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를 읽는 한 가지 방법: 거짓의 문제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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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를 읽는 한 가지 방법: 거짓의 문제를 중심으로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1.23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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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교양서20 제18강〉_  석영중 고려대 교수의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여덟 번째 시리즈 ‘교양서20’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파트너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교양서는 사회의 기본이 되는 인간 교육, 즉 교양 교육이나 인성 함양에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생각되는 도서다. 교양의 내용은 자기 수양의 지혜를 넘어 그리고 동양이나 서양의 문화적 전통을 넘어, 인간과 세계와 자연과 우주에 관계되는 넓은 독서를 포함한다. 전체 20회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자기 수련과 타자에 대한 공감과 사회적 필요와 삶의 배경이 되는 자연과 우주의 구성을 느낄 수 있고 알게 하는 기초적인 교양 도서 20권을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마주한 삶의 문제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주제 3. 문학 제18강 석영중 교수(고려대 노어노문학과)의 강연의 서론과 결론 부분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안나 카레니나』를 읽는 한 가지 방법: 거짓의 문제를 중심으로 

 

석영중 교수는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끝없는 그물망을 형성하며 뒤얽혀 있는 사상과 관념과 모티프와 인물을 파악하는 것이며 비평가의 역할은 독자로 하여금 톨스토이 문학의 트레이드마크인 “연결들의 끝없는 심연(labyrinth of linkages)”으로 독자를 안내하는 일”임을 전제한다. 그러할 때 러시아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작품 『안나 카레니나』는 “문자 그대로 “연결들의 심연” 위에 구축”되어 있노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인간과 관련한 모든 것이, 소설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극도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뜻인데, 톨스토이 스스로도 『안나 카레니나』라는 작품이 빚어낸 “건축학에 자부심”을 느끼며 “소설이 갖는 구조적 통일성은 단순히 행위나 인물 간의 관계를 넘어 “내적인 연속성(inner continuity)”에 의해 구현되므로 반드시 그것을” 찾아낼 것을 주장했다고 얘기한다. 다만 그 같은 “연결과 연속성을 다 설명하려면 소설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베껴 쓰는 일”이 될 수밖에 없으므로 이번에는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매듭 중의 하나”이자 그의 “문학 전체, 그의 저술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우주로 통합시켜주는 연결쇄”라 할 “거짓의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인물들과 모티프와 사상과 이미지들이 긴밀하게 엮이는 양상을 자세하게” 살피는 시도를 한다. 결국 “톨스토이가 그토록 거짓에 집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할 때 “모든 불필요한 것들이 제거된 정수로서의 삶, 허세와 치장이 지워진 본질로서의 삶, 그 핵심을 찾아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라고 답하는바, 그에 비추어보면 “『안나 카레니나』는 거짓에 관한 가장 진실된 소설”라는 결론을 내린다.

지난해 12월 4일, 석영중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교양서20>의 18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서론

소설의 단위는 소설 그 자체다. 소설은 전체로 읽어야 하며 소설의 독서는 총체적 체험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러시아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L. N. Tolstoy)의 『안나 카레니나(Anna Karenina)』처럼 긴 소설도 마찬가지다. 소설을 요약하거나 소설 속의 의미를 추려내는 것은 결코 총체적 체험에 미치지 못한다. 『안나 카레니나』의 메시지를 요약해야 한다면 처음부터 소설 전체를 다시 써야 한다는 톨스토이의 주장은 정곡을 찌른 셈이다. 결국 연구자가 소설을 분석하는 것은 총체적 체험을 도와주는, 혹은 총체적 체험으로 가는 과정 중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 작업과 관련해서 톨스토이는 상당히 분명한 지침을 제공한다. 『안나 카레니나』를 완성할 무렵 문우인 평론가 스트라호프(N. N. Strakhov)에게 쓴 편지를 읽어보자. “내가 쓴 모든 것, 내가 쓴 거의 모든 것에서 나를 인도해준 것은 내 스스로를 표현하기 위해 상호 연관된 관념들을 한데 모을 필요성이었습니다. 말로써 개별적으로 표현된 관념들은 의미를 상실합니다. 그리고 연결에서 뚝 떨어져나옴으로써 완전히 그 가치가 하락합니다.”(PSS 62: 268-269)1) 요컨대,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끝없는 그물망을 형성하며 뒤얽혀 있는 사상과 관념과 모티프와 인물을 파악하는 것이며 비평가의 역할은 독자로 하여금 톨스토이 문학의 트레이드마크인 “연결들의 끝없는 심연(labyrinth of linkages)”으로 독자를 안내하는 일이다.

