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신경과학이라는 ‘두 문화’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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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신경과학이라는 ‘두 문화’의 대화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1.23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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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과학철학: 뇌중심주의에서 체화주의로 | 이영의 지음 | 아카넷 | 484쪽

 

신경철학 분야의 선구자인 퍼트리샤 처칠랜드 철학의 뇌 중심주의적 접근이 마음과 의식을 설명하는 데 있어 근본적인 한계를 갖는다는 점을 비판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는 책이다. 저자는 처칠랜드의 신경철학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체화주의를 주장함으로써, 체화주의가 제거적 유물론에 기반을 둔 신경철학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고, 신경과학이 존재론적, 방법론적, 의미론적, 윤리적 차원에서 더 많은 설명력과 철학적 함축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제거적 유물론은 철학과 신경과학이 환원적으로 만나는 경우로서, 제거적 유물론의 제거 대상은 통속심리학이다. 그러나 신비주의나 이원론은 통속심리학에 기반을 두고 있거나 그것을 정당화하며, 유물론 중 비환원적 물리주의나 기능주의도 제거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비록 제거적 유물론이 관련 분야들의 상호진화를 주장하지만, 한 분야의 학문적 독립성이 유지되지 않는 상호진화는 진정한 만남이 아니라는 점에서, 제거적 유물론이 제시하는 환원과 제거라는 선택 상황에서 철학과 신경과학이 호혜적으로 만나기는 매우 어렵다.

제1부 ‘존재론’은 마음과 의식의 본성에 관한 이론인 존재론을 다룬다. 여기서는 차머스(D. Chalmers)의 제안에 따라 다양한 존재론의 이론들을 논리적 수반과 유물론에 대한 태도를 기준으로 이원론(실체이원론, 신경이원론, 신비주의), 환원적 유물론(행동주의, 동일론, 제거적 유물론, 기능주의), 비환원적 유물론(속성이원론, 표상주의, 개별자 동일론)으로 구분한다. 논의의 초점은 개별 이론들이 신경과학의 존재론이 될 가능성을 검토하는 데 있다.

제2부 ‘인지과학’은 인지과학의 주요 연구 프로그램인 기호주의, 연결주의, 체화주의를 다룬다. 기호주의에 따르면 인지는 기호처리의 과정이며 기호처리는 엄격한 규칙을 따른다. 연결주의에 따르면 인지는 대규모의 신경망에서 구현되는 패턴이며, 신경망의 변화는 유연한 규제로 나타난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기호주의와 연결주의는 인지가 뇌에서 진행되는 표상 처리의 과정이라고 본다는 점에서 표상주의와 결합한 인지주의이다. 체화주의에 따르면, 인지는 뇌 안의 활동이 아니라 유기체로서의 인간이 몸을 통해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저자는 왜 체화주의가 인지에 대한 최상의 설명을 제공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그 이론을 크게 네 가지 하위 이론으로 구분하고 그것들 간의 개념지도를 제시한다.

제3부 ‘방법론’은 신경과학의 연구 방법과 관련된 주요한 주제인 환원, 신경상관자, 신경현상학을 차례로 다룬다. 처음 두 가지 주제는 신경과학의 핵심 방법이다. 신경과학자들은 심적 상태(사건)가 두뇌 상태(시건)로 환원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환원을 위해 그들은 심적 상태에 대응하는 두뇌 상태인 신경상관자를 찾고 있다.

저자는 상관과 인과를 구별하고 공통원인의 가능성을 들어 그런 방법이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신경현상학은 체화주의가 제시하는 주요 방법이다. 논의를 통해 신경현상학이 1인칭적 접근과 3인칭적 접근 간 호혜적 규제와 하향인과 개념을 통해 앞의 환원적 방법보다 뇌-몸-세계의 관계에서 의식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제4부 ‘의미론’은 표상의 의미와 처리를 다루는 의미론을 다룬다. 먼저 기호주의의 주요 의미론인 포더(J. Fodor)의 사고언어 가설과 마음의 모듈성을 검토하고 최근 진화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대량모듈 가설을 논의한다. 연결주의의 의미론은 원형 활성화 모형을 포함한 신경의미론인데, 그것에 따르면 표상의 의미는 신경망에서 구현된 상태공간의 분할 방식이다.

신경의미론은 신경망의 작동을 기반에 두고 표상의 의미를 설명하는 장점이 있으나, 여전히 표상의 의미가 내적으로 결정된다고 보는, 의미 내재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신경과학자들이 의식과 인지를 설명하면서 심각한 오류(부분·전체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주장이 검토된다. 그것에 따르면, 우리는 심적 술어를 뇌가 아니라 전체 인간에게 귀속해야 하며 이를 어기면 오류가 된다. 저자는 그 주장을 체화주의 관점에서 비판하고 그런 오류는 개별과학의 발전 단계에서 나타나는 무해한 비유라는 점을 주장한다.

제5부 ‘신경윤리’는 신경과학적 발견이 함축하는 윤리적 주제를 다룬다. 먼저 신경과학은 인간을 자유의지를 갖는 존재로 보는지를 검토한다. 이와 관련된 이론들(결정론, 비결정론, 양립가능론)을 검토하고 이어서 자유의지를 부정한 것으로 보이는 리벳 실험을 논의한다.

저자는 여기서도 자아를 내러티브를 통해 구성되는 것으로 보는 체화주의 관점을 통해 자아와 자유의 문제를 설명한다. 두 번째 주제로 신경과학 기법을 이용하여 타인의 마음을 읽는 것의 윤리적 정당성 문제를 다룬다. 마음 읽기에 대한 인지과학 이론(이론-이론, 모의 이론), 거짓말 탐지기법, 뇌 지문 기법을 논의하고 정신적 자유와 사밀성을 중심으로 그런 기법의 윤리적 정당성을 검토한다.

마지막 주제는 신경 향상이다. 여기서는 신경 향상을 인지적 향상과 도덕적 향상으로 구분하고 그 양자와 관련된 인지적 지유, 신경마케팅, 분배적 정의를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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