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교과서, 표현 바꿔 강제동원 강제성·불법성 은폐…연행·동원·징용 등 개념 재정의해야“
상태바
"日교과서, 표현 바꿔 강제동원 강제성·불법성 은폐…연행·동원·징용 등 개념 재정의해야“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4.02 12: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고교 교과서 '강제연행'·'일본군 위안부' 등 용어 삭제… 합법성 더 강조
- "독도 관련 서술도 악화해…한중일 민간 교류 강화해야"

 

30일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동북아역사재단,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주최로 2022년도 일본 고교 검정교과서 내용 분석 전문가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br>
30일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동북아역사재단,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주최로 2022년도 일본 고교 검정교과서 내용 분석 전문가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내년부터 일본 고등학생이 사용할 사회과 교과서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연행’ 등의 표현이 삭제된다. 이러한 서술 변화에서 전시체제 식민지 노무동원의 강제성과 불법성을 은폐하려는 일본 정부의 의도가 읽힌다는 지적이 국내 학계에서 나왔다. 

‘종군위안부’ ‘일본군 위안부’ 등의 표현이 ‘위안부’로 수정된 것 역시 동원의 주체와 강제성을 모호하게 하려는 시도라는 견해와 함께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무 동원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일본 정부 방침에 대응하려면 '강제연행', '강제동원', '징용' 등 한국과 일본 사이에 의미가 미묘하게 다른 용어들을 명료하게 재정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와 더불어 한국이 일본 정부의 지침을 직접적으로 바꾸기는 어려운 만큼, 역사왜곡에 반대하는 양국 학계와 시민사회의 연대를 강화해서 교과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동북아역사재단’은 30일 서울 서대문구 재단사무실 대강당에서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와 ‘2022년도 일본 고교 검정교과서 내용 분석 전문가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일본 문부과학성이 발표한 교과서 검정 심사 결과에 대한 분석 및 대응책 마련을 위해 마련됐다. 전날 일본은 내년도 고교 고학년용 교과서 239종이 검정을 통과했다고 밝혔다.

한혜인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연구위원은 세미나에서 전날 검정 심사를 통과한 ‘일본사 탐구’ 교과서 7종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한 위원은 이들 교과서의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 강제동원 관련 서술에서 기존의 ‘강제 연행’이라는 표현이 ‘동원’ 혹은 ‘징용’으로 수정됐다고 밝혔다. 조선인 노무동원은 ‘강제 연행’이 아닌 ‘징용’으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작년 4월 일본 각의(閣議·내각회의)의 결정이 반영된 결과다.

앞서 문부과학성은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재임하던 2014년 고교 교과서 검정 기준을 통해 ‘각의 결정이나 다른 방법으로 표현된 정부의 통일적 견해’가 있으면 역사 교과서에 이를 기술하도록 정했다. 이후 일본은 지난해 4월 국회 질의 형식을 빌려 “‘종군 위안부’나 ‘조선인 강제 연행’과 같이 강제성을 띄는 용어는 부적절하며 군과 위안부는 분리해서 설명해야 한다”는 각의 결정을 내놨다.

한 위원은 이 같은 기술이 “조선인 노무동원의 불법적 강제성을 소거·부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들 교과서가 중국인 등 점령지 주민의 노무동원은 여전히 ‘강제 연행’으로 기술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한 위원은 “일본 정부 입장에서 중국과 조선의 강제동원은 다르다. 점령지 노무동원은 ‘전쟁(범죄)의 문제’지만, 조선·대만 등 식민지 노무동원은 비록 강제성이 있더라도 전시체제의 ‘국민의 의무’ 차원에서 일어난 일로 본다”고 설명했다. ‘동원’ 혹은 ‘징용’이라는 용어 선택의 배경에는 조선인 노무동원이 일본 국가총동원법 국민징용령에 근거한 합법적 행위였음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주장이다.

고노담화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강제성을 인정한 담화다. 아베 신조 내각, 스가 요시히데 내각, 기시다 후미오 내각 모두 이 담화를 계승한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그러나 교과서에는 일본군의 잘못과 일본 정부가 져야 할 책임을 교묘히 감춘 탓에 이율배반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한 위원은 “강제동원과 관련해 좀 더 명확한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며 한국은 '강제연행'이라는 표현을 애초부터 사용하지 않았기에 이를 교과서에서 삭제한 일본 정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에서의 강제동원은 ‘법과 관계없이 강제적으로 모집됐다’는 뜻이지만, 일본에서는 전시 총동원체제의 (합법적) 동원을 의미한다”면서 “강제동원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증언 수집을 통해 징용령이라는 형식을 떠나 일본으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실제로 어떻게 강제되고 피해를 입었는지 실상을 조사해 일제강점기 노무 동원에 강제성이 있다는 확실한 근거를 일본에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KBS뉴스 캡처
                                               KBS뉴스 캡처