 

『안나 카레니나』는 문자 그대로 “연결들의 심연” 위에 구축된다. 인물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인물과 인물이 처한 물리적 환경도 연결되어 있고 인물의 생각과 행동도 연결되어 있다.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이 연결되어 있고 자연 풍경과 마음속의 풍경이 연결되어 있고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연결되어 있다. 앞에 나온 묘사는 뒤에 나오게 될 묘사와 연결되어 있고 인물과 관련된 모든 디테일들이 연결되어 있다. 한마디로 인간과 관련한 모든 것이, 소설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극도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모든 연결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톨스토이가 자유자재로 도입하는 구성 요소들 간의 유사와 대립과 충돌, 중첩과 인접과 예시와 평행과 반사의 원칙이야말로 거대한 소설적 우주의 건축학적 토대이다. 톨스토이는 문우에게 쓴 편지에서 자신이 얼마나 『안나 카레니나』의 건축학에 자부심을 느끼는지 설명한 뒤 소설이 갖는 구조적 통일성은 단순히 행위나 인물 간의 관계를 넘어 “내적인 연속성(inner continuity)”에 의해 구현되므로 반드시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PSS 62: 377).

톨스토이의 주장에 공명이라도 하듯 그동안 수많은 연구자들이 “연결들의 심연”과 “내적 연속성”에 주목해 왔다. 사실상 연구자들이 파헤친 연결과 연속성을 다 설명하려면 소설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베껴 쓰는 일이 될 것이다. 본 강연은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매듭 중의 하나인 거짓의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인물들과 모티프와 사상과 이미지들이 긴밀하게 엮이는 양상을 자세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서 거짓은 거짓말, 기만, 자기기만, 위선, 허위, 과잉, 자기도취, 진실의 회피를 포함하는 커다란 범주이다.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자신과 타인을 속이고, 거짓을 말하고, 거짓을 느끼고, 진실을 회피하고 거짓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고뇌한다. 인물은 자신과 타인의 거짓을 인지하기도 하고 인지하지 못하기도 한다. 인물들은 때로 다른 인물의 거짓을 비춰주는 역할을 한다. 때로는 화자가 서사에 개입하여 인물의 내면에 있는 거짓의 인지 상황을 들춰내 보여주기도 한다. 그들이 거짓을 인지하는 정도와 방식에 따라 그들의 도덕적 위상과 운명이 결정된다.

본 강연은 『안나 카레니나』의 깊고 광활하고 복잡한 서사의 그물망을 탐구하면서 대문호의 메시지를 천착하고자 한다. 또 그럼으로써 톨스토이 문학을 읽는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워낙 방대한 소설이라 톨스토이의 전기와 소설의 집필 과정 및 당대 사회에 대한 고찰은 가급적 생략하거나 축소하고 텍스트 자체의 독서에 집중하고자 한다. 강연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 우선 플롯과 등장인물을 요약하고 강연의 순서를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2. 소설 요약 및 목차

