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과 연결의 페미니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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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과 연결의 페미니즘 철학
  • 양창아 부산대학교·사회철학
  • 승인 2022.04.02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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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의 말_ 『페미니즘 철학』 (앨리슨 스톤 지음, 양창아 옮김, 이학사, 407쪽, 2022. 02)

 

앨리슨 스톤(Alison Stone)의 『페미니즘 철학』(원제: An Introduction To Feminist Philosophy)은 페미니즘 철학을 정의하고, 페미니즘의 여러 정치적 입장을 둘러싼 논쟁을 다루며, 그러한 논쟁들 속에서 탄생한 페미니즘의 주요 개념들을 소개하는 종합적인 입문서다. 

책을 펼치면 곧 나오는 ‘이 책의 활용법’은 독자들이 주요 개념들의 기본적 의미와 변화된 의미를 알게 되고, 페미니즘 고전과 중요한 이차 문헌을 소개받으며, 다양한 페미니즘 사이의 논쟁을 살펴보게 되리라는 것을 예고하고 있다. 또한 목차는 ‘서문: 페미니즘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비롯하여 7개의 장이 각각 1) 섹스 2) 젠더 3) 섹슈얼리티 4) 성차 5) 본질주의 6) 탄생 7) 페미니즘이라는 제목을 달고서 개념 이해에 목마른 독자들의 기대를 한껏 불러일으킨다. 특히나 7개의 장 제목에 해당하는 개념들의 뜻이 궁금할 때 그 장을 펼치기만 하면 인터넷 영어사전에서 영단어의 뜻을 찾듯 손쉽게 개념을 파악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이 체계적인 구성은 논란 많은 여러 질문을 붙들고 있고, 그러한 질문들은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에서 반복되는 실천적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에 대부분 쉽게 해결될 수 없는 것이어서 답을 찾기는커녕 개념을 파악하는 일도 간단치 않다. 개념을 이해하려면 그것이 등장하게 된 현실 및 논쟁의 지형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섹스와 젠더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젠더라는 것이 존재해야만 하는 것일까? 남성은 이러해야 하고 여성은 이러해야 한다는 식의 구조적으로 다른 기대가 존재하는 데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이러한 기대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성적 감정이란 무엇일까? 성적 감정에 대해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방식에 남성적 편견이 스며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여성과 남성의 신체에 부여된 의미와 오래된 상징적 질서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무엇이 여성을 여성으로 만드는 것일까? 다양한 여성을 여성으로 만드는 어떤 공통적인 것이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페미니즘이 여성의 종속에 반대한다고 할 때 그때 종속은 어떤 의미일까? 종속에 반대하기 위해 평등을 추구해야 할까, 차이를 추구해야 할까?

스톤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자신의 답변을 나름대로 준비해놓고 있긴 하지만, 이 책에서 집중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대답보다도 이러한 질문을 둘러싸고 서로 대립하고 교차하는 페미니즘의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소개하고 그들 사이의 논쟁 지점을 뚜렷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페미니즘 교과서에 주로 나오는 기본적인 입장들, 즉 ‘자유주의 페미니즘’, ‘래디컬 페미니즘’, ‘사회주의 페미니즘’, ‘흑인 페미니즘’이 위의 질문들을 어떤 방식으로 제기하며 등장했고, 서로 어떻게 논쟁을 벌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그러한 논쟁이 섹스, 젠더, 본질주의 등의 개념을 재고하면서 어떻게 ‘차이 페미니즘’, ‘성차 페미니즘’, ‘젠더 전복적 페미니즘’과 같은 새로운 철학적 형식들을 생산해내고 있는지도 보여준다. 이런 과정은 특히나 실천적 시각에서 보면, 페미니즘 운동 내에서 얼마나 많은 집단들이 분열되었고 지금도 분열되고 있는지를 고민하게 한다. 그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더라도 책 안에서 이미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모여도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달려 나갈 수 없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소위 ‘전 지구적 페미니즘’으로 분류되는 입장들 가운데는 여성의 종속을 구체적으로 고민함에도 페미니즘이라는 이름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스톤은 실제로 경합하는 여러 페미니즘 사이에서 또는 평행선을 달린다고 표현할 만한 여러 입장 사이에서 직접적인 연결 지점이나 교차 지점을 마련하지는 못하지만, 이론적인 측면에서 공유할 만한 최소한의 공통 가치를 추출해낸다. 그렇다고 그가 생물학적 환원론 같은 본질주의에 빠지거나 여성 범주에 대해 비판하는 반(反)본질주의적 입장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야겠다. 스톤은 “모든 페미니스트가 여성이 종속되어 있고, 이런 종속이 변화될 수 있고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종속이란 “한 사람 또는 집단이 다른 사람 또는 집단보다 덜 중요하거나 더 낮은 지위에 있거나 부차적으로 여겨지거나 굴종하는 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소개한 다양한 페미니즘의 주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구체적인 여성의 현실을 살펴보면, 어떤 여성은 성별이나 성적 측면뿐만 아니라 계급적․인종적 측면에서도 종속되어 있다. 그리하여 대표적으로 벨 훅스 같은 페미니즘 철학자는 페미니즘이 성차별주의적 억압에 대한 투쟁이라면 그것은 모든 ‘지배 체계’에 대한 투쟁의 일부가 된다고 주장한다. 스톤은 페미니스트가 성차별주의적 억압에 반대하기에 억압 일반에도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이 주장을 받아들여, 페미니스트들이 두 종류의 평등에 헌신할 수 있고 헌신해야만 함을 주장한다. 하나는 넓은 의미의 평등, 즉 도덕적 평등이고, 다른 하나는 좁은 의미의 평등, 즉 접근권의 평등이다. 후자는 소위 ‘평등 페미니즘’과 ‘차이 페미니즘’ 사이의 어려운 문제가 남아 있어 여전히 논쟁적이지만, 전자는 어떤 페미니즘도 지지할 수밖에 없는 공통 가치이다. 도덕적 평등의 원칙을 스톤은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모든 인간 개인은 도덕적 가치에서 평등하고 그 자체로 대우받을 자격이 있다. 이 점에서 여성도 예외가 아니다.” 이와 같은 원칙은 페미니스트라면 다양한 여성이 처한 서로 다른 종류의 억압에 대해서 함께 투쟁해야 한다는 주장과 직결된다. 또 하나 강조하자면, 스톤은 ‘성별 이분법’을 받아들이는데, 그럼에도 그가 여러 입장을 세밀하게 검토하며 정의해낸 ‘여성’은 MTF 트랜스섹슈얼과 트랜스젠더를 포함한다.

