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리얼리스트, 태종 이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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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리얼리스트, 태종 이방원
  • 박홍규 고려대학교·한국 및 동양 정치사상
  • 승인 2022.02.20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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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태종처럼 승부하라: 권력의 화신에서 공론정치가로』 (박홍규 지음, 푸른역사, 580쪽, 2021. 12)

 

이 책에서는 변방 무장 이성계의 아들로 태어나 조선왕조의 가장 영광스러운 시대로 알려진 세종의 시대를 열어주고 죽음을 맞이한 태종 이방원의 정치적 삶에 대해 썼다. ‘권력’을 쟁취하고 ‘권위’를 창출해간 ‘정치적 리얼리스트’의 대하드라마로 그 여정을 네 시기로 구분한다. 태어나서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인 잠저기(1367~1400), 집권 전반기(1401~1410), 집권 후반기(1410~1418),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죽을 때까지인 상왕기(1418~1422)다. 이 책이 태종에 관한 학계의 기존 연구성과와 차별되는 점은 바로 태종 10년을 전후로 시기를 구분한 것이다. 


1. 창업과 수성을 겸한 태종

기존의 연구자들은 조선 건국 후 창업기를 거쳐 수성기로 진입한 때를 세종 이후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수성기 정치의 특징으로 유교적 공론정치(公論政治)를 들고 있다. 이런 입장은 태종을 창업 군주로 이해하며, 따라서 공론정치와는 거리가 먼 권력군주 혹은 성군 세종의 시대를 준비한 악역 정도로 바라보는 근거를 마련한다. 그러나 과연 태종이 스스로를 오직 창업 군주만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오히려 사료는 태종이 자신의 임무를 창업과 수성을 겸한 것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태종 1년(1401) 권근은 이제 막 왕위에 오른 태종에게 창업의 시대가 지났으니 수성의 시대에 적합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상소하고 있다. 이후 18년간 왕위를 유지하다 세종에게 물려주고 상왕으로 있던 시기인 세종 1년(1419) 변계량은 세종에게 올린 글에서 태종이 창업과 수성을 겸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사료들을 통해서 보면 태종과 그의 신하들이 조선 건국 초기 태종의 역할을 창업과 수성을 겸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태종의 집권기를 전후기로 구분하는 이 책의 시도는 태종의 시대를 평가하는 변계량의 생각과 부합한다. 이 책은 태종 10년을 전후해 조선은 창업기에서 수성기로 이행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입증하는 작업이다. 이를 통해 조선 초기의 정치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얻고, 나아가 정치가 태종의 진상에 접근하고자 했다.

 

                                                                    태종 헌릉

2. 권력의 화신인가, 유교적 군주인가

학계에서는 그간 태종에 대해 두 종류의 이미지를 제시했다. 하나는 ‘권력의 화신’이고, 다른 하나는 ‘유교적 군주’다.

태종은 고려 말 유학의 거장 정몽주를 격살한 것을 시작으로, 건국 후에는 조선왕조의 설계자 정도전 그리고 세자 이방석과 이방번을 죽이고 이성계를 왕위에서 밀어냈다. 왕위에 오르기 직전에는 친형인 이방간과 권력투쟁을 벌였고, 재위 중에는 물론 왕위에서 물러나 상왕이 된 후에도 외척과 공신 세력을 상대로 권력의 화신으로서의 면모를 펼쳐 보였다. 

한편 비록 폭력적 정변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집권했지만, 이후 조선왕조의 유교적 국가 정체성을 유지해 태조 이래 추진되어 오던 유교적 국가건설 프로그램들을 계승, 추진해갔으며, 그 결과 창업 초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조선왕조의 제도적 기반을 구축한 유교적 군주로서의 업적을 이루어냈다.

이러한 두 가지 이미지에 기반해 태종에 대한 평가도 부정과 긍정을 달리한다.

먼저 권력의 화신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작용해 태종에 대해 부정적 평가에 이르는 경우다. 골육상쟁을 통한 권력 찬탈과 권력 유지를 위한 무자비한 숙청의 측면이 권력의 화신으로서의 태종 이미지를 결정짓고 있어, 왕권 확립과 신왕조의 문물제도 정비라는 업적도 그러한 태생적 한계를 상쇄하지 못하고, 태종은 기껏해야 세종의 등장을 위한 악역을 수행했을 뿐이라는 부정적 평가에 멈추게 된다. 이러한 유의 태종 평가를 ‘권력 결정론’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유교적 군주로서의 업적을 부각시킴으로써 태종에 대해 긍정적 평가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는 태종이 행한 권력정치의 모습을 유교적 군주의 통치 행위라는 큰 틀 속에 포섭한다. 신생 왕조의 제도 확립이라는 측면이 강조되어, 그가 행한 권력정치의 측면은 유교적 군주가 통상적으로 행하는 국가 운영의 일환으로 혹은 왕조 초기에 왕권 강화를 위한 부수적인 측면으로 처리되고, 그가 이룬 업적에 세종의 융성한 치세를 위한 기반 확립이라는 긍정적 속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유의 태종 평가를 ‘업적 포섭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두 종류의 설명은 양쪽 모두 문제점을 갖고 있어 태종의 진상에 접근하는 길을 차단하게 된다. ‘권력 결정론’은 조선 정치사에서 태종이 성취한 유교적 군주로서의 업적이 갖고 있는 중요한 의미 - 공론정치의 시작 - 를 간과하게 된다. 또한 ‘업적 포섭론’에서는 다른 유교적 군주와는 달리 태종만이 구사했던 권력정치의 독자성 - 한비자적 술치(術治) - 이 희석된다. 좀 더 설명하자면, 권력 결정론에서는 한 정치가의 정치적 행위에 대한 평가에서 도덕적 판단이 우선시됨으로써 그가 정치권력을 기반으로 해서 성취한 업적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길이 차단된다. 업적 포섭론에서는 태종이 구사한 권력정치가 단지 정도의 차이로 귀착되어, 그의 권력정치가 갖는 다른 유교적 군주와의 차별성이 희석됨으로써 태종만이 가진 권력정치의 본질을 놓쳐버리게 된다. 

