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기록으로 만나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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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기록으로 만나는 역사
  • 정연경 이화여자대학교·문헌정보학
  • 승인 2022.03.2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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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기억의 기록으로 쓰는 구술사』 (정연경 지음,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488쪽, 2022. 01)

 

1.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기록하여 역사로 남길 것인가?

기록은 그 시대를 보여주는 수많은 창(窓)이다. 인간의 활동을 담은 기록은 기억의 조각을 모아 지나간 시간을 그려보게 하며 과거를 재현할 수 있게 해준다. 그 중에서도 구술 자료는 한 사람의 생애사적 경험의 구술을 기록한 것으로 구술자의 생애사적 기억이 구술을 통해 그 시대와 만나는 것이다. 이렇게 구술 자료는 인간의 행위에 대한 증거 및 정보로서 당대 사회상 및 집단 기억을 전승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다양한 주체의 다양한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특히 공공 기록만 가지고 우리 시대를 복원하거나 재구성할 수 없다는 인식을 하게 되면서 민간 기록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구술 자료에 관심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그 시대를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의 기억을 기록한 구술 자료는 구술성, 주관성, 공동 작업이라는 특성을 갖고 구술자의 삶과 경험, 기억을 담은 유일하고도 중요한 자료로 세대 간, 집단 간의 이해와 소통을 이끄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중요한 문화 콘텐츠 자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구술 자료의 생산 주체가 각기 상이하고 생산기관별로 독자적인 아카이브를 운영하고 있어 자료가 기관별로 산재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로 인해 현재 각 기관 및 단체가 소장하고 있는 구술 자료에 대한 소장 파악이나 관리 상태를 알 수 없으며, 그에 따른 소실 위험과 자료로서 활용도 저하, 구술 원자료에 대한 소홀한 관리 등 국내 구술 자료의 관리 및 보존 현황의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더불어 구술사를 학계에서 교육하고 훈련하는 공적인 교육시스템이 부족하고, 수집된 구술 자료의 양에 비해, 문화 콘텐츠로 활용되는 경우도 무척 적은 편이다. 

이에 비해 외국의 경우, 많은 국가대표기관들이 국가지식정보자원 보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 구술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법령을 기반으로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여 구술컬렉션을 구축하고 제공하여 후속 세대들이 과거를 기억하게 하고 선조들의 꿈과 투쟁을 전승해오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한 나라와 지역의 역사가 나의 조상들의 삶에서 나의 삶으로, 그리고 다음 세대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배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록되지 않아서 사라질 뻔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남기고 들려주는 것은 공동체의 기억을 복원하고 공유·확산시키기 위해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영국국립도서관 National Life Stories 웹사이트(출처: https://www.bl.uk/projects/national-life-stories)

2. 구술을 통한 국가 유산의 지식 창출

구술은 구술자의 기억을 통해 재현된 내용을 기록화하는 작업으로 구술사는 구술기록에 근거한 역사 기술이면서, 구술로 생산된 자료라는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구술 자료의 수집, 관리 및 보존은 그 자체로 국가 유산의 지식 창출과 활용이면서 지역 문화의 가치향상을 도모하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고, 상호 연관된 관계의 집합체로서 지역민들에게 소속감과 정체성을 확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구술사 면담은 오디오나 비디오 형식으로 잘 준비된 면담자가 피면담자에게 질문을 하고 그들의 대화를 녹음이나 녹화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면담의 녹음이나 녹화는 기록되고 녹취 과정을 거쳐 녹취록이 나오고, 요약되거나 색인되어 원자료와 함께 보존된다. 이렇게 생산된 구술 자료는 연구자들을 위해서 사용되거나 출판물, 방송 다큐멘터리, 전시, 드라마, 또는 공적인 표현의 다른 형태 안에서 발췌되어 사용된다. 

이 책은 이러한 전 과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을 주로 다루었다. 이를 위해 각 장은 구술사와 관련된 각각의 다른 역할을 담았다. 1장에서는 구술의 의미와 의의, 구술사의 역사를 살펴보고 구술사의 특성을 짚어보면서 구술사와 기억에 대한 글로 전반적인 내용을 구성했다. 특히 기억과 구술사의 관계, 기억을 일깨워주거나 희미하게 만드는 요인들을 살펴보고 구술사에 끼친 영향을 짚어보았다. 2장에서는 구술 기록과 구술 자료의 범주 및 특성과 함께 구술사의 국내 연구 동향을 정리해보았다. 3장에서는 구술 자료의 수집 과정인 면담에 대해 설명하고 면담 전략과 기술, 면담 방식, 그리고 녹취록의 다양한 측면을 다루었다. 특히 코로나19가 가져온 대면 면담과 원격 면담의 진행 방식에 관해 상세히 짚어보았다. 

