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대선과 미셸 우엘벡의 『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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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대선과 미셸 우엘벡의 『복종』
  •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
  • 승인 2022.01.23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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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소설가 미셸 우엘벡의 『복종』은 2022년 프랑스 대선에 대한 암울한 예측 혹은 허구적 상상력으로 프랑스를 넘어 유럽을 경악시킨 바 있다. 극우파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전선이 상당한 득표율 차이로 1위를 차지하고 그 뒤로 이슬람박애당의 후보 모하메드 벤 아베스가 박빙의 차이로 사회당을 누르고 2위에 오른다. 소수파로 전락한 우파와 선전했지만 결선에 오르지 못한 좌파는 원하지 않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이제는 더 이상 프랑스의 수치 정도는 아니지만 극우파 국민전선 정권의 수립을 지켜볼 것인가 아니면 이념보다는 종교적 차이가 큰 이슬람박애당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결정해야 한다. 결국 국민전선 지지자를 제외한 모든 진영에서는 눈물을 머금고 벤 아베스를 프랑스의 지도자로 받아들인다. 친이슬람 정권이 탄생했다고 텔레반이 집권한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을 떠올려서는 안 된다. 우선 여성의 취업 제한으로 실업률이 감소하고 이슬람 국가들의 대규모 투자로 경제가 활성화된다. 이쯤 되면 이슬람 정권을 선택한 프랑스인들의 결정이 아주 잘못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하지만 벤 아베스가 내민 계산서에는 또 다른 요구가 있다. 교육만큼은 이슬람의 체계를 따라야 하고 일부다처제를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2년이 왔고 프랑스는 우리처럼 대선정국이다. 물론 미셸 우엘벡이 『복종』에서 말한 이슬람 정권은 탄생하지도 않았고 국민전선의 후보가 1위를 달리고 있지도 않다. 남의 나라 대선 여론조사 결과를 잠깐 들여다보면 마크롱 대통령이 상당히 앞서가고 있고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과 중도 우파 발레리 페크레스, 또 다른 극우파 에릭 제무르, 극좌파 장 뤽 멜랑숑이 근소한 차이로 우위를 다투고 있다. 사회당의 안느 이달고는 한 자릿수 지지율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아직 변수가 남아 있지만 결선 투표에서 상대가 마린 르펜이든 페크레스이든 현 대통령의 우세가 예측된다. 미테랑 이후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사회당이 소수정당으로 남을 가능성도 크다. 결과적으로 2022년 대선은 소설 『복종』의 상황과는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미셸 우엘벡 역시 실제 무슬림 정권의 탄생을 점쳤다기보다는 이슬람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2015년 풍자신문 ‘샤를리 에브도’에 가해진 테러 이후 프랑스에 확산한 반이슬람 정서와 종교적 두려움을 허구적 소설을 통해 담아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원서와 저자 미셸 우엘벡

미셸 우엘벡의 『복종』은 무슬림 정권의 탄생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혼란스러운 사회를 살아가는 프랑스 대학교수의 삶의 방식과 가족의 해체 문제도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프랑수아는 19세기 자연주의 소설가 위스망스에 대한 학위논문을 쓰고 그다지 큰 어려움 없이 파리-소르본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고 정교수로 승진한다. 그는 플레이아드 문학 총서의 책임편집자 제안을 받을 정도로 학문적인 명성을 얻지만 실은 학위취득 이후 학문적으로 계속 쇠락의 길을 걷고 있고 변변한 논문 하나 쓰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타인과의 일상대화에서는 누보로망과 참여문학, 위스망스를 주된 화제로 올리며 진지한 학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학을 다녀본 적이 없는 우엘벡이 비록 대학교수의 자문을 얻어 교수의 삶을 살피고 있지만 현실과는 괴리가 크다. 학회 이외의 장소에서는 문학 토론을 하지 않고 연구실적과 퇴직 이후에 오를 지역의료보험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교수에게는 더 현실적인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파리-소르본 대학의 교수 프랑수아의 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도 눈에 띈다. 그의 성에 대한 집착은 고독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인다. 프랑수아는 젊음이 유지될 때까지는 ‘퓨마’처럼 살다가 “육체가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쇠락하면 영원한 고독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의 해체도 그의 고독과 피폐한 삶에 한몫한다. 부모를 만난 지는 10년이 넘었고 아버지의 죽음은 그의 동거녀에게서 어머니의 경우는 시립 안치소를 통해 듣는다. 그래도 이슬람 정권 아래서 새로 출범한 파리-소르본 대학의 총장은 그에서 더 많은 연봉과 아파트, 일부다처제에 따른 결혼 알선을 제안한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엠마뉴엘 토드는 오늘날 프랑스에 만연한 이슬람포비아 내지 반이슬람 정서의 근본 원인을 이슬람교도의 증가와 종교적 갈등에서 보고 있지 않다. 그는 그 원인을 오히려 프랑스에 일반화된 무신앙과 정치의 극단화, 가족 해체 등의 내부 문제에서 찾고 있다. 다만 끊임없이 외부의 적을 찾고 있는 프랑스에서 토드의 목소리는 『복종』의 반향보다도 크지 않다. 2022년 『복종』에서 예측한 이슬람 정권의 수립은 비현실적인 것이 되었지만 지금의 대선은 프랑스와 우리의 상황 모두 이 소설 이상으로 혼란스럽다.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 문학

건양대학교 휴머니티칼리지 교수. 서울대 대학원에서 프랑스 현대문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양대 휴머니티칼리지 브리꼴레르 학부 학부장과 박범신 문학콘텐츠 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 『글쓰기란 무엇인가』, 『투르니에 소설의 사실과 신화』가 있고, 번역한 책으로 『살로메』, 『춤추는 휠체어』, 『까미유의 동물 블로그』, 『축구화를 신은 소크라테스』, 『칸트 교수의 정신없는 하루-칸트 편』, 『데카르트의 사악한 정령-데카르트 편』, 『녹색 광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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