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좀 내버려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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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좀 내버려두자
  • 이성재 충북대·역사학
  • 승인 2020.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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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집의 의미가 변질되어가고 있다. 집이 제공해주던 안락함보다는 평수와 가격, 혹은 부동산 정책이 주요한 대화거리로 밥상에 오른다. 자산의 70퍼센트 이상이 부동산에 묶여있으니 집값 변동에 민감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은 집 가격이 오르지 않아, 재건축 지정이 빨리 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혹시라도 가격이 최고로 올랐다고 판단되면 주저 없이 살던 집을 팔고 차익을 챙긴다. 집은 그래서 어느 광고의 카피 문구처럼 ‘사는 곳’이 아니라 ‘사는 것’이 되어 버렸다. 과연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 집의 기분은 어떨까? 집은 많이 우울할 것만 같다.

사는 곳으로서의 집은 원래 우주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온대 기후에서 집은 나무말뚝으로 뼈대를 세우고(宙) 그 위에 풀을 엮은(宇) 모습이었다. 집안에서 천장을 보면 대들보와 서까래의 주(宙)가, 그 위를 덮은 우(宇)가 보였다. 이러한 집이 확장되면 천구가 되고 그것은 하늘의 집인 우주가 되었다. 또한 집은 사람과 하나가 되었다. 호를 집에서 따온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예를 들면 사임당(師任堂), 난설헌(蘭雪軒)에서 당(堂)과 헌(軒)은 모두 집을 의미했다. 중전(中殿, 왕비), 자전(慈殿, 왕대비), 동궁(東宮, 세자)의 전(殿)과 궁(宮) 역시 집이었다. 집은 나를 의미했고, 집의 무게는 그에 걸맞은 나의 행동으로 나타나야 했다.

그러나 아파트의 확산과 함께 집은 집 자체로서의 매력을 잃어갔고, 잠시 머물며 매매를 기다리는 일시적 공간으로 전락했다. 나의 집은 타인의 소유가 되고, 타인의 집은 나의 소유가 되는 현상이 가격의 등락에 따라 나타난 것이다. 집을 자신과 동일시하던 의식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점차 사라져갔다.

집이 지녔던 신성함이나 집이 담당했던 소통의 기능도 사라지거나 축소되었다. 불이 있어 난방과 취사를 담당했던 부엌은 점차 취사만을 위한 주방으로 변모했고, ‘큰 장소’라는 의미의 마당은 아파트에서는 구조적으로 존재 자체가 불가능했다. 신성한 불이 있던 부엌에 전기레인지가 도입되면서 불꽃은 모습을 감추었으며, 결혼, 놀이, 노동의 공간이었던 마당은 모든 기능을 다른 곳으로 이전해야만 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흉가로 쉽게 변한다. 일본의 소설가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는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괴담소설 '안주'에서 집의 외로움이 만들어낸 요물 구로스케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부부가 거의 방치되어 있던 수국(水菊) 저택에 살게 되고 구로스케를 만난다. 그런데 이 부부와 친해질수록 구로스케는 작아지고 힘을 잃는다. 집의 고독이 만들어낸 구로스케는 집이 고독하지 않게 되자 사라져야만 했던 것이다. 소설에서 이 부부는 구로스케를 위해 집을 떠나지만 사실 이 이야기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집에는 집을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페이스북과 블로그 역시 이렇게 볼 때 새로운 집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이 찾지 않고 방문하지 않는 소셜미디어 공간은 곧 폐쇄되고 만다.

집은 무엇보다도 안락함의 공간이어야 한다. 집이 있다는 것은 내가 누울 곳이 있다는 것,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기억으로 우리는 힘든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살아갈 수 있다. 유배 중에도, 고된 일과가 끝나도, 여행 중에도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에서 우리는 위안을 얻는다. 술을 마셔도, 몸이 아파도 집에는 가야만 하는 것이다. 아일랜드의 가수 크리스티 무어(Christy Moore)는 영국에 맞서 단식 투쟁을 전개하다 1981년 감옥에서 사망한 바비 샌즈(Bobby Sands)를 추모하기 위해 <데리의 집으로 돌아가자>(Back Home in Derry)라는 노래를 불렀다. 집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주는 위안은 집이 인간의 삶에 있어 얼마나 큰 의미를 차지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우리는 집에서 기뻐했고, 슬퍼했고, 웃었고, 울었다. 이사를 갈 때 마지막으로 자기가 살던 집을 쳐다보면 어떤 뭉클한 감정이 생기는 이유는 집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집은 누가 뭐래도 혹독한 세상 속에 존재하는 우리의 마지막 보루이다.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이 사회-경제적 능력을 묻는 질문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집을 자본의 탐욕으로부터 지켜야 한다. 제발 집만이라도 우리의 안락한 보금자리로 남겨두자는 말이다.


이성재 충북대·역사학

충북대 역사교육과 교수. 프랑스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파리8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중세 말 근대 초 프랑스의 빈민, 동아시아 여성가극, 아일랜드 대중문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68운동》, 《지식인》, 《일본 여성가극 다카라즈카》, 번역서로 《빈곤에 맞서다》, 《악의 번영》(공역), 《빈곤의 역사》, 논문으로 〈중세말 근대초 소극(笑劇)에 나타난 빈민의 형상〉, 〈아프리카 역사의 역사교육적 가치〉, <일본의 축제와 웃음>, <아일랜드의 대중문화와 셀틱 타이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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