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시대의 인류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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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시대의 인류의 진화
  • 김환규 서평위원/전북대·생리학
  • 승인 2022.04.1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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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규의 과학에세이]

 

국립중앙박물관 기획특별전 ‘호모 사피엔스: 진화∞, 관계&, 미래?’<br>
                                국립중앙박물관 기획특별전 ‘호모 사피엔스: 진화∞, 관계&, 미래?’

조류는 일주기에 맞춰 부화를 통해 어린 생명을 출현시키고 독립생활이 가능할 때까지 먹이를 제공하고 포식자로부터 보호한다. 집단생활을 하는 코끼리의 경우, 나이 많은 구성원이 죽으면 하루 동안 이동하지 않고 사체 주위를 배회하며 사체를 어루만지다가 그 곁을 떠난다. 수컷 사마귀는 교미하는 동안 암컷 사마귀에게 잡아먹혀 자신이 수정시킨 알에 영양분을 제공한다. 인류는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와 어떻게 다른가? 물론 코끼리 집단에서 볼 수 있는 가족과 동족에 대한 동정과 연민은 인류에게도 존재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매우 큰 뇌, 털이 없는 신체, 작은 치아, 돌출된 턱, 미약한 근육과 두 발로 걷는 외형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또한 복잡한 뇌를 이용해 말하고, 언어와 기호를 사용하고 창의적이며 상상력 같은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다. 

침팬지는 단순한 기호언어 또는 그림문자를 사용하나 그들 스스로 체계적인 기호를 고안하지는 못한다. 인류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통해 복잡한 언어의 사용이 가능해졌는데, 후보 중 하나는 정상적인 언어의 발달에 필수적인 FOX2 유전자이다. 이 유전자는 네안데르탈인과 침팬지에도 존재하나 인류는 유전자의 조절에 영향을 미치는 돌연변이를 갖고 있다. 네안데르탈인과 인류를 구분하는 유전자는 겨우 100종류에 지나지 않는데, 이들 유전자 대부분은 면역계, 피부 또는 감각계와 관련이 있다. 진화 역사에서 이러한 작은 생물학적 변화가 거대한 골짜기를 만들게 되었다. 학습된 행동으로 정의할 수 있는 인류의 문화는 현대 인류에게 강력한 자연선택의 힘으로 작용했다. 인류가 만든 문화는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이것이 유전자-문화 공진화의 예다. 기술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인류뿐만이 아니라 많은 종의 자연선택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약 10만 년 전 아프리카 남부에서 해수면의 급격한 상승과 하강으로 이주가 일어나는 동안 생존했던 원인(猿人)의 진화는 사냥과 먹거리의 변화, 그리고 새로운 기술의 발달을 끌어냈다. 이런 변화를 끌어낸 개체들이 살아남아 현재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 

도덕에서부터 문화에 이르기까지 인간에게만 고유하다고 여겼던 많은 특성이 동물계에서 발견되고 있다. 인류를 특별하게 만드는 목록은 예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감소했지만 인류는 다른 생명체와 구별되는 특성이 있다. 2,000년 전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인류를 ‘이성적인 동물’이라 칭하였으며, 인류는 기술과 이성을 사용하는 존재라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내용의 다수가 지금도 수용되고 있다. 한때 인류에만 존재한다고 여겨졌던 많은 행동의 근원들이 인류의 친척인 침팬지와 보노보에게서도 볼 수 있다. 인류의 신체는 다른 영장류와 비슷하나 뇌는 특이하게 커졌다. 뇌가 커진 덕에 인류는 복잡한 추론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약 8만 년 전부터 인류는 수준 높은 문화적 그리고 기술적 가공품을 생산하였다. 이러한 기술 혁신으로 인류는 아프리카 밖의 지역으로 이주할 수 있게 되었으며 언어-학습 능력 역시 향상되었다. 인류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언어와 기호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언어는 탁월한 사회적 기술인 인간만의 독특한 특성이다. 

 

