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계몽의 자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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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계몽의 자식들’이다
  • 김지현 기자
  • 승인 2020.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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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근대 세계의 창조: 영국 계몽주의의 숨겨진 이야기 | 로이 포터 지음 | 최파일 옮김 | 교유서가 | 1,120쪽

 

근대 유럽의 18세기는 ‘계몽의 세기’ 또는 ‘이성의 시대’라고 불려왔다. 종교적 도그마에서 벗어나 인간 정신의 해방과 진보를 추구한 계몽 사상가들은 한낱 이성을 앞세운 몽상가들이었을까, 아니면 실제로 정치나 사회를 변혁했던 것일까? 계몽이란 그저 지식의 해방운동에 그쳤던 것일까, 아니면 인간 심성의 지각변동을 가져왔던 것일까? 계몽주의는 혁명에 맞설 예방주사였는가? 그것은 인류를 수렁에 빠트렸는가, 꽃길로 이끌었는가? 이 책은 인류 사상의 역사에서 돋보이는 영국 계몽주의의 선구적 위상에 주목한다. 저자는 로크, 뉴턴, 하틀리, 흄, 스미스, 프리스틀리, 페인, 벤담, 고드윈, 울스턴크래프트 등 당시 진보적 지식인들의 사고를 고스란히 드러냄으로써 무엇이 그들을 움직였는지 이해하고자 한다.

저자는 영국 계몽주의가 가증스러운 것을 타파하라고 부르짖지도 않았고 혁명을 불러오지도 않았다면서, 영국에는 볼테르가 투옥된 바스티유 감옥이 존재하지 않았고 비국교도는 신앙의 자유를 누렸으며 이단자를 화형시키는 장작단의 불은 진즉에 꺼졌다고 지적한다. 이런 의미에서 18세기 영국 사회는 이미 계몽을 이룩했고, 그렇게 이룩된 체제를 정당화하고 수호하는 작업이 중요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에 영국 계몽주의만의 ‘영국성’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것은 타도나 전복만이 아니라 새로운 체제의 창출과 정당화에도 헌신하는 계몽주의, 혁명에 대한 ‘예방주사’와 같은 계몽주의다.

계몽주의의 진정한 발상지는 영국이라 생각하는 저자는 스튜어트 왕가를 몰아내고 의회의 제한을 받는 군주정이라는 혼합 정체를 수립한 1688년 명예혁명에서 영국 계몽주의의 출발점을 찾는다. 또한 그 후의 ‘혁명적 협정’은 인신과 소유의 안전을 보장하고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폭넓은 관용과 여러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헌정 체제를 사실상 자유화했다고 본다.

1697년 출판에 대한 사전 검열이 폐지됨에 따라 언론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가 크게 확대되었다. 로크는 종교적 관용을 설파했고, 합리성으로 기독교 신앙을 새롭게 정제했다. 이러한 작업은 다시금 다음 세대의 이신론과 더 나아가 무신론으로 나아가는 길을 닦았다. 세상은 세속화되고 탈주술화되었다.

베이컨은 새로운 학문 연구 방법론을 역설했고, 뉴턴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과학은 자연 세계뿐만 아니라 인간 세계에도 적용되는 새로운 해석틀로 기능하며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양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홉스 등의 철학자들은 감각주의와 경험주의를 토대로 인간의 본성과 자연, 도덕과 사회에 대한 새롭고 급진적인 시각들을 제시하면서 심리학, 인류학, 경제학과 같은 새로운 학문의 초석을 놓았다.

또한 ‘장기 18세기’ 영국 사회는 절대왕정의 전복과 더불어 상업화, 산업화, 소비사회의 출현과 같은 근대성의 여러 측면을 경험했다. 계몽주의는 이러한 근대적 변화들을 가져오고, 이해하고, 설명하고, 정당화하고 때로는 문제화하는 시도였던 것이다. 그런데 근대화는 새로운 딜레마를 야기했다. 토지 소유에 바탕을 둔 독립적 시민들의 덕성 virtu과 그들의 정치 참여를 통한 공공선을 강조한 고전 공화주의나 시민적 인문주의 전통은 더이상 활력 넘치는 상업사회를 뒷받침해줄 수 없었다.

여기서 흄은 상무정신과 공무 참여 같은 시민적 덕성보다는 사치스러운 쾌락, 즉 사적 욕망의 추구가 근면을 낳고, 근면이야말로 학문과 예술, 상업, 다시 말해 문명을 낳는다고 역설함으로써 새로운 상업사회를 옹호할 수 있었다. 문제는 제어되지 않는 개인들의 사적인 목표 추구가 도덕의 붕괴나 공적 질서의 전복으로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즉 ‘자기애’와 ‘상호 의존성’의 결합은 사적 이익의 추구가 자연스럽게 공공선을 도모함을 입증해보였다. 이로써 영국 계몽주의는 자기 해방과 쾌락 추구를 긍정하면서 개인의 자유로운 행복 추구를 보장하는 사회적 안정과 조화, 균형을 약속했던 것이다.

영국 계몽주의가 프랑스나 독일의 계몽주의와 구별되는 또다른 점은 철저한 개인주의다. 로크는 통치자에 맞서 개인적 권리들을 역설했고, 흄은 시민적 덕성보다 사적인 삶을 더 중시했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사적인 선을 공공선으로 유도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자유로운 시장에서의 개인 행위자를 옹호했다. 벤담은 모두가 평등하며 각자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가장 잘 판단한다고 주장하면서 개인적인 쾌락 계산의 공리를 정식화했다.

그렇듯, 계몽인들은 인류 행복의 추구라는 꿈을 꾸었지만 그저 ‘꿈꾸기만’ 한 사람들이 아니라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구체적인 길을 모색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만들어가던 세계는 우리가 물려받은 세계, 바로 오늘날 우리 대다수가 동참하는 세속적 가치 체계, 인류의 하나됨과 개인의 기본적 자유들, 그리고 관용과 지식, 교육과 기회의 가치를 옹호하는 세계였다. 그리하여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모두 ‘계몽의 자식들’이며, 그들 계몽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인 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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