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에 세대론은 성립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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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에 세대론은 성립할 수 있을까?
  • 하세봉 한국해양대학교·동아시아 근현대사
  • 승인 2022.01.2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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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60대 인문학자,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하세봉 지음, 산지니, 264쪽, 2021.11)

 

나는 최근 출간된 저서의 제목에 “60대 인문학자”로 달고,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라는 질문을 붙였다. 역사학계 그 가운데서도 중국근현대 연구를 주된 활동무대로 한 내가 문학이나 철학의 학계에 대하여는 접촉하거나 아는 바가 적고, 60대 인문학자의 대표도 아니니 “우리”라는 단어가 적실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책 내용의 주요 부분은 60대인 내가 관여한 학회, 공동연구를 다루었기 때문에 “우리”라고 지칭해도 무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또한 내 글의 초점은 진보의 흐름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라고 묶기는 어려운 측면도 있다. 386세대보다 60대 학자들은 전통적인 학문관을 고수하거나 진보의 흐름에 반기를 든 학자들이 다수이다.    

현재 60대라면 70년대 학번 세대이다. 60대들은 한국에서 대학이 팽창하던 1980년대 중후반 이후에 교수로 부임하여 30년 전후의 세월 동안 이후의 386세대들과 함께 한국 인문학계의 중심축을 이루었다. 최근 60대들은 줄줄이 정년퇴임을 하고 있고 이 빈자리의 일부는 젊은 세대가 채우면서 한국학계는 앞으로 10년 이내에 세대가 대폭 물갈이될 것임은 다들 잘 알고 있다. 물갈이로 학계를 새로 채울 세대들은 60대와 386세대(이하 우리 세대로 통칭한다)가 키워낸 제자들이고, 제자들은 선배세대들의 학문을 한편으로 계승하면서 한편으로 새로운 길로 걸어가게 될 것이다. 새로운 길은 우리 세대들의 상상이 미치기는 어려울 듯하다. 우리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디지털 혁명, 기후위기와 팬더믹은 문명사적 전환이라고 할 정도로 20세기와 결별하는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세대들의 공부는 20세기의 근대학문에 머물러있다면, 우리 세대들의 공부를 스스로 자평해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 작업에서 우선 필요한 것은 우리 세대들이 수행한 공부의 내용에 대한 점검이다. 그러나 내 저서는 공부의 내용이 아니라 공부의 현장에 대한 점검이다. 공부의 내용은 학문분야 혹은 주제 별로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나는 내용 이상으로 현장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나는 오랫동안 학계의 아웃사이더로 살다가 쉰 살이 넘은 나이에 제도권 학계의 정규직 교수로 자리 잡았다. 아웃사이더였기 때문에 일찍 인사이더가 된 학자보다 그 현장이 더 절감되었고, 이 책의 내용은 그 절감의 서술이다. 

학회는 유사한 소재나 방법론 혹은 관심사를 같이 하는 학인들이 서로의 연구결과를 공유하고 정보를 나누기 위한 자발적인 모임으로 출발했다. 90년대 무렵까지만 해도 학회는 사회적인 이슈를 제기하고 공론을 형성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말하고 싶은 것, 말해야 할 것을 말하기 위해 자기 호주머니에서 회비를 내고 한 자리에 모였던 까닭이다. 1980년대 이후 학회 운영을 끌고 간 주축 세대가 우리들이다. 우리 세대는 기존 학회의 틀을 넘어서 주제별로 소재별로 다양한 학회 혹은 연구소를 설립하여 학문의 외연을 넓혀왔다. 다만 설립 초기의 의욕은 세월과 더불어 시들어가고, 한편 ‘인문학의 위기’가 회자된 이후 국가의 인문학 지원이 대대적으로 진행되었다. 지원은 간섭을 불러왔고, 학회나 연구소의 유지ㆍ지속 자체가 목적이 되면서 학진(舊 한국학술진흥원, 現 한국연구재단)시스템을 내재화한 결과가 자율성의 상실로 나타났다. 인문학이 국가의 지원에 의존하는 한, 학진시스템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학진시스템의 개조에 발 벗고 나서 개입해야 할 터이나, 그런 목소리는 소수에 그치고 잠잠하다. 학문의 현장이 끊임없이 문제화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90년대 이후 학회는 국가의 지원과 동시에 간섭과 통제를 받으면서 학회의 자율성ㆍ자발성이 희석되고 투고된 논문을 발간하는 것이 주된 기능이 되어 있다. 내 책에서는 지방학회를 사례로 거론했지만, 전국학회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시대의 상황이 변하여 사회가 학회에 이슈 제기의 역할을 요구하지 않게 되었다면, 학회는 우리끼리 노는 “지적 유희의 장”으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는 건 아닐까? 학인들의 지적인 놀이 공간으로서도 학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고 나는 진단했다. 학회지의 출간은 자율성이 휘발된 현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책에 수록하지 않은 글에서는 나는 온라인 논문투고 심사시스템(JAMS)을 통한 투고 심사가 진행되면서 학회지 편집위원회는 이름뿐인 존재가 되었음을 지적한 바가 있다. 학문후속세대가 줄고 따라서 투고논문도 줄어들어 정기적인 학회지 발간이 어려워짐에도, 1년 4회 발간일 때 학회지 평가 점수를 충족할 수 있는 족쇄에 걸려, 발간횟수 축소나 나아가 유사 학회의 통폐합에 나서지도 않았다. 학회의 자율성 회복은 우리 세대가 해결하고 퇴직해야 할 숙제이다. 