토론자로 나선 조윤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도 “일본에서는 강제동원의 합법성을 강조하기 위해 ‘징용’이란 표현을 쓴다”며 용어 사용 논의에 대한 필요성을 거들었다. 조 위원은 "조선인은 '징용', 중국인은 '강제연행'이라는 기술은 일제가 조선인을 합법적으로 동원했음을 강조한 것"이라며 이러한 태도가 사도(佐渡)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과정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우리 언론이 사용하는 '징용'은 일본이 동원의 합법성을 나타내려고 쓰는 용어라는 점을 고려해 관련 용어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종군 위안부' 용어에서 '종군'이 삭제된 데 대해서는 "피해자를 동원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 같다"며 "위안부는 존재했으나 일본이 책임져야 할 '일본군 위안부'는 없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 일본 정부의 본심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그리하여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는 군이나 정부의 책임보다는 업주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소단원으로 ‘식민지’를 따로 다룬 짓쿄출판사의 ‘일본사탐구’를 분석한 홍종욱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는 “일제를 근대 문명의 전파자로 그려 학생들에게 그릇된 역사관을 심어 줄 수 있다”고 우려하며 “식민지 문제에 민주주의와 인권, 전시 성폭력 등 국제법적 문제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한혜인 위원은 일부 교과서에서는 집필자들이 강제동원과 위안부 문제에서 강제성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고 평가했다. 한 연구위원은 각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일부 출판사 집필진들이 위안부가 강제로 동원됐다는 사실을 교과서에 기술하려고 상당히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하면서 “산케이(우익 성향 언론)가 공격하기 전에 우리들도 보호해줘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조윤수 위원 역시 강제연행의 의미를 풀어서 기술한 교과서들을 근거로 “(일본 정부에 대한) 반발감 때문인지 어찌된 때문인지 강제란 의미가 들어가도록 기술한 교과서들이 보인다. 잘된 기술에 대해서도 유의해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세미나에서는 일본 교과서에서 독도 관련 일본의 영유권 왜곡 주장을 담은 기술이 강화되고 있다는 분석과 비판도 나왔다.

은정태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운영위원은 "독도를 기술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사탐구' 7종 중 2종에서 자발적으로 독도를 언급했다"며 "일부 교과서에서는 학습 활동에까지 독도 관련 내용을 반영해 독도 교육을 강화하고자 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일본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란 분석이다. 2014년 일본 정부는 개정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서 독도가 자신들 고유의 영토라는 내용을 교과서에 넣도록 했다. 2018년에도 고교학습지도요령 개정안에서 이를 재확인했다.

은 위원은 "'정치경제' 교과서에서는 일본이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가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국은 이를 부인하고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기술했다"며 우리 정부의 명확한 점검과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매년 반복되는 일본 교과서 역사 왜곡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있을까.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정책실장은 점차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일본 정부의 '교과서 도발'에 대처하려면 한중일 학자들의 민간 교류를 강화하고, 합리적 시각이 담긴 공동 교재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남 실장은 교과서 관련 문제가 벌어지면 “정부는 주한일본대사나 총괄공사를 불러서 항의하고 동북아역사재단은 수정 요구를 만들어서 일본 정부에 제시한다. 그러면 일본 교과서 기술이 바뀌는가? 실제로 바뀌지는 않는다”면서 역사왜곡에 부정적인 양국 학계와 시민사회가 노력하면 교과서가 바뀐다고 설명했다.

남 실장은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다이이치 출판사의 교과서를 사례로 들었다. 짓쿄와 시미즈, 야마카와 출판사는 정부의 지적에 따라서 조선인 전시 노무동원을 ‘연행’ ‘강제연행’에서 ‘동원’으로 바꿨으나 다이이치 교과서는 ‘강제연행’ 표현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동원’은 전시의 합법적 동원을 말하는 것으로 한국에서 사용하는 '강제동원'과 비슷하지만 뜻이 다르다. 다이이치 교과서는 강제성이 부각되는 ‘강제연행’이라는 표현을 본문에 그대로 두는 대신 ‘2021년 4월 일본정부는 전시 중의 조선 반도에서 노동자가 온 경위는 여러 가지로, ’강제연행‘이라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각의 결정을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연행에 해당하는 사례도 많다는 연구도 있다’고 주석을 달았다.

남 실장은 “일본 교과서를 쓰는 기준으로는 ‘정부의 통일된 입장을 반영한다는 것’도 있으나 학계의 연구 성과도 반영하도록 돼 있다”면서 그 때문에 다이이치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민간 차원에서 한·중·일 학자들이 모여 공동 교재를 만드는 등 교류를 확대하는 것이며, 공동 연구와 교류 확대를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그 연구 성과가 교과서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남 실장은 하지만 “양국의 교류가 2010년 이후에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라면서 “한중일 간의 민간 교류를 제도적으로, 재정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토론을 주재한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소장은 “민간 차원에서 (양국의) 공동 교재를 만들려는 노력들을 해왔는데 거기에 참여했던 분들이 짓쿄 출판사에 많이 있다”면서 “다만 필자들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드러냈을 때 일본의 우익들이 바로 공격하기 때문에 (교류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이 소장은 “한일관계가 좋아져서 여러 곳에서 교류가 벌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