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사’ 이론으로 전개하는 기술철학, 문화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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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투사’ 이론으로 전개하는 기술철학, 문화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1.23 2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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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철학 개요: 새로운 관점에서 본 문화 생성사 | 에른스트 카프 지음 | 조창오 옮김 | 그린비 | 360쪽

 

이 책은 19세기 독일의 기술철학자 에른스트 카프의 저작으로, '기술철학'이라는 표현을 최초로 사용했으며 기술을 체계적인 철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부상시킴으로써 초기 기술철학을 성립시킨 역사적인 고전이다. 카프 이전까지 기술은 단지 제품 생산의 관점에서 도구적으로 대상화되었다. 그러나 카프는 인간의 신체 기관이 기술 제작의 원상 또는 모델이 된다는 '기관투사' 이론을 통해 기술적 대상은 인간의 신체의 복제이며, 따라서 기술이란 인간의 절대적인 자기생산이자 자기표현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이러한 기술에 대한 문화적 관점을 통해 그동안 문화를 위한 보조적 역할에 머물렀던 기술은 인간의 자기인식, 자기의식을 위한 통로로 재인식된다. 기술에 대한 체계적이고 철학적인 이해를 제공함으로써 현재의 우리에게도 끊임없이 철학적 화두를 던지는 책이다.

기술은 우리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대상’이다. 핸드폰은 우리 삶의 형식을 바꿨고, 냉장고는 인류의 건강 상태에 혁명을 가져왔다. 그러나 기술은 여전히 매우 접근하기 힘든 대상이기도 하다. ‘기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명확한 답변을 하기 어렵다. 기술이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구조화하고 있음에도 정작 우리는 기술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 바로 여기에 기술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기술은 산업 혁명 이후 전면에 드러나면서 학문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에 기술을 다뤘던 분과는 기술학(Technology)이라는 경제학이었고 기술이란 곧 제품 생산 활동 전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와중 19세기 독일의 기술철학자 에른스트 카프가 기술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 즉 기술을 도구로만 보려는 관점을 비판하는 책을 출간하는데, 그것이 바로 1877년에 출간된 이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기술철학’이라는 표현을 최초로 사용했으며, 기술을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철학적 탐구의 대상의 반열에 올려놓음으로써 초기 기술철학을 성립시켰다.

카프는 기술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 즉 기술을 도구로만 보려는 관점을 비판하며 기술을 인간의 ‘자기 표현’으로 고찰한다. 인간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기술적 도구를 제작한다. 여기에서, 표면적인 차원만을 제작 활동의 전부로 착각함으로써 기술의 도구적 개념이 발생할 위험이 도사린다.

그러나 카프는 이러한 제작의 의식적 차원 뒤에 숨겨진 무의식적 차원을 발견하고 이를 부각시킨다. 의식적인 제작 활동 이면에는 ‘무의식적 기관투사’ 과정이 존재한다. 무의식은 인간의 신체 기관을 제작의 원상 또는 모델로 제공하지만, 인간은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거듭된 시행착오 끝에 스스로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인간이 제작한 기술적 도구는 자신의 신체 기관이 무의식적으로 투사된 대상이다. 즉 기술적 대상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자기 신체의 복제이자 그 표현이다.

‘기관투사’ 이론을 통해 카프는 기술에 대한 문화적 관점을 제시한다. 기술이란 인간의 ‘절대적인 자기생산’이며, 기술적 대상을 통해 인간은 자기를 인식한다. 기술에는 손도구, 기계, 컴퍼스, 현미경, 피아노, 전신, 타자기뿐만 아니라 언어, 국가도 포함된다. 이러한 기술적 대상들이 모여 문화를 형성한다.

기존의 문화철학에 따르면 문화는 고차원적 정신의 자기 객관화의 산물이고 기술은 이러한 객관화를 위한 보조수단에 불과했다. 그러나 카프는 기술에 대한 도구적 관점을 폐기하고, 문화 전체를 기술적 산물로 보는 문화적 관점을 제시한다. 기술은 곧 문화요 인간의 자기 표현이며, 기술철학은 곧 문화철학이다. 기술은 인간의 자기인식, 자기의 의식을 위한 통로이다. 궁극적으로 카프는 과거의 문화철학을 기술 개념을 통해 새롭게 변모시키고자 했다.

기술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학적으로 그 의미를 구하는 작업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기술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물론이고 기술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아우르는 카프의 이 책은, 하루가 다르게 기술과 관련된 새로운 경험을 해 나가고 있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끊임없이 철학적 화두를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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