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그 이상의 시인’, ‘작품 그 이상의 작품’을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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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그 이상의 시인’, ‘작품 그 이상의 작품’을 마주하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1.17 0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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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현대시: 그 문학사적 맥락을 찾아서 | 염무웅 지음 | 사무사책방 | 512쪽

 

이 책은 한국 현대문학의 최전선에 서서 문학의 역사적 윤리적 지평을 넓힌 평론가 염무웅이 자신이 쓴 모든 글 가운데 스스로 엄선하고 보태어 한 권으로 묶은 ‘한국 현대시의 문학사’ 결정본으로 시대를 대표하고 상징했던 시인과 그들의 시세계를 총체적이고 입체적으로 펼쳐낸다. 우리 현대문학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남다른 통찰력으로, 민중 민족문학론을 위시한 우리 문단의 주요한 문학담론을 기획하고 실천해온 저자는 단순한 이론 생산자가 아니라 현장의 비평가로서 현대 ‘한국문학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친 군사독재 시절 한국문학의 가장 전위적인 화두가 된 것은 ‘민족’과 ‘민중’이다. 염무웅은 《창작과 비평》의 편집 동인에 합류한 뒤 백낙청과 더불어 민족문학과 민중문학 진영을 이끈 대표적 평론가 중 하나다. 문학을 평가하는 그의 일관된 잣대는 “민중적 현실과 민중적 실천에 대한 참여의 정도”다. 따라서 그가 지향하는 문학은 ‘민족ㆍ민중사관’에 바탕을 둔 문학이다. 그것은 민중에게 계몽적 · 해방적 작용을 하는 문학이다. 한편 그는 월북 문인들의 작품 발굴에도 힘쓰며 민족문학론의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데 이바지한다. 그는 ‘위대한 작가’란 어떤 시대이건 제 양심의 실체를 제가 속한 공동체의 운명 속에서 발견하는 사람이며, ‘위대한 작품’이란 일상 생활에 길든 범인들에게 계몽적 · 해방적 작용을 하는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염무웅은 현대시의 탄생과 성장에 관심을 가져왔지만 체계적인 공부에 몰두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시론이나 시인론을 쓸 때마다 자신이 다루는 대상이 우리 현대시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지를 의식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실천적 양심의 시문학사’로 시인의 구체적 삶과 또 내면의 삼투과정이 어떻게 한 편의 시로 구현되는가를 보여주는 ‘증언의 시문학사’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 현대시의 중요한 맥락에서 선별한 시인을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간다. 엄혹했던 식민지 시기를 보냈던 이상화, 김동환, 김소월, 정지용, 임화, 윤동주를 비롯해 젊은 날 우상이었던 김수영을 비롯해 자신이 교류하기도 했던 신동문, 천상병, 신경림, 고은 등 한국 현대시의 역사에서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시인의 시와 삶, 시세계를 총체적으로 그려낸다.

염무웅이 그려내는 시인의 삶과 시세계에는 그가 한국문학에 얼마나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지 깊게 투영된다. 그에게 시인들은 시대를 견디고, 또 시대를 맞서고, 시대를 세우고, 그러다가 좌절하기도 하는 역사 속에서 분투하는 시대의 영혼들이다.

염무웅은 그 스스로가 한국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대표적 평론가다. 누구보다 한국문학을 사랑했고 이 땅의 현실에 뿌리를 내린 민족ㆍ민중문학의 역사적 실천에 한 평생을 앞장서 분투했던 노 평론가의 시론(詩論)을 통해 우리는 ‘시인 그 이상의 시인’, ‘작품 그 이상의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

“나의 편견이기를 바라지만, 오늘날 대다수 한국인은 ‘시 없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한다. 적어도 일상의 생활 속에서 ‘시적’ 감성을 간직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이 땅의 현실은 너무도 각박하고 참담한 것이 사실일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 시인으로 불리는 사람은 1만 명이 훨씬 넘는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은 여전히 시가 살아 있는 문학 장르로 여겨지고 있고 시집이 팔리고 있으며 상당수의 시인 지망생이 존재하는 예외적 국가라고 한다. 대체 이 역설적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 염무웅 비평의 특징은 무엇인가?

한국 현대문학을 바라보는 대형 비평가 염무웅의 문제의식은 다음 다섯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김수이, 권말 해설 「문학이라는 생명체의 비밀을 탐구하다」 참조)

첫째, 염무웅의 문제의식은 위대한 문학과 위대한 삶의 긴밀한 관계다. 위대한 삶이 위대한 문학을 자동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위대한 삶 없는 위대한 문학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둘째, 염무웅의 비평의식은 인간의 윤리와 문학의 윤리, 문학의 미학 사이의 삼자적 관계에 대한 집요한 질문이다. “왜 어떤 작가의 작품은 현실문제를 치열하게 다루는데도 미학적으로 빈곤한 성과를 노출시키는지, 현실에 대한 실천적 문제의식과 작품의 미학적 완성도가 만나는 지점 또는 그 모순적 관계를 해명하는 것. 이것이 나의 관심사입니다.”

셋째, 염무웅의 비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평가의 자의식을 포함하면서 그것을 뛰어넘는 비평가의 윤리적 태도다. 그 윤리는 역사와 현실 앞에서 비평가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는 윤리다. 염무웅의 경우 그 척도는 4?19혁명이다.

넷째, 문학평론가, 외국문학 번역가, 출판 편집자, 대학 교수 등 다양한 직업을 함께 지속해온 염무웅의 비평은 문학 전문가의 비좁은 제도적 비평을 넘어 비평의 ‘다른/새로운’ 독법을 발견하는 ‘경험적 비평’을 지향한다. 그것은 역사 앞에 선 작가의 윤리적 선택과 일상적 삶이 녹아든 ‘삶의 비평’으로 나타난다.

다섯째, 오랜 세월 출판사에서 편집자와 기획자로 일하며 그가 현장에서 추구한 민족문학과 민중문학의 진보적 열정은 ‘비평가의 윤리’를 자극하고 재점검하는 모티브로 끊임없이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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