1870년대 러시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고위 관리 카레닌의 아내인 안나 카레니나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편을 존경하고 아들 세료자를 사랑하는 매력적인 여성이다. 어느 날 안나는 모스크바에 사는 오빠 스티바한테서 그의 불륜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부부관계를 되돌리게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는다. 오빠를 도와주기 위해 모스크바에 온 안나는 기차역에서 우연히 브론스키라는 잘생긴 귀족 청년과 마주친다. 첫 만남에서 브론스키는 안나의 매력에 사로잡힌다. 두 사람은 이후 몇 번인가 밀회를 갖다가 마침내 ‘불륜 커플’이 되어버린다. 대놓고 불륜을 저지르는 이들에 대해 사교계는 냉혹하다. 위선으로 포장된 사교계에서 거의 파문당하다시피 한 안나는 자신의 사랑만이 진실하다는 또 다른 허위에 집착한다. 안나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남편과의 이혼을 유보하고 그러는 사이에 안나와 브론스키 사이에서 딸이 태어난다. 안나와 브론스키는 기분 전환을 위해 외국 여행도 하고 시골 영지에서 호사스러운 생활을 즐기기도 하지만 그들의 상황은 안정과 행복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간다. 사회적인 위치, 대인 관계, 아들 세료자에 대한 사랑, 이 모든 것을 버린 대신 브론스키와의 사랑에 인생을 걸었다고 생각하는 안나는 근거도 없이 브론스키를 질투하고 브론스키는 그런 안나에게 염증을 느낀다. 질투와 불안 때문에 일종의 노이로제 증상까지 보이던 안나는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한편, 스티바의 친구 레빈은 오래전부터 연모해오던 스티바의 처제 키티에게 청혼한다. 그러나 브론스키의 청혼을 기대하고 있던 키티는 레빈의 청혼을 거절한다. 레빈은 상심하여 시골 영지로 돌아간다. 키티는 무도회에서 브론스키와 안나가 춤추는 모습을 보고 브론스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안나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상심하여 중병에 걸린다. 키티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외국 온천장에 갔다가 큰 깨달음을 얻고 러시아로 돌아온다. 얼마 후 그녀는 우연히 레빈과 마주친다. 레빈은 다시 키티에게 청혼하고 이번에는 결혼에 성공한다. 두 사람은 파국을 향해 치닫는 안나-브론스키 커플과는 달리 진실한 소통에 기반한 이상적인 결혼생활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는 와중에도 레빈은 죽음의 의미를 수용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고뇌한다. 소설의 말미에서 키티는 아들을 낳고 아이의 출생을 계기로 레빈은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수없이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장편 소설이지만 결국 소설을 지탱하고 유지하는 세 개의 축은 안나-브론스키 커플과 레빈-키티 커플, 그리고 스티바-돌리 커플이다. 이 세 커플이 혈연, 연애, 결혼에서 삶과 죽음의 철학에 이르는 무수한 고리를 중심으로 얽히고설키는 가운데 위대한 도덕주의자이자 “예술의 신”(Jackson 1987: 44)인 거장의 면모가 드러난다.

 

주요 등장인물

안나: 상트페테르부르크 고위 관리 카레닌의 부인
브론스키: 안나의 불륜 상대인 젊은 귀족 청년
스티바: 안나의 오빠
돌리: 스티바의 부인
키티: 돌리의 동생, 레빈의 부인
레빈: 스티바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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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소설 요약 및 목차
3. 스티바
4. 안나
5. 브론스키
6. 키티
7. 돌리
8. 안나와 브론스키
9. 안나와 레빈
10. 레빈
11.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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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결론

톨스토이는 매우 이른 시기부터 거짓의 문제에 주목했다. 젊은 시절에 그가 흠모했던 루소 (Jean-Jacques Rousseau)가 그로 하여금 문명 속의 거짓을 비판하도록 유도했다면 그의 천재적 문학성은 인간 실존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위선을 파헤치도록 자극했다. 사실상 『유년시절』에서 『부활』에 이르는 그의 전 작품은 거짓의 테마를 다루지 않고는 논의하기 어렵다. 거짓은 그의 문학 전체, 그의 저술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우주로 통합시켜주는 연결쇄 중의 하나이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안나 카레니나』에서도 거짓은 주제와 구성의 여러 차원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면서 헨리 제임스(Henry James)가 “헐렁한 부대 자루(loose and baggy)” 같다고 폄하했던 이 장대한 소설에 든든한 건축공학적 토대와 촘촘한 짜임새를 더해준다. 거짓은 식생활, 연애, 결혼, 종교, 죽음, 예술 등 거의 모든 수준에서 사건과 인물을 연결시켜주면서 천천히, 그러나 꼼꼼하고 정확하게 플롯을 이끌어나간다. 스티바가 먹는 풀코스 요리는 불필요하고 불건강하고 순리에 어긋나는 거짓 식사다. 그의 식사는 레빈이 좋아하는 소박한 식사와 대립하고 또 나중에 안나의 집에서 제공되는 또 다른 거짓 식사를 예고한다. 안나가 읽는 영국 소설은 안나를 나쁜 상상과 쾌락에 감염시키는 거짓 예술이며 나중에 안나가 브론스키와 꾸리게 될 부도덕한 영국식 가정의 전조이자 레빈을 유혹하게 될 안나의 초상화에 대한 복선이다.