필자는 태종이 보여주는 두 개의 이미지는 어느 한쪽이 결정하거나, 또는 어느 한쪽으로 흡수될 수 없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태종이라는 한 인물에 존재하는 이 양면성을 연관시켜 입체적인 설명을 시도한다. 태종에게 부여된 권력의 화신이나 유교적 군주라는 외피를 걷어내고, 태종의 정치적 생애에서 펼쳐진 ‘이념과 권력의 역동성’을 포착하고자 했다. 그것은 한 인물에 나타나는 두 얼굴, 즉 맹자의 얼굴과 한비자의 얼굴을 묘사하는 작업이자, 태종이 펼쳐 보인 인정(仁政)과 술치(術治)의 이중주를 연주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 작업을 통해 필자는 권력의 찬탈에서 시작해 권위를 창출하고 정치적 영광을 성취해간 정치가 태종의 장대한 서사를 밝혔다. 그런 뜻에서 이 책의 부제를 ‘권력정치가에서 공론정치가로’라고 했다.

 

                                                                       왕좌

3. 정치적 리얼리스트

이 책에서 태종을 ‘정치적 리얼리스트’라고 표현했다. 독자들은 큰 어려움 없이 이 용어를 납득하고 받아들였을 것이리라. 더 나아가 태종 이방원이 정치적 리얼리스트라는 주장은 새로울 것도 없고, 누구나가 다 아는 진부한 표현에 불과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일상 정치의 세계에서 ‘현실주의자realist’ 또는 ‘정치적 현실주의자political realist’라는 말을 흔히 사용한다. 마치 누구나가 이 용어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어서 이 용어를 사용해 의사소통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이 용어는 그 의미가 애매해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사용하기 어려워진다.

학문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맹자와 플라톤은 정치적 이상주의이고, 한비자와 마키아벨리는 정치적 현실주의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이 틀리다, 또는 학문적으로 무의미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과연 이렇게 구분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기 어렵다.

이 책에서는 정치적 리얼리스트에 대해 먼저 정의를 내리고 그 정의에 맞춰 태종 이방원을 설명하거나 해석하는 방법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태종 이방원의 전 생애에 걸친 사유와 행동을 설명하고 서술해, 이런 인물이 정치적 리얼리스트의 전형적인 사례가 됨을 보여주고자 했다.

역사상 권력을 찬탈한 사례는 더러 있었지만, 그것은 대개 또 다른 권력투쟁을 불러 보복의 악순환 속에 빠져들며 역사를 피로 물들였거나 최소한 찬탈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던 게 대부분이다. 이 책에서는 태종 이방원이 권력의 찬탈에서 시작해 권위를 창출하고 정치적 영광을 실현해 간 과정을 서술하고, 마지막으로 그에게 ‘정치적 리얼리스트’라는 이름을 부여한 후, 정치적 리얼리스트 태종을 모델로 해서 정치와 정치가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정치라는 것이 시대와 정치체제를 초월해서 권력을 매개로 해 이념을 실현해 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정치가란 본질적으로 그러한 권력의 효용과 한계를 직시하고 역사의식과 이념을 가지고 구체적인 현실의 제약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을 실천하면서 정치공동체를 위한 업적을 창출해내는 자다.’

20대 대선이 절정에 이르고 있다. 성공한 정치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나, 성공한 정치지도자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태종은 한 줄기의 빛이 될 것이다.

 


박홍규 고려대학교·한국 및 동양 정치사상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학 대학원 법학정치학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 분야는 한국 및 동양 정치사상이고 저서로는 『山崎闇齋の政治理念』, 『삼봉 정도전: 생애와 사상』, 역서로는 『일본 정치사상사: 17~19세기』, 『마루야마 마사오: 리버럴리스트의 초상』 등이 있다. 근년에 한일 역사화해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한국과 일본, 역사 화해는 가능한가』(공저), 『한중일 역사인식 무엇이 문제인가』(공역)를 출간했고, 「한일 역사화해의 전개 과정: ‘책임론적 화해’에서 ‘포용론적 화해’로」, 「‘책임론적 화해’를 넘어서: ‘한일화해 3.0’을 위한 사상적 토대」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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