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부와 금기, 토테미즘과 애니미즘에 관한 프로이트의 네 편의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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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부와 금기, 토테미즘과 애니미즘에 관한 프로이트의 네 편의 논문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1.23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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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이트: 토템과 터부 |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 원당희 옮김 | 미래지식 | 236쪽

 

『토템과 터부』는 프로이트가 편집인으로 있던 잡지 [이마고]에 발표한 네 편의 논문을 엮어 출간한 책이다. 논문은 「근친상간 기피 현상」, 「터부와 감정 자극의 양가성」, 「애니미즘, 주술과 생각의 만능」, 「토테미즘의 유아기적 회귀」로 서로 연관성을 지니면서도 각각 특수하고 심오한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

이 책에서 내용 전체를 관류하는 주제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미개인과 신경증 환자의 영적 생활에서 몇 가지 일치점’이다. 이에 따라 미개인을 어린아이나 신경증 환자와 동일시하는 것이 방법적 열쇠로서 제시되었으며, 이를 입증하기 위하여 빌헬름 분트의 『민족심리학』과 프레이저의 『토테미즘과 족외혼』이나 『황금가지』, 알렌산더 골든와이저와 앤드류 랭의 토테미즘에 관한 저서 등이 사용된다. 미개인들의 풍습에 관하여 수많은 사례를 제시하고 정신분석학과 비교 분석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고 사유의 폭을 크게 넓혀 주고 있지만, 많은 경우에 ‘추론적 증명’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프로이트는 이 책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방법론적으로는 우선 비분석적 심리학 가설과 연구 방식을 동일한 목적으로 하고 있는 빌헬름 분트의 거대하게 계획된 저작과는 대립된다. 정반대로 민족심리학적 소재를 끌어들여서 개인심리학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는 취리히 정신분석학파의 작업하고도 대립된다. 나는 이 두 관점으로부터 자극을 받아 이 논문이 출발하게 되었음을 기꺼이 인정한다.”

네 편의 논문은 서로 연관성을 지니면서도 각각 특수하고 심화된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 

         토템과 터부 초판 (1913년)

첫 번째 논문은 근친상간 금지와 족외혼에 관하여 다루면서 궁극적으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인류학적 증거를 찾으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토템이 식물이든 동물이든 상관없이 동일한 토템을 섬기는 구성원들은 서로 성적인 관계를 갖지 않고, 따라서 서로 결혼해서도 안 된다는 규칙이다. 이것이 토템과 연관된 족외혼의 풍습으로, 근친상간 금지를 넘어서는 족외혼은 다른 부족과의 결혼을 통해 문화적 교류와 소통의 의미까지도 지니고 있다. 

반면에 토테미즘에 따르는 터부는 오늘날 강박신경증 환자의 접촉 기피나 정화로서의 씻기 행위와 유사성을 지닌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주장이다. 이와 연관하여 두 번째 논문에서는 터부와 강박신경증이 구체적으로 비교된다. 터부는 한편으로 ‘신성한’이라는 의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시무시한, 위험한, 금지된, 부정한’이라는 의미이다. 터부는 종교적이거나 도덕적인 어떤 규율보다 오래된, ‘문자로 적혀 있지 않은 법전’으로 규정될 수 있다. 프로이트는 강박신경증의 경우에는 사랑하는 대상에 대하여, 터부의 경우에는 지배자와 죽은 자라는 적에 대하여 무의식적 적대성의 계기를 연관시킨다. 가령 강박신경증 환자에게서 “어떤 특정한 사람에 대한 감정적 애착이 강렬한 경우는 대부분 애틋한 사랑의 배후에 도사린 무의식적 적대성이 엿보이곤 했는데, 이것이 바로 인간의 감정에 들어 있는 양가성의 고적적인 사례이자 전형”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개인은 죽은 자에 대하여 터부가 강력하게 작동하지만, 죽은 자에 대한 애도에는 무의식적 적대성이 숨겨져 있다고 보았다.

세 번째 논문에서 프로이트는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버넷 타일러에 입각하여 애니미즘을 종교적 세계관의 전 단계로 파악한다. 애니미즘(또는 신화적 세계관)에서는 ‘주술’이 중요한 사유 형식이며, 이를 지배하는 원리는 ‘생각의 만능’이다. 주술적 세계에서는 사제나 추장과 같은 특정인의 생각이 어떤 초월적 힘에 의하여 시공을 넘나드는데, 원시 사회와 미개인들에게서는 아주 흔한 현상이다. 문제는 신경증 환자, 특히 강박신경증 환자에게도 이와 유사한 증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노출되는 나르시시즘에는 주술의 특징인 생각의 만능이 강하게 나타난다. 예컨대 그들은 생각만으로 외부의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한다. 이렇게 볼 때 생각의 만능을 믿는 미개인들의 경향은 정신분석적으로는 나르시시즘의 단계에 해당하고, 생각의 만능을 신에게 양도하는 단계는 종교적인 단계로서 부모와의 화합을 통해 대상을 발견하는 단계에 속한다. 더 나아가 과학적인 단계란 쾌락 원칙을 포기하고 현실에 적응하는 개인의 성숙한 단계라는 것이 프로이트의 관점이다.

네 번째 논문에서는 ‘원시 유목민’을 통해서 인간의 문화가 어떻게 발전하고 성장해 왔는가를 설명한다. 이 설명에서 친부 살해라는 모티브가 중요한 내용으로 등장한다. 즉 원시 부족의 우두머리가 권력을 행사하며 여자를 독차지하는 상황에서 아들 형제들은 여자를 얻기 위해 서로 단결하여 아버지를 죽이고, 심한 경우에는 살을 먹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점차 양심의 가책과 죄책감을 느끼며 근친상간과 살인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게 되었다. 이렇게 문화는 충동과 소망을 다스리고 특정행위를 금기시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토테미즘의 유아기적 회귀’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하는 것은 미개인들의 지배자에 대한 관계가 억압을 겪는 어린아이의 아버지에 대한 관계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가령 어린아이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겪으면서 가정에서 여러 가지 규칙을 받아들이고 내면화하는 법을 배워야 하듯이, 프로이트의 원시적인 형제 무리는 그들의 근원적인 충동을 억제하고 그 힘을 공동체에 헌신하는 데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로이트는 이 연구의 서문에서 토템과 터부 사이의 밀접한 관계에 몇 걸음 더 나아가게 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프로이트의 연구와 주장에는 대부분 추론적 증명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미개인들의 풍습에 관해 수많은 사례를 제시하고 정신분석학과 비교 분석한다는 점에서 아주 흥미로운 연구이며, 사유의 폭을 넓혀 준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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