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가 들려주는 19세기 파리, 돈 … 『오노레 드 발자크, 세기의 창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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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가 들려주는 19세기 파리, 돈 … 『오노레 드 발자크, 세기의 창조자』
  •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문학
  • 승인 2022.03.20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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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국내외를 막론하고 특정 작가에 대한 연구서 혹은 평전이 출간되기는 쉽지 않다. 우선은 문학작품의 독자층이 탄탄하게 형성되어 있어야 하고 나아가 역량 있는 연구자가 있어야 하며 출간된 연구서를 소비할 지식시장이 충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자 입장에서도 연구 기간과 대학에서의 실적 평가를 고려하면 논문 이외 저술작업에 많은 시간을 들이기 어렵다. 이런 어려움을 고려할 때 불문학자 송기정의 『오노레 드 발자크, 세기의 창조자』(2021)는 발자크 연구서로서, 문학 교양서로서 의미 있는 연구 성과이다. 발자크의 작품은 이미 80년대부터 『고리오 영감』, 『골짜기의 백합』 등이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되어 있어 우리 독자들에게도 친숙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2010년 이후에 초역된 사실과, 작가의 유명세와 90편이 넘는 방대한 작품을 고려하면 발자크는 오히려 전모가 알려지지 않은 작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오노레 드 발자크, 세기의 창조자』는 그야말로 19세기의 창조자로서의 발자크의 진면모를 알려주는 저술이 될 것이다. 특히 저자는 ‘파리’, ‘프랑스 대혁명’, ‘정치’, ‘과학’, ‘돈’, ‘법’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그의 작품을 꼼꼼하게 읽어내고 있다.

 

프랑스의 19세기를 알려주고 역사에서 삶으로 살아 숨 쉬게 만든 두 사람이 있다. 빅토르 위고와 발자크이다. 위고가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19세기를 혁명의 시대로 서술했다면 발자크는 역사와 정치는 물론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과 결혼관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보았다. 발자크는 채무자들을 피해 파리 곳곳을 이사 다녔기 때문에 그의 소설에는 200년 전 파리가 구글맵을 방불케 할 정도로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장 자크 루소도 ‘바빌론과 같은 꿈의 도시’로 믿고 있던 파리의 더러움에 경악했듯이 그 시절 파리는 “더럽고 위험했다.” 1801년에서 1850년 사이에 54만 명이던 파리 인구가 105만으로 늘어나다 보니 도시 기반은 열악했고 수도와 하수시설 같은 도시환경도 최악이었다. 소설 『페라귀스』에는 ‘진흙투성이’인 센강의 물을 어설프게 정화하여 마시는 과정과 파리 근대화를 가능하게 한 ‘부동산 투기 열풍’을 “당시 파리에서는 누구나 부지런히 뭔가를 짓고 허물곤 했다”라고 서술한다. 콜레라를 유발한 센강의 물을 정화하기 위해 하수도를 정비하고 도시 근대화를 완성한 것은 나폴레옹 3세와 파리지사 오스만의 작업 이후의 일이었다. 그밖에 루이 14세의 어린 시절 거처 팔레 루아얄이 정치적 공간을 거쳐 도박과 매춘의 중심지가 된 사실도 그의 등장인물의 삶과 관련을 맺는다. 당시 묘지 관련 법령에 따라 계획된 “축소된 파리 그 자체”인 페르 라셰즈 묘지에 ‘고리오 영감’과 작가 자신이 묻힌 것도 흥미롭다.

 

                                  페르 라셰즈 묘지(좌), 소설 『페라귀스』 속 인물들(우)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글을 쓴 발자크가 들려주는 돈과 결혼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 있는 은행, 고리대금, 어음, 차용증, 유산, 연금, 지참금 등에 관한 상세한 기술은 19세기 초 프랑스의 생활 물가는 물론 계층에 따른 생활수준, 돈 버는 법, 결혼제도에 대한 살아 있는 역사이다. 그의 등장인물 ‘그랑데’가 부를 축적한 방식은 당시 가장 유망한 돈벌이 수단인 국채 투자였다. 그랑데는 ‘세금도 없고 손실 위험도 없는’ 국채 투자로 43%가 넘는 이윤을 남긴다. 수전노 그랑데 영감이 결국 파산하면서 남긴 “돈은 사람처럼 살아 움직인다. 그것은 오고 가고 땀 흘리면서 스스로 생산한다”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사랑 없는 결혼은 가능하지만 돈 없는 결혼은 없다”라는 말이 말해주듯이 결혼 역시 돈과 무관하지 않다. 그의 등장인물 시몽 지게가 “아버지… 지참금이 그렇게 많은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죠”라고 한 말은 당시 젊은이의 결혼관을 보여준다. ‘결혼은 계약이다’라는 말도 돈의 중요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결혼 계약』에서 귀족 청년 폴과 상당한 지참금을 약속한 나탈리의 혼사가 오가면서 결혼은 이제 당사자가 아닌 공증인 간의 사업 영역이 된다. 이 금전적인 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지참금의 지급, 공동재산의 몫, 상속 재산, 사망 이후의 재산 문제 등이다. 공증인은 고객의 이익을 위해 유리한 계약을 끌어내려 모든 경제적 가능성을 검토한다. 결혼 계약은 대혁명 이후 몰락한 귀족과 돈을 기회로 신분을 얻고자 하는 신흥 부르주아의 결합으로 이어진다.

『오노레 드 발자크, 세기의 창조자』를 읽다 보면 발자크가 돈을 위해 풍속을 빌미로 날림공사에 가까운 글을 썼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말끔히 거두게 된다.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성과 정확하고 세밀한 사회상의 묘사는 물론 출판 계약을 파기할 정도로 지속된 퇴고 작업은 발자크의 작가로서의 치열함을 다시 한번 평가하게 만든다.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문학

건양대학교 휴머니티칼리지 교수. 서울대 대학원에서 프랑스 현대문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양대 휴머니티칼리지 브리꼴레르 학부 학부장과 박범신 문학콘텐츠 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 『글쓰기란 무엇인가』, 『투르니에 소설의 사실과 신화』가 있고, 번역한 책으로 『살로메』, 『춤추는 휠체어』, 『까미유의 동물 블로그』, 『축구화를 신은 소크라테스』, 『칸트 교수의 정신없는 하루-칸트 편』, 『데카르트의 사악한 정령-데카르트 편』, 『녹색 광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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