2006년 5월 전국역사학대회에서 한국사학사학회 주최로 ‘우리시대의 역사가를 말한다’가 열렸다. 해방 이후 1세대 역사학자들의 사학사적 위치를 모색하는 자리였다. 1세대의 대표적인 역사학자 이기백, 김용섭, 민석홍, 민두기 4인의 학문에 대하여 우리 세대들이 비평에 나선 것이다. 당시 비평자들은 쉰 전후의 나이였고 비평대상인 1세대학자는 70~80의 연배로 작고했거나 생존하고 있던 거목의 학자들이었다. 이 시간적 간격을 대입하자면 10년 전후의 후일에, 비평자들은 후세대 학자들에게 비평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적은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 마흔 전후의 학자들은 층이 엷고 반면에 우리 세대 학자 층은 두텁고 연구 성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도 문명사적 전환이 진행되고 있는 최근 이후 연구의 환경과 조건의 변화는 가속되어 비평해야 할 필요를 후세대 학자들은 갖기 어려울지 모른다. 후세대 학자들은 우리 세대들로부터 전수받은 학풍의 관성과 이탈의 십자로 위에서 혼미를 거듭하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이탈의 벡터가 더 크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름 이 책에서 우리 세대의 학풍으로부터 이탈을 실험해 보기로 했다. 그것은 공적인 담화와 사적인 생활을 책 한 권에 함께 담는 일이다. 학술지의 논문은 사회나 학계에 던지는 공적인 담화이다. 학인들은 사회를 향한 공적인 담론을 발화할 뿐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 사회는 전문가로서 학인의 담화가 필요한 것이지 당연한 일로 그들의 사생활까지 경청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근래 ‘내로남불’이라든지 ‘진보의 위선’이 자주 지적된다. 문화예술계의 뛰어난 명사들이 미투 운동으로 추락한 것은 작품과 사생활이 괴리된 탓이기도 하다. 작품세계가 사생활과 무관할 수가 없다면, 학인의 담화에도 사회적 요소와 개인적 계기가 작동할 것이다. LP레코드는 A면과 B면이 동시에 돌아가지만, 사람들은 A면의 노래만 듣는다. 우리는 세상에 내놓기 위해 글을 쓰지만, 글쓰기 위해서는 매일 밥을 먹어야 하고 똥 싸야 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의도로 출판사에 보낸 당초의 원고는 1, 2부에 더하여 3부도 설정하고, 지적 편력에 더하여 연구년의 연구기행과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수필을 배치했다. 사생활은 소멸위기 자치구인 부산 영도에서 치매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내용이었다. 3부의 수필은 인문학자가 아닌 일반 독자들도 학인의 사생활에 대한 엿보기 심리를 자극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팔리는 책이 되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출판사에 피력했다. 학계 내부 비평에 교양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호주머니를 열 가능성은 거의 없는 탓이다. 그러나 출판사의 강력한 부정으로 “붙이는 글: 도대체 내 공부는 무엇이었던가 - 40년 연구생활을 접으며”만 남겼다. 자기생각에만 매몰되어 출판시장에 대하여 무지한 착각이었지 싶다. 그러나 저서란 공적인 담화와 사적인 생활 서술이 엄격하게 분리되어야 하는 지식상품이라는 사고방식이 출판시장에서 앞으로도 변함없이 통하는 정답이 될지는 모르겠다.   


하세봉 한국해양대학교·동아시아 근현대사

부산대학교 사학과 학부, 석사를 거쳐 「1910-30년대 上海3대기업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해양대학교 글로벌해양인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연구원과 대만 중앙연구원 대만사연구소·중산 대학 아태연구소·푸단대학 역사지리연구소 방문학자를 역임했다. 저서로 『동아시아 역사학의 생산과 유통』, 『역사지식의 시각적 조형: 동아시아 박물관의 역사와 전시』, 공저로 『인류에게 왜 박물관이 필요했을까』(2013), 『근대동아시아의 공간 재편과 사회변천』, 『東亞漢文化圈與中國關係』(2005), 『海洋, 港口城市, 復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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