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의 독자 참여 제도와 문예면의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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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의 독자 참여 제도와 문예면의 정착
  • 손동호 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국문학
  • 승인 2022.02.06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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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동아일보'의 독자 참여 제도와 문예면의 정착』 (손동호 지음, 소명출판, 396쪽, 2021.12

 

근대 시기에 발행한 신문이나 잡지 등의 인쇄매체는 근대문학의 주된 발표지면으로서 기능했을 뿐만 아니라, 문학사 기술을 위한 물질적, 문화적 토대였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그리고 근대 매체를 기반으로 한 근대문학의 역동성은 매체의 독자가 수동적인 존재에 머물지 않고 문학작품의 창작 주체로 변모하는 지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극적인 위상 변화는 근대 매체가 문예면을 개설하고 독자 참여 제도를 시행하는 등 제도적인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이 책에서는 근대 시기 대표적인 민간지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독자층의 세분화를 촉진하는 한편 문예면의 정착에 관여한 독자 참여 제도를 정리함으로써 한국 근대문학 형성 과정의 일단을 살펴보았다.

『동아일보』는 조선 민중의 표현기관을 자처하며 창간한 이래, 문화운동의 선전기관으로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3.1운동 이후 총독부는 문화정치를 표방하며 언론의 자유를 보장할 것처럼 선전하였다. 하지만 4차에 이르는 정간 조치와 1940년의 강제 폐간이 보여주듯이, 실제로는 신문에 대한 검열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갔다. 『동아일보』는 이러한 총독부의 언론 통제에 대해 문예면의 개설 및 증면으로 대응하였다. 문예는 비정치적인 영역에 속해 있어 비교적 검열에서 자유로웠을 뿐만 아니라, 민중 계몽에도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독자 참여 제도는 문예면이 고유한 영역을 구축하는 데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독자문단’은 『동아일보』가 문예물을 전면에 내세운 최초의 독자투고이다. 독자투고는 계몽의 대상에서 발화의 주체로 변모하는 독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독자문단’은 1차 정간 이후 신문이 속간되면서 함께 등장하였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독자문단’은 독자들의 직접 참여를 유도하여 독자를 확보하려는 의도에서 시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독자문단’은 지면의 제한으로 인해 산문보다는 운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운문 장르가 주로 개인의 정서를 담아내었다면, 산문 장르는 사회적인 문제를 주로 다루었다. ‘독자문단’에 수록된 산문은 1920년대 산문 양식의 다양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독자문단’ 신설 초기에는 전문작가의 작품을 집중 배치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문예물에 대한 이해를 돕고, 문학 장르에 대한 학습을 유도하였다. 즉 ‘독자문단’은 독자가 전문작가의 작품을 통해 문학적 글쓰기를 학습하는 일련의 재생산 과정을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 ‘독자문단’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독자들 중에는 이후 문단에서 활약하게 될 조운, 김명호, 한설야, 유도순 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독자문단’이 일종의 ‘근대 문인의 예비적 장소’이기도 하였음을 의미한다.

‘독자문단’을 통해 독자들의 문학 창작 가능성에 확신을 가진 『동아일보』는 본격적인 현상문예를 시행한다. 1923년 5월 25일 동아일보가 지령 1000호를 맞이하는 것을 기념해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현상문예를 연 것이다. 신문사의 대대적인 홍보, 고액의 현상금, 독자들의 투고열 고조, 독자 참여 제도의 정비 등으로 인해 현상문예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해당 현상문예의 시행 결과, 16개 부문에 걸쳐 90여 편의 당선작이 배출되었으며, 매주 일요일마다 독자들의 작품을 발표하는 ‘일요호’가 신설되었다. ‘일요호’는 ‘월요란’을 거쳐 ‘문예란’으로 정착된다. 결국 현상제도가 신문에 문예면이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비상시적으로 시행되던 문예 기획이 상시적인 문예면으로 정착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독자 참여 제도가 문예면의 정착에 직접적으로 기여했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해당 현상문예는 지면 제한에서 자유로워짐에 따라 ‘독자문단’에 비해 운문과 산문의 비중이 비슷해졌다. 현상문예의 당선작은 사회적인 문제를 주로 다루었다. 이는 조선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내용을 담아 민족지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한편, 총독부 정책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을 다룸으로써 『매일신보』와의 차별화를 꾀하고자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현상문예 당선자 중에는 다른 모집 부문에 중복 당선되었거나, ‘독자문단’에도 참여했던 독자들이 있었다. 이와 같은 ‘적극적인 독자’의 존재는 신춘문예 시행의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다. 