어린이들은 타고난 조력자로 사회적 가치가 정립되기 전부터 이타적으로 행동한다. 이에 비해 침팬지는 보답을 주는 동료 또는 잠재적 교미 상대에게만 먹이와 편의를 나누어준다. 침팬지는 동기가 있을 때만 먹이를 건네주는 ‘반응성 행동’을 보이는데, 이런 차이가 인류와 침팬지를 구별해준다. 인류는 자신의 마음을 타인에게 전달하려는 속성이 있다. 현대 인류는 지식과 정보를 지식 네트워크에 연결한다. 현재의 빠르게 팽창하는 기술은 SNS에서 보듯이 정보를 모든 사람과 공유할 수 있게 인류를 즉석 출판업자로 만들었다. 이것은 인류가 타인의 경험적 이점을 취하도록 하여 신중한 행동을 할 수 있게 한다. 인류는 인공세계를 디자인하고 유지할 필요가 있는 한 극적으로 바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윈(Charles Darwin)은 ‘인류의 계보’에서 인류와 동물은 형질의 종류가 아니라 정도에서 약간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라고 기술하였다. 서든도프(Thomas Suddendorf)는 이러한 정도의 차이가 인류를 비범하게 만들며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사고의 가능성’을 이끈다고 하였다. 인류는 선한 본성을 갖추고 있으나, 동시에 자신의 가장 가까운 친척들을 멸종시키고 자신이 거주하는 지구를 파괴하는 유일한 종이다. 인류는 거대한 인공세계를 건설하였으며 환경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시도한다. 현대 의학은 자연선택을 앞지르고 있다. 인류의 지구적인 상호연결은 진화가 일어날 수 있는 격리된 공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인류가 진화의 정점으로 최종 승자처럼 여겨지게 한다. 

조그마한 형태의 자연선택조차도 인류 집단의 유전적 조성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자연적 또는 인위적 재난은 인류 종을 격리시킬 수 있다. 인류가 다른 행성으로 이주한다면, 그들은 지구에 사는 인류와 격리되어 독자적인 진화 궤적을 따를 것이다. 유전공학은 인류의 진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특정 세포를 줄기세포로 분화시켜 신체의 일부 또는 개체로 성장시킬 수 있는 능력 같은 유전공학의 발달에 따라 진화경로에 새로운 문이 열리고 있다. 인류는 오랜 시간 동안 신(神) 행세를 해왔다. 인류는 정착 농업을 시작한 이래 다윈이 말한 ‘인위선택’을 시행하여 유용한 동물과 식물 품종을 개발했다. 인위선택은 인류 자신의 종을 형상화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한다. 인류는 오랫동안 자신의 진화를 사회적으로 인도해왔다. 인류는 가축화된 개나 소처럼 자신도 길들였다. 가축은 야생에 사는 동종보다 온순하고 더 작은 뇌를 갖고 있다. 핑커(Stephen Pinker)는 인류의 뇌 크기 축소와 폭력성의 감소 그리고 협력의 증가 등이 가축과 비슷하다고 주장하였다. 인류는 ‘자동-인위선택’이라는 새로운 능력을 획득했다. 예를 들어 피임은 생식능력을 감소시켰다. 인류는 섹스 외에도 정자와 난자를 수정시키는 방법을 개발하였다. 인류는 자손의 수뿐만 아니라 질병 저항성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특성을 인위적으로 선택할 기회를 증가시켜왔다. 자신의 아이가 암에 걸리지 않고, 알츠하이머나 기타 질병 인자를 제거할 유전적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다음 세대의 유전적 조성에서 단순한 ‘인위선택’이 아닌 ‘인위적 돌연변이’ 같은 직접적인 간섭은 미래 세대에게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인류는 자신의 진화를 이끄는 능력을 증가시켜 왔으며, 결국 보다 큰 지적 능력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 인류는 자신이 만든 기계와 기술을 이용하여 세상사를 측정하고 모형화하는 방법을 획득하였다. 인터넷과 다른 네트워크를 통해 인류는 수많은 지식과 연결되었고, 문화적 축적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대부분의 의문에 대한 답은 몇 번의 클릭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과학의 발달은 막대한 지식 축적을 가속시켜 생물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인류 지능을 전자 또는 화학적인 면에서 향상시키고 있다.

바닷가재는 민감한 후각을 갖고 있으며, 흰개미는 훌륭한 건축가이고 인류는 능숙하게 교신하는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다. 인류는 바닷가재보다 더 냄새를 잘 맡는 장치를 고안할 수 있고, 흰개미보다 더 멋있고 견고한 건축물을 지을 수 있다. 인류가 가진 기술의 다양성과 특수성이 인류와 비인류 동물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이다. 바닷가재나 흰개미보다 인류는 정신적 유연성에 근거해 자신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 인류의 독창성이 다른 동물에 비해 우월하다는 것은 아니다. 생태적 지속성 기준으로 본다면 인류는 독특한 지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위에 있다. 모든 종의 개체들은 독특한 특성과 능력이 있다. 각 종 내에서 일부 뛰어난 개체들은 생물학적 또는 진화적 진보를 유도하는 돌연변이의 운반자이다. 바닷가재, 흰개미 또는 인류는 그들 자신의 독특한 실체를 갖고 있다. 이런 면에서 생물 형태의 비교는 무의미할 것이다. 


김환규 서평위원/전북대·생리학

전북대 생명과학과 교수. 전북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교환교수, 전북대 자연과학대 학장과 교양교육원장, 자연사박물관 관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생물학 오디세이』, 『생명과학의 연금술』, 『산업미생물학』(공저), 『Starr 생명과학: 생명의 통일성과 다양성』(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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