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시대 정신과 생태적‧연대적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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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시대 정신과 생태적‧연대적 관점
  • 강수택 경상국립대·사회학
  • 승인 2022.03.1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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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책, 나의 테제_ 『환경과 연대 생태연대주의 사상과 정책』 (강수택 지음, 이학사, 428쪽, 2022. 03)

 

이 책은 그동안 연대에 관해 오랫동안 탐구해온 저자가 연대 논의와 환경 논의의 결합을 모색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생태연대주의의 기본 관점을 소개하고 이 관점에 부합하는 주요 정책을 제시하였다. 생태연대주의는 생태적 가치와 연대 가치에 입각한 사상 체계다. 달리 표현하면 생태적 관점과 연대적 관점을 함께 중시하는 생태적·연대적 관점의 사상인데, 이 관점은 비교적 널리 사용되고 있는 표현, ‘생태사회적 관점’과 내용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생태사회적 관점의 ‘사회적’이라는 표현은 이 용어의 탄생기에 일반적으로 통용되었던 국민국가 단위의 사회를 가리키는 좁은 의미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사회적’이 ‘연대적’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더라도 주로 국민국가 단위의 ‘사회적 연대’를 가리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20세기 말 이후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지구촌의 상호 의존성이 강화되어왔으며 그 결과 국제관계뿐 아니라 세계사회 전반에서 연대의 필요성과 불가피성이 크게 증대해왔다. 이런 시대적인 배경에서 부상한 생태연대주의는 연대의 범위를 지역과 국민국가를 넘어 전 세계의 인류로 넓혀왔다. 게다가 심각한 생태계 위기 상황을 맞이하여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 자연도 포함하는 생태계 전체로 연대의 범위를 넓히려고 한다. 그러므로 만약 생태사회적 관점이 그 적용 범위를 국민국가에 제한하지 않고 전 세계로 넓힌다면 생태적·연대적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생태연대주의의 ‘생태적·연대적 관점’은 유엔 주도로 정립되어 널리 활용되고 있는 ‘지속가능성’ 개념과도 내용 면에서 공통점이 많다. 지속가능성 개념은 경제적 차원, 생태적 차원, 사회적 차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때로는 여기에 문화적 차원도 포함하면서 이들 차원 간의 균형을 추구한다. 즉 지속가능성 개념은 생태사회적 관점과 비슷하게 생태적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경제적, 문화적 지속가능성과 함께 적극 추구한다는 점에서 생태적·연대적 관점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태적·사회적 차원을 경제적·문화적 차원과 함께 추구하는 지속가능성 개념은 처음부터 사회적 차원을 지역, 국민국가 수준뿐만 아니라 글로벌 수준에서도 적용되는 넓은 의미로 파악했다는 점에서 생태적·연대적 관점에 더욱 근접해 있다. 게다가 유엔 중심의 세계사회는 지속가능성 개념을 의제 21, 밀레니엄 발전 목표, 지속가능발전 목표 같은 글로벌 수준의 구체적인 정책 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국민국가 수준과 지역 수준의 정책 프로그램도 개발, 실행하게 함으로써 생태적·사회적 지속가능성의 실현에 실질적으로 기여해왔다. 비록 지속가능성 개념과 이에 기초한 유엔의 정책 프로그램에서 경제발전 차원이 생태적 지속가능성보다 실제로는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21세기의 시대정신이 되어 있는 지속가능성의 관점과 정책 프로그램은 오늘날의 인류가 생태연대주의 관점과 정책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를 더없이 잘 보여준다.

이 책은 부제에서 나타나 있듯이 크게 두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생태연대주의 사상을 다룬 첫째 파트에서는 다양한 주요 생태주의 사상의 연대적 관점과 주요 연대 사상의 생태적 관점에 대한 탐색이 이뤄져 있다. 주요 생태주의 사상으로는 심층생태주의, 사회생태주의, 생태사회주의, 생태여성주의를 그리고 주요 연대 사상으로는 현대 사회학, 현대 사회주의, 현대 가톨릭의 연대 사상을 주로 다루었다. 

