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가장자리, 그곳에서 인류 역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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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가장자리, 그곳에서 인류 역사가 시작되었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1.23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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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질서가 만든 질서: 인류와 우주의 진화 코드 | 스튜어트 A. 카우프만 지음 | 김희봉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44쪽

 

물리학은 세계의 모든 존재를 ‘원자’라는 아주 작은 단위로 설명한다. 그들은 원자를 통해 인간 존재부터 우주라는 커다란 세계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그동안 생명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다양한 연구와 이론이 발표되었다. 물론 이는 인류 및 과학 발전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그 공헌 또한 인정되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물리학과 같은 과학 법칙으로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심지어 인간의 심장은 왜 존재하는지조차 설명하지 못한다. 생명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분석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체계의 속성과 작동방식에 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학계의 흔한 시도인 물리학이나 화학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 이유는 생명 현상이란 개별 구성 요소들의 단순한 합이 아니라 창발적인 속성, 즉 세포 각각이 자기조직화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계 과학의 선구자이자 이론생물학자인 저자 스튜어트 카우프만은 복잡한 화학적 환경에서 초기의 원시세포는 생명이라고 인식되는 것으로 끊임없이 진화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물리 법칙으로 증명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생명이란 세포 스스로 생을 창발하여 새로운 생태적 지위를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카우프만은 세포 스스로 진화를 일으켰다는 확실한 증거들을 제시하며, 개체군 내의 유전적 변화와 엄청난 생물다양성의 기원과 발달에 관해서도 밀도 있게 이야기한다. 

아이작 뉴턴이 인류에게 준 선물인 고전 물리학은 수동적인 목소리로 서술된 세계이다. 바위가 떨어지고, 행성들이 궤도를 돌며, 별들은 자신의 질량에 의해 뒤틀린 공간 속을 떠돈다. 이 세계에서는 행위doing는 없고, 사건happening만 있을 뿐이다. 수없이 많은 일이 일어나고 기적 같은 일도 벌어지지만, 모두 맹목적일 뿐이다. 이 책은 이 문제를 직접 공격한다. 우주의 보편적 맥락에서 생명을 설명하는 환원주의에 반박하며, 세계를 각 세포가 스스로 상호작용하여 얽힌 그물로 해석한다. 저자는 복잡계 과학이 어떻게 다윈의 진화론을 성장시켰는지 그리고 생명이 외부압력 없이 스스로 계system를 형성하여 어떻게 생물계의 엔진을 작동시켰는지 설명한다. 그는 생물의 생명을 분자, 원자와 같은 입자로 설명할 수 있을지라도, 거기에 내재된 속성은 물리학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 시스템적인 성격은 생명공학 분야의 특징이기도 하다. 저자는 진화생물학, 유전학, 생태학과 같은 생물학의 다양한 분야를 바탕으로 어떻게 생물학이 물리학과 다른 방식으로 생명 현상을 설명하는지 보여 준다. 따라서 그동안 과학 분야에서 답하지 못했던 생명의 기원에 관한 궁금증을 해소해 주는 이 책은 다양한 학문이 교차되는 접점에 있다. 

총 열두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환원주의 관점에서 우주와 세계를 분석하는 시각을 정연한 논리로 반박하며, 복잡계 과학이라는 패러다임으로 생명의 탄생에서부터 다세포 생물의 출현, 캄브리아기의 대폭발 그리고 거대한 문명의 출현과 쇠퇴에 이르는 크고 작은 무질서 속의 질서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자기조직화와 창발성의 개념을 도입하여, 자연에서 자발적으로 생겨나는 질서의 사례들을 속속들이 소개한다.

이 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논의는, 저자가 정성 들여 설명한 화학 진화에 관한 이야기이다. 생명 현상에는 RNA, 지질, 단백질과 같은 생명의 구성단위가 서로의 생성을 촉진하여 순환 고리를 이루는 재생산 메커니즘이 저절로 생긴다는 것이다. 이 논의를 바탕으로, 저자는 수많은 과학자가 토로하는 세계의 무의미성을 반박한다. 과학을 깊이 연구하면 할수록 세계가 철저히 무의미하게 느껴진다고 말하는 각 분야 과학자들과 다르게, 저자는 생명과 우주는 늘 새로운 가능성에 열려 있으며, 따라서 의미로 가득하다고 말한다. 그는 생명이란 움직이는 입자만큼이나 실제적인 존재로, 이에 따라 행위 주체성과 가치, 행동이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책 구석구석에서 힘주어 말하는 ‘실제적’이라는 단어에 방점이 찍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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