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이후 부족주의로 퇴보하는 ‘K-민주주의’를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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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 부족주의로 퇴보하는 ‘K-민주주의’를 진단한다!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3.14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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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 우리 안의 파시즘 2.0: 내 편만 옳은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가능한가? | 임지현·우찬제·이욱연 엮음 | 김내훈·김진호·박상훈·배묘정·이진우 외 6명 지음 | 휴머니스트 | 212쪽

 

대화의 여지 없이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여과 없는 비난을 퍼붓는 것이 일상적인 한국의 정치 풍경은 민주주의의 퇴화를 상징하는 듯하다. 1999년 ‘우리 안의 파시즘’ 기획을 제안하며 한국사회에 신선한 자극을 불어넣었던 역사학자 임지현은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성취했다고 믿은 민주주의가 어떻게 상대를 용납하지 않는 일상의 오징어 게임으로 퇴보하고 있는지 면밀하게 살펴야 할 때라고 역설한다.

한국사회의 갑갑한 정치적 풍경 속에서 지금 여기의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우리 시대 대표 지성들이 세대와 분야를 넘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공정과 능력주의, 세대-연공-인구의 착종, 국민주권 민주주의, 식민지 남성성, 일상적 인종주의, 관종과 인터넷 담론, 한국의 문화종교 현상, 수사의 정치학, 교가에 깃든 파시즘 등 우리 사회의 예민한 지점을 짚는 이 책은 뉴스에 지치고 민주주의에서 부족주의로 퇴화하는 듯한 현실을 우려하는 독자들의 시야를 넓게 트여준다.

 

▶ 민주주의는 어떻게 더욱더 퇴보하고 있는가…1.0에서 2.0으로 진화한 ‘우리 안의 파시즘’

1999년 여름 [당대비평]에 ‘우리 안의 파시즘’ 특집이 발표되자 한국사회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우리 안의 파시즘’은 민주화세력이 사회를 개혁하고 진보로 이끈다는 믿음에 제동을 걸었다. 운동권의 군사주의와 서열주의, 명망가들의 성추행과 가정폭력 등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오랫동안 한국사회에 스며든 지도자 숭배와 복종의 문화, 가부장주의와 성차별주의, 민족주의적 과대망상증과 외국인 혐오 등을 고발한 ‘우리 안의 파시즘’ 담론은 ‘일상적 파시즘’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 파헤쳤다.

그러자 ‘운동의 후퇴국면에서 나타나는 문화주의와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연상케 한다’는 비판부터 ‘민중을 파시스트로 간주하고 적으로 돌리는 논리’라는 비난까지 격렬한 반응이 뒤따랐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수없이 좌절되었던 민주화가 정권교체라는 형식으로 실현된 것에 찬물을 끼얹는 소리로 들렸던 것이다. ‘우리 안의 파시즘’ 특집을 기획하고 일상적 파시즘을 한국사회의 주요 의제로 끌어올린 역사학자 임지현은 이와 같은 반응에서 ‘좋은 헤게모니를 가진 우리’가 ‘나쁜 헤게모니를 가진 저들’을 몰아내면 문제가 모두 해결될 것이라는 민주화세력의 안일한 믿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만 22년이 지난 지금, 임지현 교수는 지난 20여 년 동안 권력의 작동방식이 힘에 의한 강제와 억압에서 내면화된 규율과 동의를 통한 자발적 복종으로 이동했다고 진단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불러일으킨 의학적 비상사태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의학적 비상사태를 깊이 있게 토론하는 과정 없이 ‘위기’라는 이름으로 모든 논의를 봉쇄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데 있다. 한쪽은 정부와 입장을 달리하는 쪽에 ‘토착 왜구’라는 딱지를 주저 없이 붙이고, 반대쪽은 상대방을 ‘빨갱이’라고 매도하는 행태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퇴행을 거듭하는 지금, 우리 안의 파시즘을 다시 한번 낱낱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 한국사회는 어떻게 ‘진보’의 덫에 빠졌는가…불공정과 불평등, 폭력의 기원을 찾아서

우리 안의 파시즘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인 ‘불공정’과 ‘불평등’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철학자 이진우는 능력주의에 사로잡힌 우리 사회의 명암을 조명한다. 능력 있는 사람이 합당한 대가를 받는 사회가 공정하다는 믿음은 사람들이 있는 힘껏 노력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하지만 ‘능력’을 사회적 상승의 절대적 수단으로 생각할수록 더욱 나은 조건을 갖고 있거나 세습하는 엘리트 계급에게 유리해진다. 능력주의가 사회적 지위의 획득 수단에서 기득권의 세습 수단으로 변질된 지금, 누구에게나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조건이 확립되지 못한다면 계급 간 갈등이 심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사회학자 이철승은 세대 간 갈등이 세대 내 갈등으로 이전되는 양상을 ‘세대-연공-인구 착종’이라는 독창적인 개념으로 설명한다. 연공 임금제(연공제)는 근무기간이 길수록 높은 임금을 주는 제도로 오랫동안 한국의 노동시장을 지배해왔다. 1980년대부터는 전투적 노동조합과 진보 지식인/정당의 네트워크가 결합함에 따라 다시금 정당성을 획득했다.

