한 절도범은 순식간에 피가 솟아 나오더니 죽어버렸다. 

다음으로 삼선진동은 죄인의 얼굴을 위로 향해 젖히고 두 개의 짧은 쇠막대기를 가지고 하나는 가슴을 짓누르고 다른 하나는 대퇴부를 짓누른 후, 양쪽의 기가 통하지 않아 북처럼 부풀어오른 배를 긴 쇠막대로 내리치는 방식이었다. 결국 오장육부가 땅바닥으로 쏟아져 나온 죄수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

『활지옥』이 묘사하는 청말의 감옥은 한마디로 이승의 지옥과 같은 곳이었다. 권력의 횡포가 난무하고 뇌물이 횡행하는 추악한 암흑천지라고 할까? 문제는 이것이 단지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데 있다. 그럼 조선은 청나라와 달랐을까? 다음에는 조선의 감옥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심재우 한국학중앙연구원·조선시대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조선시대사 연구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조교,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인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선시대 법률문화와 사회문화사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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