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지면 큰일을 … 중국과 한국 (5)
상태바
작아지면 큰일을 … 중국과 한국 (5)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2.04.10 16: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동일 칼럼]

중국은 작아지면 큰일을 했다. 대등론을 구현하는 의가 있는 문명을 창조해 널리 이롭게 했다. 여럿으로 나누어져 작은 나라이던 중국이 하나로 합쳐져 거대국가가 되면, 그 공적을 뒤집었다. 대등론을 차등론으로 바꾸어 가치를 훼손한 문명의 잔해를 국력 과시에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다. 

지금 중국이라고 하는 곳이 언제나 같은 모습을 지닌 것은 아니다. 여럿으로 갈라진 작은 나라가 공존하기도 하고, 합쳐져 큰 나라가 나타나기도 했다. 오늘날의 중국인이 나라가 작아진 과거는 부끄럽게 여겨 감추고, 거대국가를 칭송하면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잘못이다. 중국이 나라가 작을 때 큰일을 한 것을 알고 평가해야 한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논의를 진전시킨다. 춘추전국 시대 분열이 극도에 이르고 여러 나라가 생사를 건 쟁패를 할 때, 제자백가(諸子百家)가 놀라운 수준의 사상 창조를 다채롭게 했다.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발상을 제시하면서 활발한 토론을 했다. 이것이 동아시아문명의 자랑스러운 유산이다. 

남북조 시대 북방민족이 세운 나라 북위(北魏)에서 다정스럽고 품격이 높은 석불을 훌륭하게 만들었다. 불교가 외래의 기이한 습속이 아니고 누구나 지니는 보편적 이상을 구현하는 종교임을 분명하게 하면서 동아시아의 중세화를 보란 듯이 이룩했다. 동아시아 전역에서 그 본보기를 따른 석불을 만들어 중세화를 확산하고 정착시켰다.  

북송(北宋)은 북쪽의 요(遙)나라나 금(金)나라, 서쪽의 대하(大夏, 西夏)와 힘겨운 경쟁을 하면서 존립조차 위태로울 때, 창조적 역량을 뛰어나게 발현했다. 그 가운데 이기(理氣)철학이 특히 높이 평가된다. 천지만물에서 사람의 심성까지 일관되게 존재하고 작용하는 근본 이치를 논리를 갖추어 따지는 철학을 이룩해 동아시아문명의 수준을 크게 높였다.

작은 나라들을 무찌르고 천하를 통일해 거대국가 들어서면 앞 시대에 이룩한 창조의 업적을 원래와는 다르게 이용해 훼손했다. 공연한 시비를 피하기 위해, 이에 관한 논의도 실례를 들어 한다. 위에서 든 세 사례가 거대국가 시대에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고찰한다.

전국시대를 청산하고 들어선 진(秦)나라 거대국가는 제자백가 가운데 다른 것들은 다 없애고 법가(法家)만 남겨 철권통치의 수단으로 삼았다. 그 때문에 원성이 너무 심해지자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다시 들어선 거대국가 한(漢)나라가 유가(儒家)를 되살려 백성을 돌본다고 한 것은 다행이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유가의 가르침을 국가의 이념으로 고정시키고, 다른 사상은 물리쳤다. 교화만 있고 논란은 없게 했다.

남북조의 대립을 청산하고 등장한, 중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국가 당(唐)나라는 점령군의 위세를 몰아 북위의 석불을 접수하고, 먼저 것들과 어울리지 않는 조각을 새로 새겨 보탰다. 다정스러운 것과는 정반대인 서슬이 퍼런 모습으로, 종교의 품격과는 아주 다른 정치의 위세를 과시했다. 부당하게 국권을 장악해 원망의 대상이 되는 여성 통치자의 모습을 부처라고 새겨, 현세의 가치가 으뜸임을 알도록 하는 반칙까지 저질렀다.

