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의 리얼리티에 투영된 근대성…기호로서의 도시, 기호로서의 패션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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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의 리얼리티에 투영된 근대성…기호로서의 도시, 기호로서의 패션을 말하다
  • 박혜원 창원대학교·의류학
  • 승인 2022.01.3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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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기호로서의 도시와 패션: 인상주의, 근대적 삶의 순간적 일상』 (박혜원 지음, 지식공감, 256쪽, 2021.11)

 

이 책은 여성과 패션을 인상주의 회화라는 렌즈를 통하여 살펴보았다. 현대미술의 시작이라 알려진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19세기 근대도시 파리의 도시 공간, 산업화에 의한 소비문화, 그리고 소비의 주인공인 여성들의 패션을 통한 상징과 의미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기호로서의 도시, 기호로서의 패션을 말한다. 

19세기 중후반 파리는 ‘모더니티의 수도’로서 유럽의 근대 문화를 선도하였다. 마네, 모네, 드가, 티소, 카이유보트, 베로, 르누아르의 그림 속에 나타나는 신흥 부르주아 여성, 카페에서의 여성, 공연장에서의 여성 그리고 길거리의 여성과 나이 많은 부르주아 남성들의 애인으로서의 젊은 여성, 매춘부, 삶에 지친 여성들의 생활 속에 나타난 그들의 외양을 공간과 함께 말하고 있다.  

그동안 서양패션사 저서들은 주로 제임스 레버(James Laver)나 프랑스와 부셰(Françoise Boucher)의 시각인 계급구조나 신분의 차이를 기반으로 시대를 설명하였었다. 이와 달리 본 저서는 ‘계급으로서의 패션’이 아닌 ‘소비문화의 현상’에서 나타나는 ‘개인적 욕망에 의한 외양 표현’과 ‘구별짓기로서의 치장과 패션’을 설명한다. 그리고 여성들의 치장과 패션의 장소는 근대도시 파리의 근대적 공간들임을 확인한다. 

현대회화의 문을 연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에 따른 다양한 색채 그리고 거친 듯한 터치감으로 잘 알려져 있다. 표현 방법뿐 아니라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 소재 역시 이전 시대와는 다르다. 인상주의 작품 중에는 도시 여가생활 문화가 작품에 잘 표현되어 19세기 부르주아 여성과 새로운 직업여성, 여성 노동자들을 시대의 주역으로 그리고 있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에 표현된 수많은 도시 여성들은 엄격한 품위와 규칙을 지키는 여성들이라기보다 밝고 아름다운 애인, 점원, 무용수, 술집 여인, 사교계의 여성들로 이전 시대보다 매우 유혹적이고 새롭다. 인상주의 시대는 계급이 아닌 개인의 욕망과 재화, 취향에 따라 새로운 시대의 젊은 여성들이 자기의 신체와 자신의 신체 꾸미기로서 패션을 공적인 무대에서 이용할 줄 알게 되는 시대이다. 이는 결국 ‘패션’은 근대성의 대표적인 상징물임을 말한다. 

파리의 도시 근대화는 제 2 제정기 나폴레옹 3세의 지시로 오스만 남작(Baron Georges-Eugène Haussmann)이 주도한 파리 재건설 계획에 의해 시작되었다. 더럽고 구불거리는 도로가 정비되고 대로(boulevards)가 건설되면서 파리는 유럽의 중심이 된다. 부르주아 계층을 위한 고층 아파트, 백화점, 유행 상품점 등 부르주아 소비자를 겨냥한 새로운 상품 생산과 유통이 번창하였다. 근대도시 파리의 스펙터클한 변화는 봉 마르셰 백화점의 탄생 사례로 설명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철저한 취재의 산물로 잘 알려진 에밀 졸라(Émile Zola)의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Au Bonheur des Dames)의 내용과 함께 여성들의 새로운 직업으로 등장하는 소위 모디스트(modist)에 집중하여 근대도시의 중간층 화이트 칼라로서의 여성과 그들의 외양이다. 

프랑스 사회의 부르주아들이 즐기는 여가 생활은 19세기 중반 이후 일반 사회계층으로까지 확대가 된다. 산업혁명으로 절대 빈곤이 사라지고 시민혁명으로 신분제가 차츰 붕괴되는 속에서 여가의 등장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리얼리티를 담은 작품 속에서 드러난다. 도시의 대로, 카페나 제과점, 도시 근교의 야외, 오페라 하우스나 무도회, 술집, 모자 가게와 상점의 겉과 안의 공간 등 파리지엔느들이 나타난다.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자두, 브랜디>, <나나> 등에서는 향락적인 도시의 밤 문화와 드미몽드의 모습 등이 도시 공간을 배경으로 표현되고 있다. 티소와 베로처럼 순수미술에서 인상주의 작가로 평가받지 못하는 작가들의 상업적 작품에서는 오히려 더욱 사실적인 기법으로 여성의 과시적 아름다움과 애인으로서의 여성들의 사치스러운 의상표현이 세밀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베블렌(Veblen)이 언급한 레저계급의 이론에서 과시적 드레스를 입은 여성은 남편(혹은 애인)의 사회적 지위의 지표로 패셔너블한 패션을 찾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기 패션은 스펙터클한 소비 산업사회의 사회적 현상 속에 나타나는 여성의 가시적 아름다움과 상품화와 같은 일종의 코드가 읽혀진다. 패션사적으로 볼 때 주로 버슬 스타일(1870~1880)의 전성기와 일치한다. 

