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예술에 새겨진 불평등한 섹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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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에 새겨진 불평등한 섹스의 역사
  • 김지현 기자
  • 승인 2020.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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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당하는 여자, 하는 남자: 침대 위 섹슈얼리티 잔혹사 | 김종갑 지음 | 다른 | 248쪽

 

이 책은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까지 이르는 인간의 성과 사랑의 연대기로 남성 중심적으로 규정되고 규범화된 성의 역사, 즉 성에 대한 남성 권력의 역사를 탐구한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본디 사적이고 본능적인 것이다. 하지만 남성의 권력은 성을 지배해왔다. 우리 사회에서 남자는 항상 섹스를 ‘하는’ 놈이고 여자는 ‘당하는’ 존재다. 남자는 여자를 ‘따먹고’ 여자는 ‘처녀성을 잃는다.’ 남자는 항상 침대에서 ‘적극적’이고 여자는 ‘부끄러워야’ 한다. 자연스러운 인간의 짝짓기가 사회를 만난 순간, 그것은 그 어떤 것보다 정치적인 것이 되었다. 영문학자이자 몸문화연구소 소장인 저자는 인간 사회 속에서 성이 어떻게 정치와 맞닿아왔는지를 문학과 예술 작품 속에서 찾는다.

1장 <그리스 로마 시대, 5세기 이전>에서 저자는 묻는다. 그리스 신화에서 강간을 저지르고 다니는 제우스는 어떻게 그렇게 당당한 것일까? 왜 항상 남자는 ‘하는’ 놈이고 여자는 ‘당하는’ 존재인가? 2장 <초기 기독교와 중세시대, 3~15세기>에서는 ‘중세의 신학자들은 생식과 성욕의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했을까?’를 궁금해 한다. 이는 ‘처녀 찬양은 무엇을 위해 생겨나기 시작했나?’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3장 <르네상스 시대, 14~16세기>에서는 그림 속 성모 마리아의 유방이 커진 것과 근대의 발전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유추한다. 그리고는 묻는다. ‘유방은 언제부터 에로틱한 존재가 되었나?’

4장 <계몽주의 시대, 17~18세기>는 계몽주의 시대 연인의 그림은 왜 항상 여자는 자연을 보고 남자는 여자를 바라보는 구도로 그려졌는지에 주목한다. 이어지는 질문은 ‘성욕이 왕성한 여자는 미개한 것인가?’이다. 5장 <빅토리아 시대, 19세기>에서는 19세기 진화론과 백인 우월주의가 여자의 성욕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개인주의는 사랑의 풍경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를 고찰한다. 마지막 6장에서는 20세기 성 해방의 시대, 동굴 밖으로 나온 섹스는 진정한 자유를 맞이했는지를 성찰한다.

이 책은 수많은 문학과 그림, 연극 등 예술작품 속 인물들의 이야기에서 성이 어떻게 규정되고 변화되어왔는지 그 기록을 찾는다. 직접적인 예화로 접할 수 있는 시대의 생활상은 이론적인 서술보다 훨씬 흥미진진하고 생기발랄하다. 저자는 이 책의 정치적 편향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그는 “인류 역사의 90퍼센트는 남성이 여성을 억압함으로써 가부장적으로 권력을 독점하려는 시도의 연속”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섹슈얼리티, 성(性)의 해방이 두 가지 의미로 일어났다고 해석한다. 하나는 성이 생식이라는 종족 보전의 목적에서 해방되고 인류가 성적 쾌감을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때 섹슈얼리티는 가문의 의무가 아닌 개인의 취향이 된다. 또 다른 성의 해방은 여성에게 유난히 억압적인 가부장 제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과거 남성의 역할은 능동적이고 여성에게는 수동성이 강요되었다. 성의 해방은 그러한 가부장적 규범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남녀의 바람직한 성적 관계는 상호 존중과 인정 그리고 자유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 기쁘고 행복한 성 관계를 지향해야 함을 강조한다. 저자는 이 책이 남성 중심적으로 규정되고 규범화된 쾌락의 메커니즘을 전복하고 역사적으로 계속되어온 남녀문제의 실마리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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