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과 사물은 사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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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과 사물은 사회적이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3.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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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과 사물: 한국 사회를 읽는 새로운 코드 | 김은성 지음 | 갈무리 | 352쪽

 

감각과 사물이 없는 우리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감각과 사물이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자명한 나머지 사람들은 감각과 사물에 대해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으며, 때로는 감각과 사물이 사회적인 것과 무관하다고 해석한다. 흔히 감각은 본능적인 것이고, 정신과 문화와는 별개라고 말한다. 감정과 감각을 구분하는 데도 사람들은 익숙한데, 감정은 정신의 영역에, 감각은 신체의 영역에 따로 가둔다. 이러한 통념 속에서 정신과 몸, 자연과 문화,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 간의 이분법은 매우 견고하다. 전통적인 사회과학도 이러한 통념을 토대로 발전해 왔다. 이 책은 이 통념에 도전하면서 사회과학의 감각적, 물질적 전환을 요청한다.

사회 속에서 우리의 감각은 자연적이지 않으며 자유롭지 않다. 우리는 마음대로 보고, 마음대로 듣고, 마음대로 만질 수 없다. 우리의 감각은 사회 질서 속에서 훈련되고 규율된다. 감각이 사회에서 규율될 때 시민의 권리와 의무가 형성된다. 감각적 실천은 사회적인 것이며, 사회적인 것은 감각을 통해 구현된다. 감각은 몸뿐만 아니라 사물을 매개로 실천된다. 감각과 사물은 권력과 정치를 행사한다. 서로 다른 감각에 따라 권력의 실천은 달라진다. 새로운 사물의 출현으로 정치의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의 도덕은 정신에 묶여 있지 않으며 사물 및 공간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경제적 삶에도 감각과 사물은 깊이 관여한다.

한국 사회의 주요 사회적 의제를 감각과 사물이라는 새로운 코드로 해석하는 이 책은 감각학과 물질문화연구를 정치사회학, 경제사회학, 보건사회학, 환경사회학, 감시연구, 사회운동 연구 등 전통적인 사회과학과 연결하는 새로운 시도이다. 이를 통해 이 책은 도덕, 시민권, 권력, 공간, 정치, 경제의 개념을 감각 또는 사물로 새롭게 구성하며, 도덕과 인격의 물질성, 장소 도덕, 소리 시민권, 감각 권력, 공간 권력, 물질정치, 감각 자본 등 새로운 개념을 제안한다. 이 책을 통해 인식과 판단의 나침판이 되어 왔던 기존 통념들을 깨고 한국 사회에 관한 새로운 통찰을 할 수 있다.

이 책은 최근 인문 사회과학계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사변적 실재론, 행위자 연결망 이론, 신유물론 등과 맞닿아 있다. 이런 새로운 이론들은 인간과 존재론적으로 동등한 사물의 역할에 주목함으로써 인간, 자연, 기술, 문화, 정치, 경제 개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했다. 이 책은 사회구성주의, 후기구조주의 같은 다양한 이론적 스펙트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성격을 신유물론의 경험연구라고 한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각과 사물에 대한 사유를 경유하여 한국의 사회 현상에 대한 경험연구를 본격적으로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중요한 의의가 있다.

이 책의 여섯 가지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1. 감각과 사물은 도덕 형성에 개입한다

우리의 인식 속에서 도덕에 관한 인간중심주의는 매우 강하다. 도덕은 인간의 정신세계에서 순수하게 존재하는 형이상학이나, 사회적 산물로서 역사를 통해 전승되어 내려온 관습과 문화로 여겨져 왔다. 우리는 인간의 도덕적 세계에 비인간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숙고해 본 적이 없다. 

우리가 간혹 놓치고 있는 사실은 인간이 서로에 대해 내리는 도덕적 판단에도 비인간이 개입한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는 마스크와 바이러스가, 기후변화 위기 상황에서는 원자력 발전소와 풍력발전기 같은 인공물들이 우리 인간들의 도덕을 만드는 데 크게 개입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도덕은 인간과 사물이 상호 작용하는 사회-물질적 실천(어셈블리지)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2. 감각과 사물은 시민권의 형성에 관여한다

이 책은 감각은 자연적이지 않으며 사회 속에서 훈련되고 규율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감각이 사회에서 규율될 때 시민권이 형성된다. 근대국가와 함께 탄생한 시민권은 시민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매우 이성적이며 인간 중심주의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사회-물질적 실천 속에서 형성되는 시민권은 감각적이며 물질적이다. 사회에 의한 감각의 규율은 측정 기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아파트 층간 소음과 집회 소음의 기준을 만드는 데 소음 측정기가 사용되고, 이 기기에 의해 우리의 감각이 규율된다. 이 기기들은 또 정상적 시민과 비정상적 시민 의 경계를 만든다. 이런 방식으로 시민권의 형성에 감각과 사물이 개입한다.