 

둘째 파트는 생태연대주의 정책을 다루고 있는데, 글로벌 수준에서는 유엔 중심의 세계사회가 그동안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밝혀온 주요 선언과 추진해온 주요 정책 프로그램이 고찰되었다. 리우선언, 의제 21, 밀레니엄 선언, 밀레니엄 발전 목표, 지속가능 발전 목표가 그 대상이다. 국민국가 수준에서는 생태복지국가 담론에서 제시되는 주요 정책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인류가 사회적 연대 가치의 실현을 위해 발전시켜온 사회복지국가가 지구 생태계 위기라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여 재탄생하려는 것이 생태복지국가다. 그렇기 때문에 생태복지국가의 정책 담론에는 연대적 관점과 생태적 관점이 함께 고려되어 있다. 셋째 영역은 경제 영역이다.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반연대성을 극복하려고 인류가 발전시켜온 경제가 사회적 경제와 사회적 시장경제다. 그런데 20세기 말에 이들 경제는 이중의 도전에 직면했다. 생태계 위기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커다란 도전을 제공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적 시장경제는 생태사회적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모색해왔으며 사회적 경제는 연대경제론과 결합하여 사회연대경제 혹은 연대경제로의 확장을 추구하고 있다. 20세기 말 신자유주의 이념으로 더욱 강화된 시장경제의 반연대성과 반생태성을 이를 통해 극복하려는 것이어서 이들 새로운 경제의 동향, 내용, 그리고 특징을 살펴보았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앞선 논의를 바탕으로 생태연대주의 사상의 기본 원리를 생태적 인식, 연대적 인식, 시민사회에 대한 인식, 경제에 대한 인식, 국가에 대한 인식, 글로벌 사회문화와 글로벌 정치경제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이어서 생태연대주의 정책을 사회문화 정책, 정치개혁 정책, 경제정책, 환경정책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사회적 연대경제 증진 대륙간 네트워크, RIPESS>

오늘날 인류가 직면해 있는 가장 심각한 생태계 위기인 기후 위기와 특히 21세기에 들어서 수많은 희생자를 낳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 같은 감염병의 세계적인 대유행은 생태연대주의 관점과 정책의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 기후 위기는 생태적 인식에 기초한 글로벌 연대의 필요성을 심각하게 제기함으로써 마침내 파리기후변화협정이라는 인류 역사에서 매우 소중한 글로벌 합의를 끌어냈다. 하지만 트럼프의 파리협정 탈퇴 소동이 보여주었듯이 앞으로 이 합의의 이행 과정에서 이해 갈등으로 인한 수많은 도전이 출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생태연대주의의 생태적·연대적 관점이 빠르게 확산되어 세계사회에서 널리 그리고 굳건히 자리 잡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 입각한 실효성 있는 기후 위기 대응 정책이 세계 수준뿐 아니라 국가와 지역 수준에서도 시민의 요구와 자발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개발되고 실행될 필요가 있다. 코로나 팬데믹은 생태적 위기라기보다는 보건의료 위기에 해당하지만 기후 위기와 함께 인류에게 생태적·연대적 관점과 정책의 필요성을 강력히 제기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은 방역, 백신 공급, 사회경제적 위기 극복 등에서 연대의 논리와 각자도생의 논리가 충돌하는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만 결국 전 세계적인 연대와 협력 없이는 팬데믹 종식이 어렵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의 원인이 생태계 파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은 결국 생태적 관점의 회복 없이 코로나 팬데믹을 온전히 예방할 수는 없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이처럼 생태연대주의 관점과 정책은 당면한 기후 위기, 코로나 팬데믹 등을 극복하는 데 필요하지만, 인류가 적극적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뤄가는 데도 필수적이다. 생태계와 사회적 연대에 파괴적인 신자유주의 시장 논리가 비록 그동안 여러 글로벌 위기를 겪으면서 한풀 꺾이기는 했지만 세계경제에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주의가 대안이 아니라면 결국 생태적·연대적 관점에 입각한 경제 운동과 민주적 거버넌스를 통해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라야 비로소 생태적,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차원의 지속 가능한 발전도 진정한 의미에서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기후 위기, 글로벌 팬데믹 같은 엄청난 도전에 직면한 인류의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특히 국가주의, 시장주의, 산업주의, 성장주의, 개발주의 같은 반연대적이며 반생태적인 정신에 익숙해 있는 한국 사회에서 독자들이 생태적‧연대적 관점을 깨닫고 인식의 지평을 크게 넓히는 데 이 책이 작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강수택 경상국립대·사회학

경상국립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이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독일 빌레펠트 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사회학회 부회장, 학술지 『사회와 이론』 편집위원장, 경상대 인권사회발전연구소 소장, 미국 예일대 객원교수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연대하는 인간, 호모 솔리다리우스』, 『알프레드 슈츠』, 『씨ㅇㆍㄹ과 연대』, 『연대주의』, 『연대의 억압과 시장화를 넘어』, 『시민연대사회』, 『다시 지식인을 묻는다』, 『일상생활의 패러다임』 등 다수가 있고, 이 가운데 여러 권이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세종도서(학술부문),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가담 학술상 수상도서 등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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