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정의와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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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정의와 기원
  • 박근서 대구가톨릭대·대중문화학
  • 승인 2022.04.02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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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대중문화, 정의와 기원』 (박근서 지음, 한국학술정보, 243쪽, 2021. 12)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은 한편 대중에 대한 관심의 산물이기도 하다. 대중은 누구인가, 따지고 들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일단 정치적이며 이념적인 부담을 덜어낸 ‘민중’ 혹은 ‘엘리트’의 반대되는 개념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대중문화는 사회를 이루는 다수 사람들의 삶에 대한 관심의 한 영역이다. 특히 그들이 누리는 ‘문화’에 대한 관심의 결과가 ‘대중문화’에 대한 학제적 담론이 될 것이다. 

대중문화에 대한 논의는 서구의 경우, 현상적으로 19세기에 본격적인 논의로는 20세기 초에 시작된 것이지만, 우리의 경우는 1960년대를 거치면서 본격화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어떠한 의미에서 이를 학제적 담론의 내부로 끌어들이고 이에 적극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것은 아마 1980년대 이후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1980년대의 ‘민중문화’에 대한 관심은 대중문화에 대한 학제적 담론을 풍부하게 펼치는데 크게 기여했다.

대중문화에 대해서 많은 논자들이 피지배계급, 즉 엘리트의 반대편에 있는 인간 집단의 문화로 정의하고, 따라서 이를 엘리트 문화에 대비해 설명한다. 이는 사회의 양적 다수의 문화이면서도 질적 다수의 문화로 자리 잡지 못하는 피지배성, 혹은 잉여성과 관련해 ‘정치적’ 이슈를 제기하도록 만든다. ‘헤게모니’라는 말로 대표되는 집단의 정체성과 그것을 사회의 주류적 삶의 지표로 옹립하려는 상징적 수준의 인정 투쟁은 무엇보다 ‘문화’ 영역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정치적 행위들의 격전으로 묘사된다. 

18세기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도시를 중심으로하는 근대의 문화적 기틀이 수립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19세기, 특히 빅토리아조의 영국에서는 기존의 민속문화를 대체할 새로운 형태의 문화적 씨앗들이 여기저기서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유혈스포츠(투견, 투계 등)나 유랑극단 혹은 서커스단 중심의 볼거리 문화들이 자본과 결합하며 빠르게 실내화되고,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좀 더 유순하고 부드럽고 안정된 문화적 형식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은 한편으로 성인 남성 중심의 마초적인 문화양상을 가족적이며 여성 및 아동 친화적인 형식으로 변화하게 만든다. 

<<대중문화, 정의와 기원>>은 이러한 대중문화 형성기의 문화적 양상을 기술하는 대중문화사의 한 편린이다. 대중문화에 대한 가장 두터운 논의는 ‘문화연구’라 통칭되는 영국 버밍햄 대학 현대사회문화연구소 중심의 작업과 성과들 그리고 그 직간접적인 후계들로부터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이들 논의의 이론적 뿌리는 사상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나 프랑스구조조의를 대표로 잡고, 이론적으로는 정치경제학, 기호학, 언어학, 정신분석학으로부터 많은 개념과 언설을 차용한다. 하지만 이들의 방법과 관점에 또 하나 중요한 영향을 준 학문분과는 아마 ‘문화인류학’이 아닐까 싶다. 문화 인류학이 사람과 그들의 삶을 다루는 방법 그리고 태도는 문화연구에 가장 중요한 뿌리를 이룬다.

그러나 문화연구는 문화인류학으로부터 받은 만큼 그 성과를 되돌려 갚고 있진 못한 것 같다. 문화연구에서의 문화와 대중문화의 정의가 단박에 그러하다. <<대중문화, 정의와 기원>>의 앞 부분에 장황하게 논의된 대중문화의 ‘정의’에 대한 내용은 이러한 아쉬움에서 서술된 것이다. 윌리엄즈로부터 시작된 문화연구의 대중문화 정의를 ‘인류학적’이라고 표현하고 가르치면서도 정작 인류학적 유산에 대해서는 깊게 언급하지 않는 것은 분명 모순이었다. 타일러, 보아스, 크뢰버와 클루크혼을 언급한 까닭은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였다. 더구나 인류학은 대중문화의 발생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학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 엘리트의 대중문화에 대한 이해라는 관점에서 인류학의 관점 변화와 이를 별개의 학제적 영역으로 끌어 들여온 문화연구의 생성은 여러 수준에서 흥미로운 논점이 될 것이다. 