4장에서는 구술사로 진행된 다양한 분야의 적용을 찾아 그 의의를 들여다보고 구술사가 면담과 구술 자료의 수집을 넘어서 새롭게 확장되고 있는 사례를 살펴보았다. 5장에서는 구술 자료 수집 기관을 국내의 중앙정부 및 산하기관, 지방정부 및 산하기관, 도서관, 문화원을 중심으로 먼저 찾아보고 각 기관의 특징과 구술 채록을 짚어보았다. 그리고 국외 사례로 미국과 영국, 호주의 국가 대표 도서관들의 구술사 컬렉션과 프로그램에 관해 비교했다. 6장에서는 구술사와 연구윤리에 관한 쟁점과 법적 문제에 대해 논했다. 7장에서는 디지털 환경에서의 구술사에 대해 살펴보고 구술사의 한계, 그리고 구술 기록의 국가자원화를 통한 구술사의 지향점을 제시해보았다. 

각 장에서 적용 가능한 많은 사례를 언급하고자 노력했으나 구술사의 복잡성을 염두에 두고 구술 면담자나 연구자는 면담 과정으로부터 무엇을 얻고자 할 것이며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 책에서 구술사에 대한 소개를 하면서 구술사의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는 많은 논문과 책을 인용하고 현재의 쟁점까지 요약하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구술사의 과정과 해석이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에 구술사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단 한 가지의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3. 시대의 창(窓)을 통한 문화유산의 전승 

사람들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망각하며 어떻게 이러한 기억들을 표현하는가? 이러한 기억의 의미를 끌어내고 경험을 기록하여 역사의 한 부분으로 남기는 것이 구술사의 핵심이다. 그래서 구술사는 기록된 면담을 통해 역사적 중요성을 부여할 수 있는 개인적인 경험의 해석과 기억을 수집한다. 이러한 구술사는 사람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유명한 인물만이 아니라 다수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을 세상에 드러나게 해줄 수 있다. 구술은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자기 확신을 가지고 사회계급 및 세대 간에 소통을 가져와 상호 이해를 확대시켜 지역과 시대에 소속감을 줄 수 있다. 

흩어져 있던 지역 공동체 의식을 고취하고 지역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지역 구술은 지역자료를 보강할 기회이자 공동체 정신의 활성화를 위한 탁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지역 중심의 특화된 구술 자료의 수집을 시작함으로써 구술 자료의 국가자원화에 기여하고 구술 자료의 이용을 촉진하면서 지속적인 관리·보존을 통해 공동체 역량을 키워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이 시대의 구술기록이 가진 역사적 의미와 증거적 가치를 국가지식유산으로 후대에 전승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구술 자료의 국가지식 자원으로서 가치를 재평가하고 기본 계획을 수립하여 국가 차원의 통합 관리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각 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구술 자료에 대한 공동 목록이 가장 우선적으로 작성되어야 하며, 기관 고유의 주제와 영역을 갖고 구술수집이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구술 자료의 수집, 관리, 보존 서비스 절차를 마련하고 구술 자료 메타데이터의 개발 및 표준화, 구술 자료의 지속적인 디지털화를 통해 다양한 지역 공동체의 생생한 기억을 담고 있는 구술 자료를 수집하고 활용 및 보존하여 이야기를 공유하고 미래 세대에 전해주는 새로운 방향에 적극 동참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지역의 구술사 컬렉션이 마련된다면 그것은 우리들의 삶, 우리들의 시대, 우리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되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국가지식문화유산이면서 국가발전에 중요한 자원으로 후대에 전승되어 늘 살아 있는 정보원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구술 자료의 수집만이 아니라 관리와 활용 및 보존까지 통합적으로 관리되어 세대를 넘어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정연경 이화여자대학교·문헌정보학/기록관리학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에서 도서관학으로 석사학위, 문헌정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문헌정보학과 교수 및 기록관리교육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한국문헌정보학교수협의회 회장, 한국도서관협회 국제교류위원장, 국가기록원 기록관리교육센터 자문위원,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진흥심의회 심의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한국사립대학도서관협의회 회장, 한국기록관리학회장,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구술 아카이브 시스템의 구축과 활용』, 『지식정보분류론』, 『논문작성법』, 역서로 『서양도서관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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