 

사진 출처: 패션비즈니스 제22권 4호, 85쪽, 87쪽(박혜원, '인상주의 회화에 나타난 근대도시의 기호와 여성패션')

한편 드가의 작품 속에서는 소비사회의 명암이 그려지는데, 대표적인 것이 모자이다. 드가의 모자 시리즈 작품 속에서는 모자 상점이 공간적 배경이 되고 여성의 얼굴이 정확히 보이지 않고 측면, 후면 혹은 가려진 인물들이 나타나며 모자를 만드는 사람,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등 다양한 공간에서 모자를 매개로 시대를 설명하고 있다. 당시는 여가활동의 라이프 스타일로 인하여 실내외를 막론하고 다양한 모자들의 전성기였다. 

카이유보트의 대표작 <비오는 거리>에서는 플라뇌르적 개념이 그대로 담겨진 파리의 부르주아 모습이 읽혀진다. 남성은 코트와 셔츠, 조끼, 바지의 쓰리피스 스타일의 전형적인 부르주아의 모습이며 여성 역시 스커트가 퍼지지 않고 차분하고 우아한 라인과 트리밍, 진주 귀걸이와 모자로 품위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원근감 있게 회색으로 표현된 도시의 근대적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부르주아 커플의 우산과 상점을 훑어보는 시선이다. 우산은 드가의 모자처럼 시대를 대변하는 아이템이다. 18세기까지 여성의 전유물이었던 우산이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에 남녀를 불문하고 자주 등장하는데 당시의 우산 제조업은 파리에서 매우 발달하여 날씨가 좋은 날과 궂은날 부르주아들의 중요한 소지품이었다.

패션에서는 인공적 실루엣의 빠른 유행이 시작되었다. 이전 시대에는 100년, 50년의 유행시기가 있었다면 근대도시의 패션은 10년, 20년으로 빨라지기 시작하였다. 재봉틀의 발명으로 의복은 더욱 복잡하고 장식적인 구조로 제작이 되고 플리츠와 버슬을 통한 인위적인 실루엣을 쉽게 만들었다. 그리고 도시적 색채로서 검정이 유행하여 과거 미망인, 종교적 색채에서 벗어나 파리지엔느의 색으로 등장하는데 모디스트 직업 여성들의 의복에서 그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 속 여성들은 남성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수동적인 표현에서 벗어나 이제 여성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고 즐기는 것으로 자신의 패션을 드러내고 있었다. 남성 옷의 민주화가 프랑스 혁명 이후라면 여성의 옷은 19세기 중반 이후에 이르러 근대적 의미의 패션 민주화가 진행된 것으로 이해된다. 산업화로 도시에 인구가 집중되면서 소수가 아닌 대중을 위한 산업에 거대한 자본이 몰려들어 패션산업은 호황이었고, 상업극장이나 ‘물랭루즈’ 같은 무도회장 장소들이 탄생하여 소비와 여가문화는 중요한 삶의 일부였다. 이러한 생생한 삶의 모습들이 인상주의 회화 속 공간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그 주인공인 여성의 패션은 욕망에 근거한 소비와 여가문화의 주체적 기호로 묘사되고 있었다. 

패션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입혀지기에 때로는 매우 정치적 산물이며, 사회의 결정적 변화의 시기를 읽어내는 데에 유용하다. 가시적으로 옷으로 대표되는 패션은 한 시대의 생활양식과 문화사조를, 그리고 그 옷을 입은 사람과 보는 사람들의 의식을 가장 잘 반영하는 종합적인 표현예술이기에 이러한 탐구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박혜원 창원대학교·의류학

국립창원대학교 의류학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의류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패션조형협회장과 한국패션비즈니스학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창원대학교 BK21 뉴시니어스마트라이프 인재양성사업단장을 맡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총연합회 우수논문상(2008, 2021)과 한국패션비즈니스학회 학술상(2015년)을 수상했다. 저서로는‌《함께 알아보는 패션과 뷰티 이야기》, 《현대 패션디자인》, 《히자버, 히자비스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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