그렇다면 톨스토이가 그토록 거짓에 집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 본성에 들어 있는 거짓을 샅샅이 들춰내고 제거해서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는 아닐 것이다. 거짓은 삶의 본질을 가리고 우리가 본질에 닿으려는 시도를 방해한다. 거짓에 익숙해질 때 우리는 결코 삶의 본질을 향유할 수 없다. 유한한 삶 속에서, 제한된 지상에서의 시간 속에서, 인간이 죽음에 저항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본질을 찾아내는 일이다. 톨스토이는 모든 불필요한 것들이 제거된 정수로서의 삶, 허세와 치장이 지워진 본질로서의 삶, 그 핵심을 찾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만년의 톨스토이는 이 본질의 개념을 신적 본원의 개념으로 구체화한다. “나와 세계에는 육체적인 것 이외에 육체에 생명을 주고, 육체와 밀접하게 이어져 있는 육체적이지 않은 어떤 것이 있음을 우리는 안다. 육체와 이어진 육체적이지 않은 이 ‘어떤 것’을 우리는 영혼이라 말한다. 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생명을 주고, 어떤 것과도 이어져 있지 않으면서 육체적이지 않은 것을 우리는 신이라 부른다.”(톨스토이 2017: 120) 요컨대 인간 내면에는 “신적인 본원”이 깃들어 있다는 얘기인데 톨스토이가 말하는 ‘신’은 특정 종교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개념이다. 그것은 사랑으로 구현되어 궁극의 선에 이르는 “근원적인 영혼”이다(톨스토이 2017: 147-179). 톨스토이는 『인생의 길』에서 거짓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허위는 우리들 자신과 모든 사람들의 내부에 있는 신을 우리의 눈에서 가리고 덮는다.”(톨스토이 2017: 395-396) 톨스토이가 죽음에 관해서 끈질기게 사색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죽음에 관해 생각한 것이 아니라 삶을 제대로 사는 법, 그 본질적인 방식을 찾아내기 위해 죽음을 하나의 준거 틀로 사유 속에 들여온 것이다.

본질의 관점에서 보자면 톨스토이가 소설 속에서 구축하는 연결들의 심연은 소설가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 여겨진다. 그는 모든 것을 다 연결해보고, 다 비교해보고, 다 종합해본 후에야 본질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가 후기로 갈수록 소설보다는 단순한 우화에, 장편보다는 단편에 더 많은 공을 들인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본질에 대한 탐구의 지난한 여정 속에서 어느 순간 그에게는 더 확실한 길이 보였을 것이다. 만년의 그가 좋은 예술을 “간결하고 단순하고 명확한 예술”(PSS 30: 165, 184)로 규정한 것은 연결의 심연이 부재하는 단순하고 평면적인 글을 써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연결의 망을 촘촘하게 압축하여 핵심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작품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톨스토이는 문학성이 떨어졌다는 지적을 받은 후기에도 모든 복잡한 연결들을 응축시킨 간결하지만 심오한 작품들을 끊임없이 발표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주인과 하인」, 「하지 무라트」가 대표적인 예다.

 

오늘 우리는 『안나 카레니나』에 들어 있는 무수한 연결들의 심연을 일부 탐색해보았다. 이 모든 연결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또 하나의 연결은 톨스토이의 예술과 톨스토이의 도덕 간의 연결이 아닐까 싶다. 실바조리스(R. Silbajoris)의 지적처럼 “톨스토이가 가지는 예술의 힘은 도덕의 차원에서 그의 소설들이 이룩한 업적으로부터 부상한다.”(Silbajoris 1991: 9) 『안나 카레니나』에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도덕과 철학과 지혜와 설교(!)가 담겨 있다. 그것은 허위를 고발하는 교훈소설로 읽힐 여지마저 갖는다. 그러나 “톨스토이의 철학은 이야기 속에 들어 있을 때에 비로소 의의가 있다. 그렇다고 이야기 속에 들어 있는 철학을 집어내는 것이 독자의 일은 아니다.”(Pickford 2016: 297)

1877년 1월 25/26일에 그가 스트라호프에게 보낸 편지는 우리가 소설가로서의 톨스토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아주 사소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인생의 모든 것에서, 특히 예술에서 요구되는 딱 한 가지는 거짓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삶에서 거짓말은 추잡한 것이지만 삶 자체를 파괴하지는 않습니다. 거짓말은 삶을 추잡함으로 덧칠합니다. 그러나 삶의 진실은 그래도 그 밑에 여전히 존재합니다. 왜냐면 누군가는 언제나 무언가를 원하기 때문이죠. 무언가는 언제나 고통이나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죠. 그러나 예술에서 거짓은 현상들 간의 연결 전체를 파괴합니다. 그래서 모든 게 무너져 먼지처럼 사라집니다.”(PSS 62: 308)

톨스토이는 삶의 거짓에 관해, 거짓으로 엉망이 된 삶에 관해, 그리고 그 엉망이 된 표층 밑에 있는 진실에 관해 가장 정직하고 가장 성실하게, 단 한마디의 거짓도 없이 쓰려고 노력했다. 『안나 카레니나』는 거짓에 관한 가장 진실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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