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역사 속 신음했던 제주 여성들의 삶과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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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역사 속 신음했던 제주 여성들의 삶과 고백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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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4·3과 여성, 그 살아낸 날들의 기록 : 4·3을 뚫고 나온 여성들, 그들이 날것으로 고백하는 최초의 생활사 | 허영선, 양성자, 이규배, 김창후, 허호준 지음 외 1명  | 각 | 292쪽

 

이 책은 제주4·3 경험자들의 구술채록으로, 제주4·3 시기를 살아낸 여성들의 삶과 생활을 담았다.

당시 가장 취약한 존재였던 여성들이 '살암시난 살았주'(살다보니 살았지)라는 수동적 자세가 아닌 그 시대를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살아낸' 여성들의 사연을 모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제주 여성들은 당시 10대 초·중반의 어린 나이거나 10대 후반, 20대 초반에 직접 4·3을 목격하거나 경험했다.

일제 강점기 제주와 오사카를 오갔던 정기 여객선 군대환과 강제 공출, 미군 공습에 대한 기억, 수용소 생활, 어린 나이에 보초를 섰던 경험, 4·3을 전후한 중산간과 해안마을의 생활상 등이 담겼다. 이와 함께 4·3 이후 물질로 식구들의 생계를 해결하고, 오늘의 삶을 이룬 이들의 모습 속에서 억척스런 제주 여성들의 참 모습을 보게 된다.

4·3 시기는 물론 일제강점기 제주여성들의 삶에 대한 기록은 매우 드물다. 이 책은 창립 30주년을 맞은 제주4·3연구소가 「4·3생활사총서」의 첫 편으로 내놓은 책으로, 4·3을 겪었던 여성들의 일상을 들여다봄으로써 4·3 전체상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4·3생활사총서」는 그동안의 구술채록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됐다. 단순히 4·3의 진상규명을 위한 기초자료가 아닌 4·3을 겪은 세대의 한 생애를 올곧게 기록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늦은 공감이 이루어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온전하게 일생을 드러내는 기록을 남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지만 여전히 다하지 못한 4·3체험자의 생애사를 담는 작업, 4·3 당시 생존담과 이후 삶의 이야기를 정리해 4·3이 관통한 삶을 살아낸 제주 사람들의 이야기를 묶어내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 대장정의 1권으로, 4·3이라는 비극의 역사 속에서 약육강식의 먹이사슬 맨 아래에서 신음했던 여성들의 신산한 삶을 그려냈다. 정부의 진상조사보고서에서도 4·3 시기 여성에게 가해진 참혹한 사례들은 남성들에 의해 자주 언급됐다. 제주 여성들의 삶이야말로 제주 근현대사의 피와 눈물의 시간대가 오롯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또다시 구술채록집이냐 반문이 있을 수 있지만, 기존의 증언들은 여성의 입을 통한다 하더라도 대부분 그 여성의 아버지, 남편, 아들 등 남성들의 활동이나 희생에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4·3의 1차적인 희생자들의 대부분이 남성들이었기 때문기도 하지만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정작 여성들의 삶을 온전하게 담아낸 구술채록집은 없었다. 이 책은 비로소 여성으로서 자기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남다르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억은 하나의 역사다. 그렇게 수많은 개인의 역사가 쌓여 이루어진 것임에도 현실에서는 너무 쉽게 언표되는 소위 ‘4·3사건’으로 남는다. 그러므로 그 ‘4·3사건’이 너무 쉬운 언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4·3 체험 세대 삶의 이야기가 꼼꼼하게 채록되고 기록돼야 한다.

이제 4·3체험자들은 8, 90대의 최고령자들이다. 그렇기에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그들이 겪은 일을 기억해내고 구술채록해 이렇게 묶어내야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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