신춘문예는 당선 여부에 따라 독자를 작가로 공인하는 일종의 등용문으로, 독자의 위상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독자 참여 제도이다. 현상문예를 통해 독자들의 글쓰기 욕구와 문학적 글쓰기의 잠재력을 확인한 『동아일보』는 신춘문예를 통해 다수의 신인을 배출함으로써 ‘신진작가의 발굴’이라는 시행 목적을 달성하였다.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들은 이후 문단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함으로써 조선 문단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은 노동자나 농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의 실제 삶의 모습을 그려내는 등 현실 문제를 주로 다루었다. 이는 식민지 삶의 실상을 고발함으로써 신문사가 전개한 문화운동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는 신춘문예 시행 첫해부터 문예계, 부인계, 소년계 등으로 독자의 층위를 구분하여 작품을 모집하였다. 이는 여성과 아동이라는 새로운 독자층을 발굴하여 가정란과 아동란을 신설했던 매체의 지면혁신 정책과 연계된 작업이자, 이전 시기 독자 참여 제도의 전통을 계승한 결과였다. 동화는 바람직한 아동상을 제시하여 조선의 미래를 짊어질 아동들을 계몽하였으며, 작문은 습작을 통한 조선어 글쓰기의 보급 및 아동 계몽을 목적으로 시행하였다. 신춘문예는 각 장르별 당선작과 함께, 당선작에 대한 심사평인 선후감도 공개하였다. 선후감은 당선작 선정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였다. 독자들은 선후감을 통해 문학 창작 이론을 학습하고, 작품에 대한 비평적 안목을 기를 수 있었다. 이로써 신춘문예는 문학 창작층의 발굴 및 확대에 기여하는 동시에 독자들의 문학 이해 수준을 높여줌으로써 문단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신인문학콩쿨’은 문학에 적용된 최초의 콩쿠르로, 신문 매체 중에서는 『동아일보』만 유일하게 시도한 독자 참여 제도이다. 해당 콩쿠르는 김영석, 김이석, 조남영 등을 입선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1930년대 말, 총독부가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하자 문화운동은 물론 문단 또한 극도로 침체되었다. 『동아일보』는 이러한 문단 침체의 극복을 내세우며 ‘신인문학콩쿨’을 시행하였다. 정체된 문단 상황을 환기하기 위해 신인을 발굴해야 한다는 문단의 요구를 신문사가 수용한 결과였다. 당시 『동아일보』는 4차 정간에 이은 속간 이후, 문예물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각 신문사마다 경쟁적으로 신춘문예를 시행했기 때문에 신춘문예와는 차별화된 등단 제도가 필요했다. 이에 『동아일보』는 응모자격을 강화하고, 단편소설과 희곡에 집중하여 콩쿠르를 시도하였다. 『동아일보』는 자사 출신의 작가를 위주로 선발하여 이들이 문단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발표지면을 제공하였다. ‘신인문학콩쿨’의 시행은 정체된 문단을 환기하고자 하는 문단의 욕구와 자기 작품의 작품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신인들의 욕구, 그리고 작품 수급이 절실했던 신문사의 입장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무엇보다 ‘신인문학콩쿨’은 세대론에서 촉발된 신인론을 현실적인 콩쿠르 제도로 실현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인 의의가 있다.

이처럼 『동아일보』는 ‘조선민중의 표현기관’을 자임하고, 적극적으로 독자와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지금까지 살펴본 독자투고, 현상문예, 신춘문예, 신인문학콩쿨 등의 시행이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이러한 다양한 독자 참여 제도를 시행함으로써 근대 시기 한국 문단 형성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점에서 『동아일보』 독자 참여 제도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비상시적으로 운영되었던 문예 기획을 상시적인 문예란으로 정착하고, 지면의 일부를 독자에게 제공하여 대중에게 문예를 보급, 확산했다는 점도 해당 제도의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손동호 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국문학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 연세대 문리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논저로는 『근대지식과 ‘조선-세계’ 인식의 전환』(공저), 『20세기 전환기 동아시아 지식장과 근대한국학 탄생의 계보』(공저), 『텍스트로 보는 근대 한국』(공저), 『만세보 논설 자료집』, 『근대 신춘문예 당선 단편소설 조선일보 편』, 『동아일보』의 독자참여제도와 문예면의 정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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