 

                                                                    페미니즘 책들

스톤은 이 책에서 전체적으로 페미니즘 철학의 주요 문제로서 ‘페미니즘에 대한 정의’도 다루지만, ‘페미니즘 철학이 철학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답하고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전자에 대해 “페미니즘마다 여성의 종속에 대한 이해도,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변화의 방향 및 목표도 다르지만, 페미니스트라면 여성 종속에 반대하고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답을 했다면, 후자에 대해서는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답을 했다. 첫째, 서문부터 7장까지 빠지지 않고 페미니즘 윤리학, 철학사, 인식론 등 페미니즘 철학자들이 전개하고 창조해낸 사유의 영역들을 소개하는 방식, 둘째, 페미니즘의 정치적 헌신과 다양한 분과 학문을 넘나드는 학제성 때문에 페미니즘 철학은 철학일 수 없다는 편견에 대항하여 철학적 사유 자체가 정치적 헌신 및 학제성을 필요로 함을 주장하는 방식, 셋째,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에게 영향을 준 정치적 입장을 비판적으로 다시 사유하는 과정을 이들이 구성해낸 철학적 개념과 형식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이들의 작업 자체가 철학하는 일임을 드러낸 방식이 그것이다. 놀랍게도 페미니즘 철학의 자리를 마련하는 이러한 스톤의 응답은 페미니즘들 사이의 논쟁을 분열이라기보다 열려있는 철학적 사유로서 연결하여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덧붙이고 싶다. 이 책이 출판되고 한 지인은 사람들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페미니즘’과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 ‘철학’이 제목에 모두 들어간다며 염려했는데, 나는 그 염려와 더불어 적어도 세 부류의 사람들 ― 철학 전공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사람, 페미니즘에 정치적으로 헌신하는 페미니스트 ― 에게 이 책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1) 철학 전공자들은 중요한 철학의 한 분과로서 페미니즘 철학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할 것이고, (2)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이들은 페미니즘이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더라도 그 견해가 굉장히 다양하여 서로 다른 페미니즘의 입장과 논쟁을 어느 정도는 알아야겠다고 마음먹을 것이며, (3) 서로 다른 입장을 견지한 페미니스트들은 각자 자신의 신념을 검토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사실 파악보다도 책을 읽으면서 품었던 개인적인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또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이 책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책을 펼쳐 직접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양창아 부산대학교·사회철학

현재 부산대학교 철학과 강사로 재직 중이고,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부산대분회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부산대학교 철학과에서 사회철학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나 아렌트의 사상을 세부 전공으로 공부했고 그의 사상에서 시작하여 주디스 버틀러, 시몬 드 보부아르, 도나 해러웨이의 사상으로 관심을 넓혀가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나 아렌트, 쫓겨난 자들의 정치』가 있고, 역서로는 『페미니즘 철학』, 논문으로는 「‘말하기’와 ‘듣기’에 관한 사회 철학적 고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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