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공동체(process-community)의 창조적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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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공동체(process-community)의 창조적 진화
  • 김지현 기자
  • 승인 2020.02.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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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제의 책_『화이트헤드와 들뢰즈의 경영철학』(김상표·김영진 지음,솔과학,2020. 01)

- 21세기 새로운 문명화, 조직화 패러다임
- 과정공동체 구현을 위한 다섯 관념 … 진리, 아름다움, 모험, 예술, 평화

 

경영학자인 김상표 교수(경남과기대)가 철학자인 김영진 교수(대구대)와 함께 21세기 문명화의 방향을 깊이 성찰하는 경영철학 책이다. 그들 사유의 단초는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구 철학은 학교가 아니라 시장에서 생겨났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철학을 젊은이들이 사게 만들도록 열정을 다해서 유혹하고 설득했던 장소 또한 바로 시장이다. 그렇다면 21세기에 철학과 시장은 어떤 방식으로 만나야 할까?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자본주의 체제와 기업공동체 그리고 인간이 파국을 피하면서 21세기 새로운 문명화를 위한 길을 찾아낼 수는 없을까? IoT, 로봇공학,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 빅 데이터(Big Data) 등이 주도하는 4차 산업시대 기업경영의 방향을 결정하는 주요핵심은 무엇일까? 저자들의 대답은 바로 ‘철학’이다. 기업가정신을 바라보는 근본적 문제의식, 즉 철학적 지평에 코페르니쿠스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0여 년 전 이 지점에서 시작된 저자들의 고민은 화이트헤드(Whitehead)와 들뢰즈(Deleuze)와의 동행을 통해 해결을 모색해 왔다. 학교에서 관념을 철저히 사유하는 곳이 철학이라면, 시장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곳이 경영학이다. 철학자는 자신의 일부를 경영학자에게서 찾았고, 경영학자는 자신의 바람을 철학자에게서 발견했다. 그 결과, 두 사람은 ‘화이트헤드와 들뢰즈의 경영철학’이라는 결실을 낳았다.

“사회가 문명화됐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그 성원이 다섯 가지의 관념, 즉 ‘진리’, ‘아름다움’, ‘모험’, ‘예술’, ‘평화’에 참여하고 있는 경우이다.” 저자들은 이 경구를 등대로 그리고 화이트헤드와 들뢰즈의 과정패러다임을 벗으로 삼아 기업공동체가 관념과 실천의 모험을 통해 21세기에도 여전히 창조적 전진을 이루어갈 수 있는 조건을 규명하려고 시도했다.

화이트헤드와 들뢰즈는 초월성 보다는 내재성을 통해서 실재에 대한 이해를 탐구하였다. 내재성을 과정과 실재로 이해하는 것이다. 과정을 지성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베르그손의 말대로 ‘공간화’에 머물 수도 있다. 지성은 고체의 논리에 머물기 때문에 결코 지속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 베르그손의 생각이다. 하지만 현대 과학의 발전과 연결된 철학은 연속성과 원자론이 결합된 과정철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 과정공동체의 도식과 범주
▲ 과정공동체의 도식과 범주

화이트헤드와 들뢰즈는 생성의 양자론을 받아들인다. 새로움은 가능태가 아니라 잠재태 혹은 실재적 가능태에 대한 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 본질주의와 유형주의는 가능태와 현실태의 관계만 말하기 때문에 새로움이 나오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새로움이 반드시 긍정적인 의미만을 가질 수 없다. 오히려 조직의 지속적인 성장에 위해를 가져올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실천적 프로네시스가 필요하다. 실천적 프로네시스는 진정한 긍정적인 차이를 생산하며. 그것만이 새로운 신체에 계승되는 힘을 가질 수 있다. 오늘날 조직이론에서 새로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내재성의 장이 아니라 초월성의 저주에 매몰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이 점을 극복하는 데에 있어서 과정철학자인 들뢰즈와 화이트헤드의 존재론이 기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하는 저자들은 현대문명의 경영철학을 이 맥(脈)의 둥지에서 풀어나간다.

전체 7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와 2부는 철학과 조직이론에서 과정패러다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와 그러한 추세의 국제적인 동향을 소개하며 시작한다. 이것은 포스트모던 시대에 실체패러다임을 극복하고자 하는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의 시도와 맞물려 있다. 특히 1부에서는 화이트헤드와 들뢰즈 철학에 대한 고찰을 통해 과정철학의 존재론, 인식론, 가치론을 나름대로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3, 4, 5부에서는 과정패러다임을 기업공동체에 적용한 새로운 모델을 과정공동체(process-community)로 명명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건들을 탐색한다. 창조성, 아름다움과 예술, 모험, 평화, 이 다섯 가지 관념을 구현하는 공동체가 저 멀리 있는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지금 이미 우리 곁에 헤테로피아로서 나란히 실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6부는 과정공동체에 대한 저자들의 논의를 정리한 글이다.
 