19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프랑스와 미국을 거치면서 지금 우리가 누리는 대중문화 얼개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그 양상이 20세기와 더불어 식민지라는 왜곡된 문화적 삶을 강요 당한 우리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돋움했는지를 살피는 것 또한 <<대중문화, 정의와 기원>>의 중요한 내용이다. 대중문화라는 영역 자체의 넓고 깊음이 짧은 한권의 책으로 그 생성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도록 만든다. 당연한 일이지만, <<대중문화, 정의와 기원>>의 기술은 흩어진 몇 개의 파편을 모아 얼기설기 엮어논 넝마에 불과할지 모른다. 친절하고 사려깊은 저자라면 이 넝마 혹은 앗상블라주에 쉽고 확실한 핍진의 열쇠들을 영리하게 배치하겠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래도 독자들의 해석학적 실천과 총명한 핍진 능력이라면 이 넝마를 통해서도 나름 대중문화 형성기의 어떤 모습들을 이미지화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서둘러 논의를 닫고 짧게 결론을 적었지만, 그리고 그 결론이 앞의 논의들로부터 충분한 논리적 응집성과 순탄한 전개를 보장할지는 모르겠지만, <<대중문화, 정의와 기원>>이 하나 놓치지 않으려 했던 한 가지 메시지는 대중의 문화적 권능이 더욱 힘을 얻는 과정은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관철되고 있다는 점이다. 21세기에 무슨 계몽적 진보 서사냐고 핀잔하실지는 몰라도, 더 많은 사람이 역사에 자기 얼굴을 드러내는 일은 인간이 지구에 생겨난 이래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은 사실이었다. 그 양상을 하나의 서사, 하나의 원리, 하나의 모델로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이는 부정하기 힘든 역사적 사실이고, 또한 문화의 영역에서 역시 여지 없이 관철되고 있다. 그러므로 <<대중문화, 정의와 기원>>은 이러한 점에 착목하고 그 과정을 가급적 어떤 이론적 서사의 틀에 가두지 않고 찬찬히 기술하려고 했다. 

한편 대중문화를 공부하고 고민하는 학생들을 생각해 가볍게 옛날 이야기를 듣듯 읽을 수 있도록 했고, 자료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등장하는 인물의 생몰연도나 관련 사건들의 기록물들을 모두 확인해 적어 넣으려 애썼다. 그리고 또 하나, 가능하면 우리 연구자의 성과들을 우선 언급하고자 생각했는데, 그건 이미 우리에게 수많은 좋은 연구자들이 있음에도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담론의 공동체는 요원한 것 같아서다. 성공했을지조차 의문스러운 작은 노력이지만 서로를 인정하는 가운데, 우리의 논의가 더욱 단단하게 넓고 깊은 지평을 확보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막상 책으로 나온 걸 보니, 눈에 띄는 실수도 많고 잘못된 생각도 있다. 독자 여러분들의 가르침과 충고를 구한다고 한다면 너무 무책임하고 뻔뻔한 소리가 될까?  


박근서 대구가톨릭대·대중문화학

대구가톨릭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교수.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대중문화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전규찬과 공동 저술한 『텔레비전 오락의 문화정치학』(2003)은 이러한 주제에 천착한 결실이었다. 이후 비디오게임을 중요한 대중문화적 현상으로 파악하고 이에 적극 개입할 것을 주장했다. 게임을 텍스트의 관점이 아닌 수용자의 문화적 실천의 측면에서 이해하고자 한 『게임하기』(2009)는 이러한 관심의 산물이었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복잡계이론, 포퓰리즘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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