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종교 체험으로 보는 인간 불안과 기독교 성공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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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종교 체험으로 보는 인간 불안과 기독교 성공의 역사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1.23 2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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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의 시대 이교도와 기독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부터 콘스탄티누스까지 종교적 경험의 몇 가지 측면 | 에릭 R. 도즈 지음 | 송유레 옮김 | 그린비 | 192쪽

 

이 책은 로마의 평화가 저무는 시기부터 기독교가 공인되는 시기를 배경으로, 당대에 전염병처럼 퍼진 지적·도덕적 ‘불안’과 그와 관련한 기독교·이교의 태도를 설명하는 한편, 이에 따른 기독교 성공의 원인은 무엇이었는지를 분석한다.

풍성한 예시를 통해 이 당시 유행한 ‘육체에 대한 증오’, ‘내세로의 도피’, ‘죄의식’을 개인의 종교적 심리 차원에서 보여 주며, 특히 현재 학계의 가장 뜨거운 관심사 중 하나인 신플라톤주의·영지주의·기독교 간의 충돌 및 교류를 광범위한 학문 분야와 자료를 기반으로 분석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현대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불안한 사람이 많은 시대가 불안의 시대다. 그런데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인간의 불완전성과 인간사의 불확실성은 심리적 불안을 거의 당연지사로 만든다.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이는 철학·심리학 등의 학문에서 답을 구하고, 어떤 이는 종교에서 답을 구한다. 이렇게 개개인이 각자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나 새로운 불안이 태어나기도 하지만, 대화와 타협의 길 또한 언제나 모색되었다. 이 점에서 우리 인간의 역사는 불안의 역사이자 불안 극복의 역사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이 책의 배경인 서양 고대 후기, 이른바 ‘불안의 시대’ 사람들이 불안을 대하는 태도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는데, 이때에도 우리는 지금 겪는 것과 비슷한 불안과 죄의식, 갈등과 대화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현대를 사는 우리의 이야기보다 더 극적으로 다가온다. 서양 고대 후기는 일대 변화의 시기였고, 그만큼 다양하고 기이하거나 다소 극단적인 불안의 형태들이 있었으며, 그에 따른 종교적·철학적 방안들 또한 무척이나 혼재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 에릭 R. 도즈가 퀸즈 대학에서 진행한 네 개의 강연을 엮은 것으로, 고대 후기 중에서도 로마의 평화(Pax Romana)가 저물기 시작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즉위부터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종에 이르는 시기를 다루는데, 주지하다시피 이 과도기에 로마 제국은 정치·사회·경제적인 불안정과 더불어 심각한 지적·도덕적 불안정을 겪었다.

여기서 저자는 ‘불안’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당시 기독교와 이교에게 공통된 태도를 부각시키며 이들 사이 중요한 차이점들 또한 상세히 드러낸다. 한편 이렇게 불안을 둘러싼 이교·기독교의 다양한 태도 및 해석을 전개하면서, 저자는 흔히 추측하듯 제국의 멸망을 단순히 내세 지향적인 기독교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는다. 그 대신 로마 제국의 물질적 쇠망이 장기간에 걸쳐 광범위하게 전개된 세계에 대한 정신적 전망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진단한 뒤, 기독교의 부상을 이 세계 전망의 변화라는 큰 흐름 속에서 파악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파악 과정의 말미에서 저자는 기독교가 부상한 이래 결국 성공하게 된 이유까지 제시하게 된다.

그럼 이 책에서 말하는 기독교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먼저, 오늘날에는 종종 약점으로 지목되는 기독교의 배타성이 당시에는 강함의 원천이었다는 점이다. 이전의 그리스·로마적 관행에는 너무나 많은 삶의 철학이 있었고, 선택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숭배가 있었다. 기독교는 구원으로 가는 단 하나의 선택을 제시하여 ‘혼란스러운 자유’의 짐을 내려 주었다. 저자의 말처럼, “불안의 시대에는 ‘전체주의적’ 신조가 강력한 매력”을 펼쳤던 것이다.

둘째, 기독교는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신플라톤주의처럼 교육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수공업자, 노예, 추방자, 전과자를 모두 수용했다. 육체에 대한 경멸, 현세의 삶의 가치 절하, 죄책감이 만연했던 시기에 기독교는 권리를 박탈당한 자들에게도 다른 세상에서의 더 나은 조건을 약속했다. 몇몇 이교 경쟁자도 그런 식의 전략을 구사했지만, 기독교는 “더 큰 채찍을 휘두르고 더 단 당근으로” 달랬다. 엄숙하면서도, 또한 생생한 희망의 종교였던 셈이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느끼는 기독교의 혜택은 비단 내세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앞서 지목한 단 하나의 선택을 위해 이들은 공동 의례, 공동생활 방식, 공동 위험에 의해 결합했고, 고난에 처한 형제들을 돕기 위해 물질적 도움을 행사하는 데에 무척 신속했다. 과부와 고아, 노인, 실직자 그리고 장애인을 돌보는 한편, 가난한 이에게 장례 비용을 대주는 등 사람들에게 이른바 사회 보장 서비스를 제공했다. 공동체 안에서의 인간적 온기, 이것이 기독교에 ‘소속될 필요’에 보편성을 부여했던 것이다.

근현대의 사회학·철학·심리학 연구는 ‘소속의 필요’와 그것이 인간 행위에 영향을 끼치는 방식을 깨닫게 했지만, 이 책은 이미 서양 고대의 기독교 성공 자체가 그것의 충분한 예증이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존감을 유지하게 하고 삶에 어떤 명증한 의미를 갖게 하는 것, 약자를 소외감으로부터 구제해 주는 것. 불안한 사람들의 선택을 받았던 당대 기독교의 이러한 면모는, 지금 현대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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