3. 감각과 사물은 권력과 정치를 행한다

권력이 언제나 하향식이고 억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인간들의 감각적 상호작용을 통해 권력이 생산되고 재생산된다. 감각은 몸뿐만 아니라 사물을 매개로 실천된다. 새로운 인공물의 출현은 감각 권력을 변화시킨다. 과거 농산물 경매에서는 중도매인의 시선이 늘 경매사를 향했다. 그런데 무선 응찰기와 전광판 같은 전자 장치가 도입되면서 중도매인은 경매사가 아니라 화면에 집중하게 되었고, 이는 경매사의 시각 권력이 약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집회 현장에서 돌, 화염병, 최루탄, 쇠파이프, 촛불, 차벽 같은 시위 인공물은 서로 다른 물질정치를 행한다. 쇠파이프는 촛불보다 위계적이며 남성적인 시위 문화를 만든다. 집회 감시 채증 카메라와 소음 측정기는 시각인가, 청각인가에 따라서 감시 시점(집회/행진), 감시 대상(시위주최자/참여자), 시위 규모, 지식 권력(사진/음량)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4. 감각과 사물은 공간과 장소를 만든다

공간은 인간과 비인간의 감각적, 물질적 상호작용으로 형성된다. 공간은 신체적이며, 물질적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장소의 의미, 이른바 ‘장소성’은 인간과 바이러스, 그리고 마스크와 같은 인공물들의 상호작용으로 구성되었다. 풍력 발전단지의 장소성은 장소에 대한 기억과 소음 및 불빛과의 감각적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다. 집회 현장에서의 공간은 기습시위처럼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하며, 화염병과 최루탄의 공방 속에서 빠르게 움직이다 전선을 형성하기도 하고, 차벽에 의해 구획되기도 한다. 소리의 크기는 음파의 이동 거리와 관계되기에 집회 확성기의 소리는 집회 공간의 크기를 결정한다.

5. 감각과 사물이 형성한 공간은 인간의 정체성과 인격을 생산한다

인격은 정신에 묶여 있지 않으며, 몸에 체현되고 나아가 사물 및 공간과 연결되어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만들어진 장소성이 확진자의 도덕적 인격을 만들었다. 교회, 클럽, 피시방, 마트, 병원 등 확진자가 방문한 장소에 따라, 확진자가 얼마나 장소를 이동하느냐에 따라 확진자의 도덕적 인격은 달라졌다.

풍력발전단지의 건설은 풍수신앙과 생태적 세계관을 가진 지역 사람들의 정체성, 이른바 ‘장소 정체성’과 마주한다. 그들에게 풍력발전단지는 산의 정기를 막는 ‘쇠말뚝’으로 여겨지고, 자연공간을 산업화된 도시 공간으로 만드는 시도로 여겨진다. 집회에서 시위 공간의 변화는 시위 참여자의 구성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시위 인공물이 등장함에 따라 시위 참여자의 정체성이 변화한다. 시위 인공물은 시위 참여자의 행위를 제약한다. 촛불을 든 시위 참여자는 뛰기도, 폭력을 행사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촛불은 정적이고 평화적인 시위에서 등장한다.

6. 감각과 사물은 경제적 삶에 관여한다

감각과 시장 장치는 경제 행위자를 재구성하고, 제품의 가격에 영향을 준다. 디지털 시장 장치에도 불구하고 농산물 전자 경매에서 가격은 여전히 감각적이며, 신체적이며, 물질적이다. 감각 자본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 온라인 쇼핑의 성장과 함께 전자기술에 의해 새로운 형태의 감각 자본 시대가 열리고 있다. 최근 감각 컴퓨터도 개발되고 있다. 앞으로 메타버스 시대가 열리면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기술을 통해 감각과 기계를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감각적 마케팅과 거래가 일어날 것이다.

저자는 사회과학이 감각학과 물질문화연구로 모두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본다. 학문의 궁극적 목적은 세계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정확하게 이해한다고 믿는 모든 종류의 도그마에 대한 성찰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더 다양한 관점으로 이 사회를 관찰할 수 있다면 사회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더 객관적일 수 있다. 다양성은 객관성의 적이 아니라 동지다. 이 책의 목표는 감각학과 물질문화연구를 한국 사회과학에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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