북송과 그 뒤를 이은 남송(南宋)까지 멸망시키고 들어선 거대한 원(元)나라, 그 뒤를 이은 명(明)나라, 청(淸)나라는 지배민족이 북방민족이었다가 한족으로 바뀌고 다시 북방민족이 되는 변화가 있었으나, 한 가지 공통점을 줄곧 지녔다. 북송 때의 이기철학 가운데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극단화한 남송 주희(朱熹)의 보수노선을 정통으로 공인하고 통치 이념으로 삼았다. 기일원론(氣一元論)을 이룩하려는 노력은 더 나아갈 수 없게 차단했다. 과거를 보아 관직에 나아가지 않은 재야의 선비가 이치의 근본을 스스로 탐구하는 것을 볼 수 없게 되어, 문명의 품격이 낮아지고 철학이 빈곤해졌다.

중국의 거대국가는 모두, 분열되어 있던 앞 시기에 창조한 가장 소중한 유산을 원래와는 다르게 이용해 가치를 훼손했다. 훼손의 양상을 셋으로 정리할 수 있다. 문화 창조를 통치를 합리화하는 정치적 목적에 이용했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단일한 우상을 섬기라고 했다. 대등론의 의의를 부정하고 차등론을 따르도록 했다. 그 결과 안으로는 창조적 역량을 축소하고, 밖으로는 패권주의를 뽐내 이중의 위기를 조성했다.

한국은 중국이 분열 시기에 이룩한 창조를 이어 발전시키면서 거대국가의 횡포에 맞서야 하는 임무를 지녔다. 이것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어서 불운을 개탄해야 했으나, 노력한 보람이 성과로 나타나 행운이 확인된다. 무엇이 행운이었는지 하나씩 말한다.

제자백가 가운데 유가를 정통으로 받드는 것을 한국도 따랐으나, 다른 사상 특히 도가(道家)에 대한 평가가 표면화하지 하지 않고 저류로 이어졌다. 신라 때의 불상에 새긴 글에서 이미 “산수와 어울려 노장(老壯)의 소요(逍遙)를 흠모하노라”, “이름과 지위를 버리고 아득한 곳으로 들어가겠노라”라고 했다. 이런 마음을 간직하고 깊은 진실을 찾아왔다. 

석불 조각을 하면서 북위 시절의 품격을 더 높이려고 개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석굴암의 본존과 협시보살이 서로 호응되는 관례를 가지고 높고 낮은, 숭고와 범속의 양면이 둘이 아니고 하나이며 하나가 아니고 둘임을 보여준다. 삼화령미륵삼존불(三花嶺彌勒三尊佛)은 천진스러움이, 서산마애삼존불(瑞山磨崖三尊佛)은 맑은 웃음이 소중하다고 일깨워준다.

한국에서도 주희의 이기이원론을 정통으로 인정한 것이 중국과 다름이 없고 편향성이 더 심했다는 인상을 주지만, 그렇지 않았다. 북송 때 나타나다가 만 기일원론을 본격적으로 탐구해 명확하게 논술하는 작업을, 빈곤을 견디며 학문에 몰두한 서경덕(徐敬德)이 했다. 서경덕의 존재론 위에 인성론을 올리는 작업을 임성주(任聖周)ㆍ홍대용(洪大容)ㆍ박지원(朴趾源)이 하고, 최한기(崔漢綺)는 거기다 인식론을 보탰다. 도가 사상의 잠재적 계승과 민족문화의 활력이 만나 이룬 성과라고 생각한다.

노자(老子)를 나의 스승으로 삼는다. 석불의 품격, 천진스러움, 웃음에서 깊은 감동을 느끼고, 그림을 그려 나타내려고 한다. 서경덕 이래의 기일원론에서 가져온 생극론을 학문을 하는 기본 이론으로 활용한다. 그 덕분에 대등론이나 창조주권론을 이룩했다. 

이 모든 작업이 중국과 연관되어 있다. 중국이 작은 나라일 때 이룩한 창조를 이어받아 거대국가 중국의 횡포를 비판하는 논의를 전개한다. 얻은 성과를 중국에 전달해 은혜에 보답하고자 한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