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영과 위기의 기로에 섰던 고려중기의 정치를 소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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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과 위기의 기로에 섰던 고려중기의 정치를 소환하다
  • 채웅석 가톨릭대학교·한국중세사
  • 승인 2022.01.16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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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고려중기 정치사의 재조명』 (채웅석 지음, 일조각, 456쪽, 2021.11)

 

과거의 역사는 현재를 비춰보는 거울이며, 현재는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는 시점이다. 경제적, 문화적 번영에도 불구하고 정치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는 말을 듣는 현재, 번영과 위기의 갈림길에서 올바른 정치적 실천이 절실했던 고려중기의 역사가 오버랩된다. 

고려사회는 11세기 중반에 전성기를 맞아 번영을 누렸다. 그렇지만 이면적으로는 점차 중앙지배층이 문벌화하고 농장과 고리대가 발달해 사회 갈등이 커졌다. 국제정세도 여진이 흥기하여 금을 세우면서 격변을 겪었다. 그러자 왕조를 부흥시키려면 천도가 필요하다거나 사회제도와 습속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국운이 쇠퇴한다는 위기의식이 고조되어 공리주의적 신법개혁론, 교화와 민생 안정 중심의 개혁론, 종교와 도참을 이용한 혁신적 개혁론 등 다양한 개혁방안이 제시되었다.

그렇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지배층 내부의 대립이 심해져서 이자겸의 난, 묘청의 서경 반란, 무신정변 등의 변란이 줄이었다. 무신집권기에도 정변으로 정권이 빈번하게 교체되면서 개혁의 성공을 기대하기가 어려웠으며, 농민항쟁이 고조되고 몽골이 침략하여 장기간 전란에 시달렸다.

통설에서는 무신정변을 기준으로 고려시대를 전기와 후기로 나누며, 문벌귀족정치의 모순 곧 문‧무 차별 때문에 무신정변이 일어났다고 본다. 그렇지만 그렇게 보면 국왕 측근세력 사이의 권력 다툼에서 무신정변이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놓치기 쉽다. 특히 사회 변화와 정치의 상관관계를 파악하지 못하고, 무신정변 이전과 이후의 역사를 단절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이 책에서는 12세기 초부터 13세기 중반까지 사회모순이 커지고 국제정세가 변하는 가운데 정치변란과 농민항쟁이 벌어졌던 역동적 변화상을 부각시키기 위해 중기라고 시기를 구분했다. 연구에서 역점을 둔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문벌귀족과 신진관료, 문신과 무신 등 신분을 기준으로 정파의 분화를 파악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 정치이념과 정책, 리더십 등을 고려했다. 특히 사회 변화에 대응해 다양하게 제시된 개혁책 및 그와 연계하여 벌어진 정파 간의 경쟁 양상, 그 성공과 실패의 맥락에 주목했다.

둘째, 국제정세의 변화가 정치에 끼친 영향을 비중 있게 다루되, 자주와 사대, 명분과 실리라는 분석 프레임을 넘어서려고 했다. 예컨대 민족주의 시각에서 묘청파의 금국정벌론이나 무신정권의 대몽항쟁 등을 평가하는 방식과 달리 다원적 국제관계와 해동천하관의 변화, 그 변화가 정치공학적으로 정권과 연동된 측면 등에 주목했다.

셋째, 고려 사회와 문화의 특징인 다원성과 역동성을 부각시키려고 했다. 중기에 빈번하게 일어난 변란이 정치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사회의 다원성과 역동성이 커서 특정 계층이나 종교‧사상이 장기적으로 독점적 권력을 차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번영과 위기의 기로에 섰던 고려중기 정치사의 특징과 의미를 이해하고, 특히 정치에서 공공성의 구현, 역사발전 방향에 부합한 비전의 제시와 실천, 합리적이고 공정한 리더십의 중요성 등을 다시금 고민해 보면 좋겠다.         
    

채웅석 가톨릭대학교·한국중세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한국중세사를 전공하여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중세사학회와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저로는 『고려시대의 국가와 지방사회』(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고려사 형법지 역주』(신서원, 2009), 『고려의 다양한 삶의 양식과 통합 조절』(편저, 혜안, 2019), 『고려의 중앙과 지방의 네트워크』(편저, 혜안, 2019), 『고려의 국제적 개방성과 자기인식의 토대』(편저, 혜안,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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