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는 나쁜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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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는 나쁜 운동이다?
  •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 승인 2022.01.30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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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의 생활에세이]

 

조코비치(좌)와 메드베데프(우)<br>
조코비치(좌)와 메드베데프(우)

멜버른에서 열린 2022년 호주 오픈 테니스는 많은 얘깃거리를 낳았다. 우선 세계 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가 입국을 거부당하고 빈손으로 돌아갔다. 호주 정부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서였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는 코로나에 이미 걸렸던 적이 있어서 백신을 맞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팬들의 의견은 둘로 나뉘었다. 아무리 세계 챔피언이라도 규정을 따라야 한다는 쪽과 초청해 놓고 추방한 호주 쪽이 문제라는 쪽이 갈렸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지만 어쨌든 조코비치가 특별대우를 기대한 것 같고, 그것은 잘못된 일이라 생각한다. 이 추방으로 그는 세계 처음으로 메이저 21승 기록 세우는 것을 뒤로 미루어야 했고 세계 1위 자리도 위태롭게 되었다. 소탐대실이 아닌지, 안타까운 일이다. 

남자 8강전에서는 조코비치의 라이벌 나달(스페인)이 문제가 되었다. 경기 뒤 인터뷰에서 상대였던 캐나다의 샤포발로프가 심판이 편파적이었다고 비난하였다. 나달이 세트 스코어 2대2 상황에서 5세트가 시작되기 전 메디컬 타임아웃을 신청하고 곧이어 화장실 타임아웃도 신청하여 자신의 경기 흐름을 끊었다는 것이다. 나달은 서브하기 전에 지나치게 시간을 끌어 많은 선수들의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나달은 테니스계의 신사로 좋은 인성을 칭찬받지만, 이런 일은 인성과는 별 관계없는 것 같다. 고쳐야 할 점이지만, 이제 와서 고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더 심한 일이 치치파스(그리스)와 메드베데프(러시아)의 4강전에서 일어났다. 메드베데프가 심판에게 격렬하게 소리치며 항의했는데, 이유인즉슨 치치파스의 코치 겸 아버지(그도 치치파스겠지?)가 금지되어 있는 경기 중 코치를 계속하는데도 심판이 이를 제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치치파스는 전에도 이런 항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화장실 타임아웃을 신청하고는 화장실에서 문자로 아버지의 코치를 받는다는 것이다. 

테니스는 신사의 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요사이 보면 지나친 경쟁의식이 테니스를 오염시키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선수들이나 팬들이나 규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규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예컨대 서비스를 25초 안에 넣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이를 25초를 다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보다는 서비스를 되도록 빨리 하되 불가피한 경우라도 25초 안에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실제로 그렇게 잘못 생각하다 보니 25초를 넘기고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나는 10여 년 전부터 농구 경기를 시청하지 않는다. 어느 날 농구 해설자가 “자, 이제 반칙으로 끊어야죠.” 하는 소리를 듣고 나서부터였다. 농구는 반칙을 작전으로 쓰는 나쁜 운동인가? 반칙을 효율적으로 ‘경영’하여 퇴장 당하지 않는 한에서 전술로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은 모든 농구인들의 공통된 생각일까? 반칙에 대한 처벌은 그것이 나쁜 행동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효율적으로 이용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강에 페놀을 방류하고 벌금을 무는 것이 규정을 지키는 것보다 더 이익이면 그렇게 해도 될까?

예전의 예능 프로들에서는 규칙 어기기를 예사로 하고 있었다. 규칙을 정해 놓아도 진 사람이 “아잉!” 하면서 떼를 쓰면 다시 하게 해주는 일이 허다하였다. 그래서 예능도 안 보게 되었다. (뭐 꼭 그렇다기보다는 늙으니까 그런 것들이 재미가 없어지더군.) 요새는 좀 나아졌는지 안 봐서 모르겠다. 

규칙과 규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지 활용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에, 그것과 관계없이, 도덕과 예법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운동이든 음주든 운전이든 데이트 신청이든 모든 인간사에서 옳은 일일 것이다. 옳은 일만 하면 세상이 재미없을 것 같지만, 반칙을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세상을 재미나게 살 수 있다.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명예교수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글문화연대 대표 등을 지냈으며,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외솔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 『담론에서 실천으로: 한국적 정치학의 모색』, 『단일 사회 한국: 그 빛과 그림자』,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대한민국 정치사』, 『한국 정치의 성격』, 『정치란 무엇인가: 김영명 교수가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최근 수필집 『봄날은 간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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