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시대의 기술철학 - 기술철학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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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시대의 기술철학 - 기술철학 입문
  • 조창오 부산대·철학
  • 승인 2022.02.27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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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기술철학 입문』 (알프레트 노르트만 지음, 조창오 옮김, 서광사, 236쪽, 2021. 12)

 

한 기업을 경영하려면 경영철학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국가를 다스리려면 정치철학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사랑을 진지하게 하고 있다면 사랑철학을 해야 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법학적 문제에 대해 좀 더 기초적인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면 법철학을 해야 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 철학적 반성을 할 수 있고, 또한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들 한다. 철학이라는 표현이 들어가면 뭔가 있어 보이는 걸까? 

현재 과학기술의 발전은 눈부시다. 전 세계가 과학기술 발전에 거의 모든 자원을 투자하고 있다. 한국은 이 점에서 매우 모범적이다. 한국은 이미 과학기술 강국이고, 통계적으로 봐도 국가의 연구 재정의 대부분을 과학기술에 투자하고 있다. 

이와 달리 인문사회계열에 대한 연구 재정 투자는 거의 변함이 없다. 투자하는 돈이 똑같고, 국가의 연구 재정은 매년 성장하니, 결과적으로 인문사회계열에 대한 투자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갖가지 ‘철학’을 내세우는 이는 많으나 철학과는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 반면 과학기술 분야에는 돈이 넘쳐 난다. 

그렇다면 과학기술에 종사하는 이들은 당연히 과학기술, 줄여서 기술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고, 법조인들이 법철학을 가지고 있고, 경영자들이 경영철학을 가지고 있다면, 기술 종사자들은 당연히 기술철학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기술철학은 너무나 당연히 이미 있는 것이고, 과학기술에 종사하는 이들이 엄청나게 많은 만큼 다양한 기술철학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기술철학’이란 표현은 거의 신조어에 가깝다. 1877년에 미국 망명에서 독일로 돌아온 에른스트 카프가 도입한 표현이지만, ‘기술철학’은 현재까지도 매우 낯선 표현에 불과하다. 그렇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것은 기술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 때문이다.

기술에 대한 고전적 개념은 기술이 인간이 만든 도구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핸드폰은 인간이 만든 인공물로서 일정한 기능을 위해 제작한 것이고, 우리는 이 기능에 맞게 핸드폰을 도구로 사용한다. 이러한 기술의 도구적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당연한 것으로 수용됐고, 지금까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은 도구를 어떤 목적을 위해 특정 재료를 일정한 형상으로 제작한다. 이러한 기술적 도구는 자연물과 구별된다. 기술적 인공물은 제작 원인, 즉 어떤 형상, 어떤 재료, 어떤 목적으로 제작될 것인지를 전적으로 기술 제작자에 의존하는 반면, 자연물은 이들을 스스로 가지고 있다. 도토리 씨앗은 자신이 무엇이 될지를 전적으로 자체 내에 지니지만, 원재료 나무가 책상이 되는 것은 전적으로 기술 제작자에 달려 있다. 

이러한 기술의 도구적 개념은 기술에 대한 반성을 필요 없게 했다. 도구는 당연히 인간이 제작한 것으로서 인간이 의도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기여하기만 하면 된다. 현재의 과학기술 분야에서 연구는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어떤 문제 상황이 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제품이 필요하며, 이 제품을 제작할 수 있는 과학기술 종사자가 필요하다. 현재는 배터리 기술이 필요하며, 여기에 엄청난 돈이 투자되고 있다. 도구는 해당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만 하면 된다.

그렇다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중요한 것이지, 이를 해결하는 수단이 그 중심은 아니다. 빨리 자율주행차가 시장에 나와 운전 스트레스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율주행차가 출시되어 우리의 생활이 편리해지고, 이 차를 통해 경제적인 이득을 얻는 게 중요하다. 여기서 자율주행차 자체가 관심의 초점이 아니라 이 차가 과연 이 목적들을 달성하는 데 기여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기술에 대한 도구적 관점은 기술 그 자체를 반성의 대상으로 삼지 못하게 한다. 만약 ‘기술철학’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도구적 관점으로부터 우리가 벗어났을 때 가능하다. 즉 기술적 인공물 자체를 특정한 목적에 대한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 인공물 자체를 고려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기술에 대한 반성을 시작하게 된다. 