여기에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동시장의 상층에 굳건히 자리 잡음에 따라 일자리 배분과 임금 분배가 정체되어버리는 문제까지 발생했다. 지금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2030 여성과 남성 사이의 갈등도 근본을 파고들면 세대-연공-인구 착종이 놓여 있다. 세대-연공-인구 착종과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한국사회의 불평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융합 연구자 정희진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폭력의 근원을 우리에게 깊이 뿌리 박힌 ‘식민지 남성성’과 ‘추격발전주의’에서 찾는다. 서구를 따라잡아야 할 모델로 간주하는 한편 남성을 약자로 설정하는 식민지 남성성은 여성과 자연을 복종과 개발의 대상으로 삼는다. ‘근대화’라는 목표를 향해 일직선으로 돌진하는 사회는 구성원을 경쟁과 갈등의 한가운데로 내몬다. 필자는 한국사회가 진보적 시간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기후위기를 제대로 직면하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이제는 추격발전을 멈춰야 이토록 폭력적인 세계에서 탈출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 한국정치는 어떻게 민주화가 진척될수록 민주주의에서 멀어지는가…대중의 정치적 주체화가 낳은 기묘한 모순

우리 안의 파시즘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장은 한국정치다. 편을 갈라 싸우면서 상대의 말을 듣지 않는 태도는 여전하고, 더 나아가 상대를 비난하고 조리돌리는 행태가 일상적이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문재인 정부의 정치 행태를 ‘국민주권 민주주의’로 요약하고 그것이 드러내는 위험성을 낱낱이 살펴본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촛불집회로 결집된 사회적 에너지는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이어졌다. 다양한 세력이 힘을 합친 만큼 폭넓은 사회개혁을 추진할 만한 동력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부와 집권 여당은 ‘국민주권’을 내세우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하고 특정 지지층의 목소리를 키워 반대파를 밀어내는 데 힘을 소모했다. 직접민주주의의 당위만을 강조한 결과 정작 시민의 참여가 약화되는 역설도 발생했다. 대의민주주의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채 직접민주주의를 신봉하는 행태가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필자의 지적이 쓰라리다.

신학자 김진호는 대중의 정치적 동원이 어떻게 자발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지를 ‘정치종교’와 ‘문화종교’라는 개념을 통해 더욱 자세하게 살펴본다. 정치종교는 후발 국민국가에서 원자화된 개인이 추상적 비전에 헌신하는 심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적군과 아군의 종말론적 대결을 통한 파시스트 구원신화를 가리킨다.

한편 문화종교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문화적 가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 속에서 대중이 정치적 주체가 되는 현상을 말한다. 반동성애 담론을 통해 ‘적그리스도’와 맞서 싸우는 개신교회와 신도들이 대표적이다. 김진호는 대중이 4·19와 5·16으로 상징되는 정치종교 시대를 지나, 6월항쟁을 거쳐 민주화된 지금의 문화종교 시대에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결핍에 시달린 나머지 타자를 배제하고 혐오하는 데 앞장선다고 진단한다.

이제 혐오의 정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널리 퍼지고 있다. 연구자 김내훈은 ‘관심’을 통해 팽창하는 주목경제의 시대에 사람들이 편을 갈라 싸우면서 정치적 부족주의가 심해지는 지금 여기의 온라인 담론장을 살펴본다. ‘관종’은 주목경제 시대의 주인공이라 할 만하다.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를 무단으로 올리며 논란을 확대하는 이들은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세상을 반영한다. 왜곡된 인정욕구는 위선과 가식에 대한 위악으로 진화하고 냉소주의와 정치혐오로 자가 발전한다. 언론이 제 기능을 잃고 롤모델이 사라진 담론장은 청년세대의 과격화와 대중의 극우화로 이어지기에 너무나 쉬운 토양이다.


▶ 한국문화는 어떻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것’만을 욕망하는가…우리 일상 속에 무심하게 스며든 파시즘의 흔적

일상 구석구석에 스며든 파시즘은 눈에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일상의 감각, 언어, 노래와 같은 형식을 통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커뮤니케이션학자 조영한은 한국사회에 넓게 퍼져 있는 인종주의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인종에 무감한지를 드러낸다. ‘다문화’가 대표적으로, ‘다문화’는 이주여성과 그 자녀들을 라벨링하고 국민으로 편입시키면서도 무심코 배제하는 장치로 작동해왔다.

특히 한국민은 식민통치와 발전국가 시대를 거치면서 자신들이야말로 억압받아왔다는 인식이 강해, 인종 문제는 다민족국가의 일이거나 지극히 폭력적인 사건에 한정된다는 편견을 가져왔다. ‘한류’의 성공에 심취해 자긍심에 사로잡히는 사이,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인종주의에 물들어 있는지 성찰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국문학자 우찬제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식의 언어에 숨은 억압 기제를 세심하게 들여다본다. 코로나19라는 의학적 비상사태 속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마스크를 쓰라는 말은 언뜻 반드시 따라야 하는 지침처럼 들린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무런 조건도 고려하지 말고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듯한 언명이 너무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게 필자의 진단이다. 특히 지나친 강조부사와 최상급 표현은 수신자가 이성적으로 판단할 여지를 좁히고 대화의 가능성을 없앤다는 점에서 위험하기까지 하다. 파시즘적 언어는 우리 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음악학자 배묘정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듣는 교가와 군가에 숨은 식민성을 깊이 있게 살펴본다. 식민통치 시기에 일제는 대중을 전쟁에 동원할 수 있는 국민으로 만들기 위해 집단체조와 국민가요를 만들었다. 아이러니는 반식민 투쟁을 펼친 투사들도, 일제의 식민통치를 고스란히 받아들인 사람들도 모두 일제의 가요 리듬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데 있다.

군사독재 시기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의 리듬을 딴 건전가요를 만들고, 학교마다 전해오는 교가에 전쟁과 개발의 논리가 스며들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과연 지금은 오와 열에 맞춰 나란히 걷기를 강요했던 국민학교 시절의 규율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을까.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사라졌다고 믿었던 일상의 파시즘은 이처럼 더욱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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