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미래도 없는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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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미래도 없는 대학
  •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출판평론가
  • 승인 2020.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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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대학의 심장은 대학본부가 아니다. 대학도서관이다. 대학 운영을 지원하는 기능이 대학본부의 몫이라면, 대학도서관은 대학 운영의 목적성(교육과 연구)을 실현하기 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대개 중앙도서관이라고 이름을 붙이지만, 그렇다고 분관에 해당하는 단과대학별 도서관이 선진국처럼 충실한 곳은 드물다.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책을 보며 학습과 연구에 몰두하는 모습에서 학생과 대학, 나라의 미래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대학도서관에서는 어떤 미래상이 그려질까.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서 발행한 <2019 대학도서관 통계 분석> 자료에 따르면, 대학도서관 장서의 재학생 1인당 연간 증가 책수는 2017년까지 증가하다가 2018년 2.6권, 2019년 2.5권으로 2년 연속 하락했다. 대학의 총결산액 대비 도서관 자료구입비 지출 비율은 지난 5년간 변함없이 0.9%였다. 책과 자료를 구입하는 데 들이는 돈이 대학 예산의 1%도 안 된다는 얘기다. 한국도서관협회가 대학도서관 운영의 기준으로 명시한 비율(4년제 대학은 2% 이상, 전문대학은 1%)에 턱없이 못 미친다. 특히 전문대학은 그 비율이 2018년에 0.3%이던 것이 2019년에는 0.2%로 뒷걸음쳤다. 전국 대학도서관 직원 수도 2015년 3,542명에서 2019년 3,196명으로 매년 어김없이 줄었다. 대학도서관진흥법 제정(2015년) 이후의 일이라 더욱 기이하다. 도서관 인력을 줄이는 것이 대학도서관 진흥의 법적 취지는 아닐 터이다. 학생들의 대출 책수도 1인당 평균 6.5책(2015년)에서 4.9책(2019년)으로 매년 감소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이렇게 장서 구입비 부족과 학생들의 장서 이용률 감소가 악순환 구조에 빠지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된 것 중 하나가 천정부지로 뛰는 해외 전자자료 구입비 부담이다. 학술논문을 보려면 국내외 전자저널과 웹DB를 구독해야 하는데, 독점적 지위를 가진 해외 전자저널의 경우 배짱을 부리며 구독료를 매년 올린다. 논문을 쓰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해외 논문을 봐야만 한다. 그래서 전자자료 구입비의 비중이 2015년에 66.3%이던 것이 2019년에는 71.5%로 올랐다. 상위권 4년제 대학에서는 그 비중이 75%를 넘었고, 80% 이상인 곳도 이미 여럿이다. 앞으로도 이 비율은 계속 올라가며 대학도서관 자료구입비의 대부분을 잠식할 전망이다. 그러면 전자도서관 기능과 학생들의 취업 공부방 역할 말고는 대학도서관의 기능이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기본 장서와 새 책이 부족한 대학도서관이 더 이상 본연의 기능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이미 전자저널 구독료가 전체 자료구입비의 90%에 육박한 대학이 있는가 하면, 서울대의 경우 전자저널을 공급하는 해외 대형 출판사 한 곳에 지불하는 1년 구독료가 수십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대학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정부가 나서서 해외 전자저널 공급사에 대한 협상력을 높이겠다고 했지만 실효성이 없었다. 대학 구성원은 물론이고 모든 국민이 국가 라이선스로 전자저널을 이용하는 네덜란드의 선례를 살펴, 누구나 지식정보 자원에 손쉽게 접근하도록 했으면 한다.

대학도서관 자료구입비 중 전자자료 구입비를 제외한 예산은 평균 약 2억 원이다. 여기서 국내외 신문과 잡지 등의 정기간행물, 외국 도서 구입비, 기타 자료비 등을 제외하면 실제로 국내 학술도서나 교양서 단행본을 구입할 여력은 매우 적어진다. 이미 8만 종을 돌파할 만큼 증가한 국내 신간 도서의 발행 종수에 비추어 대학이 구입하여 구성원들에게 서비스하는 도서는 너무 과소하다.

독일의 대학에서는 책값에 부담을 느끼는 학생들을 위해 대학도서관이 책을 구비해 한 학기 동안 빌려주는 교재 대출 서비스까지 한다고 한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서관에서 웬만한 국내 도서는 볼 수 있어야 하고, 대학 전공 교육과 관련된 해외 발행 도서의 구비도 필요하다.

과거를 보려면 박물관에, 미래를 보려면 도서관에 가보라 했다. 굳이 해외 대학들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국내 대학들의 도서관 투자는 너무 인색하다. 국립이든 사립이든 대학을 설립하여 운영하는 근본 목적은 하나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담당할 차세대 인재들을 양성하는 일이다. 아이들 책 사주는 데 인색한 부모가 상식적이지 않은 것처럼, 학생들을 위한 최소한의 교육환경인 대학도서관의 도서구입비 증액을 무시하는 대학들의 비정상적인 행태가 멈추기를 바란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출판평론가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로 한국출판학회 부회장 겸 출판정책연구회장, 일본출판학회 정회원이다. 대학에서 출판문화론 등을 강의한다.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문화체육관광부 규제개혁위원, 서울도서관 네트워크 위원장, 경기도 지역서점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한국출판산업사』를 썼고, 옮긴 책으로 『서점은 죽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책』, 『책의 소리를 들어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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