기술 자체에 대한 반성을 시작하게 되면, 우리는 곧바로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도대체 기술이 무엇인지를 확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단순히 자율주행차라는 인공물이 기술인지, 혹은 자율주행차를 제작하는 인간의 제작 행위가 기술인지, 아니면 자율주행차를 모는 소비자의 사용 행위가 기술인지가 애매하다. 마차는 기술이 아니고 오로지 첨단의 자율주행차만이 기술인지도 애매하다. 자율주행차가 미술관에 걸려 있는 그림보다 더 경탄과 감동을 준다고 한다면, 기술과 예술의 경계도 흔들리게 된다. 

이 책은 기술이란 표현이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이 사용법을 다섯 가지 범주로 분류한다. 

첫째로 기술은 인공물 범주로 파악할 수 있다. 기술은 인간이 제작한 인공물이다. 여기서 제작자의 관점을 강조하게 되면 인공물은 피조물에 불과하다. 제작자는 당연히 인공물을 도구로 사용할 수 있고, 이를 통제할 수 있으며 자기 작품인 인공물 속에서 자신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인공물의 관점을 강조하게 되면, 그것은 제작자와 상관없이 객관적인 대상물로서 존재한다. 공장, 국가 등 기술적 인공물은 인간이 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인간을 지배하거나 통제하는 듯 보인다. 

둘째로 기술은 또한 제2의 자연으로 파악할 수 있다. 기술은 우리가 살아가는 인공적인 세계를 구성한다. 인간이 단순히 기술의 제작자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은 기술적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기술은 인간의 삶의 방식을 결정한다. 그렇다면 자연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기술적 환경이 자연을 모두 포함하는가? 아니면 자연은 여전히 기술적 환경 바깥에 존재하는 것일까? 

셋째로 기술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고찰할 수 있다. 마차가 하나의 기술적 인공물이라면, 자율주행차 또한 이와 같은 종류의 기술적 인공물이다. 하지만 자율주행차가 마차보다 더 우월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는 특정한 기술적 환경에서만 가능하다. 빠른 통신 기술도 구축되어 있어야 하며, 도로는 매우 엄격하게 통제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도로도 제대로 안 되어 있고, 통신 기술도 없는 과거에 자율주행차는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넷째로 기술은 단순히 도구적 사유에 의해 제작된 도구에 불과할까? 아니면 사람들의 논의를 통해 구성된 것일까? 기술의 사회구성론에 따르면 기술은 사용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구성된다. 물론 반대로 기술은 제작자의 아이디어를 일방적으로 실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다섯째로 기술은 또한 예술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율주행차는 여러 점에서 경탄을 일으키는데, 이러한 경탄이 예술작품에 대한 경탄과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을까? 부산의 명물인 광안대교는 하나의 기술적 인공물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예술작품으로 감상해야 할까? 미술관에서 작품들을 보는 것보다 오히려 신제품 발표회가 우리의 관심을 더 끌고 있지는 않은가? 

현재 우리는 과학기술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고, 이것에 거의 모든 자원을 투자하고 있다. 그럴수록 기술에 대한 반성의 필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도 ‘기술철학’의 필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디지털 기초 역량’만을 강조하며 변화된 기술사회에 빨리 대처하고 적응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무작정 적응할 것이 아니라 ‘기술’ 자체에 대한 비판적 의식 또한 함께 견지하는 것이 우리에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더 좋지 않을까? 기술에 대한 믿음이 과연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언제부터 기술종교의 신자가 되었던가?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철학’을 통한 탈마법화 과정이다. 

 

조창오 부산대·철학

부산대학교 철학과 교수. 독일 로이파나 대학교에서 『현대의 멜랑콜리적 구성. 헤겔의 현대비극 개념』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비극철학, 예술철학, 사회철학, 기술철학 관련 다수 논문을 발표했고, 『현대의 멜랑콜리적 구성과 상징』, 『예술의 종말과 현대예술』 등의 저서와 『박물관 이론 입문』, 『늙어감에 대하여』,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 등의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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