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질”
상태바
“주먹질”
  • 이기홍 논설고문/강원대·사회학
  • 승인 2022.04.10 16: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기홍 칼럼]

지난 3월의 대통령 선거는 주먹질 선거운동을 한 후보를 당선자로 선출했다. 비호감 경쟁 선거를 염려한 탓인지 주요 언론매체들은 ‘어퍼컷 세리머니’라는 뜻 모를 외국말로 미화하며 의미 해독을 교란했지만, 주먹질은 분노, 타격, 그리고 격투기의 경우를 예외로 하면, 무엇보다도 ‘폭력’을 상징한다. 선거운동에서야 그런 뜻으로 사용하지 않겠지만 그 자체로 ‘감자’(욕)인 경우도 있다.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이나 남을 보호하기 위해 주먹질을 하기도 하는 만큼 모든 폭력을 부정적으로 취급할 것은 아니지만, 어떤 대상을 ‘때려 부수는’ 폭력은 기본적으로 상대의 인격을 무시하고 존엄성을 파괴하는 행위이다.

품격 있다거나 사려 깊다고 하기 어려운 주먹질을 앞세운 후보에게 다수의 유권자들이 투표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집값 폭등’으로 요약되는,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하고 삶의 불안정성을 격화하는 현실에 좌절하여 ‘때려 부수고’ 싶은 분노를 대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 후보의 주먹질을, 기존 사회구조와 지배질서를 때려 부수고 불평등과 불안정을 해소하거나 완화하겠다는 몸짓이라고 해석하기는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그 후보 자신이 검찰 권력의 화신으로 기존 지배질서의 가장 공고한 수호자이자 수혜자이다. 그가 선거운동 내내, 미래 사회에 대한 구상은 생략한 채 되풀이한 주먹질의 대상은 기존 지배질서가 아니라 그 질서에 새로 편입된, 그의 표현으로 ‘이권에 집착하고 돈을 좋아하는 운동권 족보팔이’ 집단이다. 그런 집단이 존재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하기 어렵지만, 설사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집단을 ‘때려 부수는’ 것을 대통령 직무의 상징을 삼을 수는 없다. 그래서 주먹질 선거운동에 대해서는 분노를 자극하고 혐오와 적대를 심화함으로써 내편을 단합시키고 상대편을 고립시키려는 저열한 ‘세리머니’라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럼에도 그 후보의 당선인사 첫마디는 “국민통합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겠다”였다. 이번에도 통합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제안은 없었다. 마련하지 못했거나 마련했음에도 분란의 야기를 피하기 위해 공표하지 않았을 때문일 터인데, “경호 문제나 외빈 접견 문제는 충분히 검토했다”며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던 장담을 느닷없이 “광화문은 재앙”이라며 “청와대를 돌려주겠다”는 교언으로 바꾸어 “용산 국방부 집무실”을 주먹질하듯 윽박지르는 것을 보면 후자일 것이다. 그래서 주먹질을 ‘세리머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권력을 동원하여 실행할 수 있게 된 그 당선자가 지향하는 국민통합이 다른 생각을 가진 국민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함으로써 공존하는 통합이 아니라 그런 국민들을 ‘때려 부수고’ 절멸하는 통합일 수도 있겠다는 우려를 갖게 된다. 그 당선자는 주먹질 선거운동을 “지지자들의 열광적 지지를 보며, 부산에서 근무하던 검사 시절 본 야구 응원하는 장면이 떠올라 개발했다”고 자랑했는데, 열광적 지지를 자극하고 그것에 호응하는 지배권력은 많은 경우 파시즘으로 불리는 체제로 귀결했다. 

더구나 그 당선자가 “군사쿠데타와 5.18을 뺀 전두환이 정치를 잘했다”며 전두환의 방식으로 “법과 상식이 짓밟힌 것만 바로 잡겠다”고 공언했던 일을 상기하면 우려의 농도는 훨씬 짙어진다.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자 할 때 과거의 망령들을 주술로 불러내고 그들의 이름과 구호와 분장을 차용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법과 상식’이 편의에 따라 다양하게, 심지어 자의적으로 해석되고 적용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어쩌면 불평등 완화와 불안정 해소를 갈망하며 투표한 국민들은 기존의 사회구조와 지배질서가 아니라 그 구조와 질서를 교란하는 집단에 대한, 아마도 ‘검찰공화국’ 쯤으로 명명할 수 있는, 주먹질을 목격할 수도 있다. 그렇게 과거는 다시 살아나고, 역사는 (물론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희극으로) 되풀이된다.

 

이기홍 논설고문/강원대 명예교수·사회학

강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로, 강원대 교수회 회장, 한국사회학회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주 연구 주제는 사회과학철학, 사회과학방법론, 그리고 사회이론이다. 저서로 『사회과학의 철학적 기초: 비판적 실재론의 접근』, 역서로 『숫자를 믿는다: 과학과 공공적 삶에서 객관성의 추구』, 『맑스의 방법론』, 『경제,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과학으로서의 사회이론』, 『새로운 사회과학철학』, 『지구환경과 사회이론』 외 다수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