마지막 7부는 21세기 조직화 패러다임을 향한 관념의 모험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경영과 철학의 대비가 돋보인다. 카오스 속에 코스모스가 자리잡고, 코스모스 가운데 카오스가 살아 숨쉬는 카오스모스의 마당들을 맛볼 수 있다. 역설경영, 합생적 기업가정신, 프로네시스, 가추법, 느낌의 윤리 등 기업경영에서는 낯설고 새로운 개념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그 유혹은 강렬하지만 들뢰즈의 천개의 고원을 넘어갈 때처럼 인내가 필요하다. 화이트헤드의 상호 파악이라는 용어처럼, 각 논문들과 개념들은 서로를 품어 안고 있기 때문이다.

▲ 저자_김상표 경남과기대 교수

이 책의 저자들은 누가 다섯 가지 관념을 가슴에 품고 과정공동체의 창조적 진화를 이끌어갈 수 있다고 생각할까? 그들은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공동체기업가-되기’를 반복하는 다중들에게서 그 희망을 본다. ‘공동체기업가-되기’는 화이트헤드의 현질적 존재와 들뢰즈의 리좀 등 과정철학의 개념들을 차용하여, 새롭게 주조한 합생적 기업가정신으로 구체화된다. 합생적 기업가정신은 인류를 억압하는 제반 조건들을 벗어나기 위해 관념과 실천의 모험을 즐기는 기업가의 사유와 행위방식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 해방적 속성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해방으로서의 합생적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변혁가들은 당연히 개인의 감성적 역능의 한계 혹은 제도나 사회에 의해서 가려지고 은폐됨으로써 감각할 수 없게 되었던 것들을 감각할 수 있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로써 좋은, 더 좋은 인류의 삶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경제 영역이나 생태공동체 운동에 헌신하는 분들은 물론이고 자본주의적 기업 내부에 공동체적 속성을 도입하려고 시도하는 수많은 창조적인 기업가들이 모두 ‘공동체기업가-되기’를 실험하는 다중들에 속한다. 저자들이 이 책을 헌정하고 있는 한살림 협동조합 운동의 창시자,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을 비롯하여, 자유롭고 평등한 기업공동체 실현을 앞당기기 위해 노력했던 노동자 전태일과 조영래 변호사,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실시했던 ㈜유한양행의 유일한 박사 등에 이르기까지 이미 우리들은 과정공동체를 꿈꾸었던 많은 선례들을 갖고 있다. 저자들은 삶을 양태와 관점으로 보기 때문에, 과정공동체를 향한 이와 같은 다양한 시선의 차이를 공존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과정공동체는 지금 여기서 진행 중인 과정적 실재이다.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등 제반 분야에서 인간 삶을 억압하는 일체의 것들을 혁파하는 꿈을 꾸며 ‘합생적 기업가-되기’를 즐기는 수많은 21세기 변혁의 주체들이 이곳저곳에서 불쑥불쑥 솟아나 과정공동체를 창조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저자들의 꿈이자 이 책의 저술 이유라 할 수 있다.

저자들은 사실과 가치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소명이며 화이트헤드의 경고처럼, 자기를 넘어서는 초월성의 질문을 제기하지 않는 문명이나 조직은 결코 창조적 전진을 계속할 수 없다고 믿는다. 경영학은 몇 가지 치장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삶의 수단인 돈이 곧 삶의 목적이자 행복이라고 보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전제하고 있으며, 그것은 일종의 폭력의 힘을 정당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진리, 아름다움, 모험, 예술, 평화. 이 다섯 가지 관념을 면밀히 분석하고 그것들이 적용 가능한 공동체가 정말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고 사유한 결과물이다. 저자들에 의하면 조직구성원들이 이 다섯 가지 관념에 참여하는 과정공동체들은 이미 우리 곁에 있다. 저자들은 이들이 실천의 모험을 감행하는데 이 책이 용기와 방향을 줄 수 있기 바라며, 헤테로피아를 이곳저곳에서 불쑥불쑥 솟아나게 하는 잠재적 다양체로서 이 책이 수많은 리좀적 선분들을 현실에서 만나기를 기대한다. 이 책이 지향하는 ‘합생적 기업가-되기’는 새롭게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 혁신주체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며, 동시에 기업가정신을 보는 철학적 지평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많은 시사점을 함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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