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데믹 시대, 낙인과 차별의 메커니즘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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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데믹 시대, 낙인과 차별의 메커니즘 추적
  • 김재형 한국방송통신대학교·사회학
  • 승인 2022.01.1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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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 나의 테제]

■ 나의 책, 나의 테제_ 『질병, 낙인: 무균사회와 한센인의 강제격리』 (김재형 지음, 돌베개, 480쪽, 2021.11)

 

『질병, 낙인: 무균사회와 한센인의 강제격리』(2021)는 2005년부터 해온 한센인 관련 연구의 결과물들을 일반 독자들에게 소개하기 위하여 집필되었습니다. 저자는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의 한센인 인권 실태조사에 참여하면서 한센인 문제를 처음 접했습니다. 한센인은 우리 근현대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회적 배제의 대상이었지만 부끄럽게도 1970년대 후반생인 저자는 조사에 참여하기 전까지 이들에 대해서 제대로 들어본 적도, 만난 적도 한번 없었습니다. 조사 과정 중에 알게 된 내용은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일상적인 모욕과 폭력의 경험에서 단종과 낙태 수술의 강제, 강제격리, 학살 사건 등 우연히 걸린 질병 때문에 이들이 겪어야 했던 폭력은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게다가 낙인과 차별은 한센인뿐만 아니라 그들 가족에게도 전염되었습니다. 도대체 왜 한센인들은 오랫동안 이러한 폭력과 사회적 배제를 경험해야만 했을까요? 저자는 이러한 낙인과 차별의 메커니즘을 밝히고자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이 책은 낙인과 차별의 원인을 역사사회학적으로 추적합니다. 코로나19 시대에 발생하는 혐오, 낙인, 차별을 불확실하고 위험한 질병에 맞서 인류가 발전시켜온 진화론적 대응 수단으로 설명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개인의 생명을 존속시키고 공동체를 유지시키기 위해 불확실한 위험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여러 방법은 인류가 발전시켜 온 유산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지혜의 형태는 위험해 보이는 이들을 혐오하고 질병 매개자로 낙인찍고 추방하거나 격리하는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내면에 그리고 문화와 제도 속에 아픈 이들을 돌보고 공동체를 돌보는 공감과 연대의 의식 역시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한센병에 대한 인류의 대응 역시 사회에서 추방하고 격리하는 방식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왜 인류의 특정한 시기에 질병에 걸린 이들을 이렇게 철저히 사회에서 배제시켰냐 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한센병에 걸린 이들의 왜곡되고 비정상적인 외모가 “정상인”의 혐오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인류학자인 메리 더글라스는 구약의 레위기에서 한센병 환자가 불경스러운 것으로 묘사되고 기독교 전통에서 환자들이 공동체에서 추방되는 이유를 비정상적인 외모가 불러일으키는 혐오의 감정이 감염의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라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비합리적이고 미신적으로 보이는 차별에 감춰진 질병으로부터 개인과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합리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 있지만, 신약에서 왜 다시 그들을 치유하고 공동체로 복귀시키는지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또한 한센병을 앓았던 사람이 완치된 이후에도 왜 낙인과 차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에 관해서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 책은 낙인과 차별의 원인을 인간의 본성과 같은 생물학적 환원주의로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반대로 낙인과 차별을 역사적으로 추적하는 계보학적 조사를 통해 그것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밝히는 작업의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그 작업은 한국의 역사로부터 시작해서는 답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책은 제국주의의 영향력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던 18세기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식민지들이 정복되고 그곳에 플랜테이션 농장을 만들고 무역이나 자원의 수송을 위해 항만이나 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엄청난 수의 노예와, 노예와 다름없는 저가의 노동자들이 아프리카와 아시아로부터 세계 곳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풍토병이었던 한센병 역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고 바야흐로 한센병 펜데믹 시대가 대두되게 된 것입니다. 

한센병은 자유무역과 제국의 안정을 위해 국제적으로 통제되어야 할 시급한 공중보건학적 문제가 되었습니다. 제국주의 시대는 펜데믹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콜레라나 두창(천연두), 그리고 흑사병이 인구의 이동과 함께 전세계로 확산되었고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는 급성감염병이라는 전 지구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엄청난 자금이 의료와 공중보건에 투입되면서 의학의 발전이 눈부시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한센병과 관련한 의학지식은 북유럽의 노르웨이에서 눈부신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1873년 의사인 한센(Gerhard Armauer Hansen)이 한센병의 원인균을 발견하고 이 질병이 감염병이라는 것을 밝혀내자, 노르웨이 정부는 이 세균학적 발견에 근거해 환자들을 격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발견과 격리정책의 성과에 각국의 의사와 공중보건 관계자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이 세균설은 인종주의와 결합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인들은 한센병을 “열등한” 지역에서 “열등한” 인종에게 유행하는 “열등한” 질병이라고 인종주의적으로 인식했습니다. 이 인종주의적 인식은 세균설과 결합하면서 “열등한” 지역에서 “열등한” 인종에게 유행하는 “무서운” 질병이 백인들을 전염시킬 것이라는 인식으로 변화합니다. 그리고 위험한 유색인종의 질병을 통제하여 백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강제격리정책이 세균설이라는 과학적 근거에 힘입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유럽과 미국, 호주 등 백인들의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식민지의 한센인들이 죽을 때까지 격리당한 것입니다. 당대의 방역 조치는 의학지식에 근거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식 외부의 정치적 상황, 이념 등에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일본은 이러한 인종주의적 강제격리정책을 받아들였습니다. 한센병 유병율이 높았던 일본은 한센병을 앓는 환자들을 수치라 생각하고, 유럽과 같은 문명국이 되기 위해서는 이들을 제거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내면화된 인종주의적 강제격리정책은 1916년 소록도자혜의원의 설립과 함께 조선에 이식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의 한센병 환자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이 책의 1장의 내용입니다. 한반도에서의 강제격리정책과 한센인에 대한 낙인과 차별은 이후 인종주의, 우생학, 민족주의, 개발주의 등 당대의 주요 이념들과 상호작용하면서 독특한 형태로 변화해나갔습니다. 

강제격리정책의 형태는 변화했지만 사회의 세균에 대한 집착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한센인에 대한 낙인과 차별은 과학주의적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근대 과학의 발전으로 사회에서 위험 인자를 제거해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욕망이 점차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낙관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의학은 사회와 개인의 몸에 숨어 있는 균을 찾아 제거하여 더욱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의학은 균을 완벽히 찾을 기술도 모든 환자를 발견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환자를 찾아내 사회에서 배제하려는 시도가 강화될수록 오히려 환자를 발견하기 힘들어졌습니다. 왜냐하면 강력한 강제격리정책은 환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강화시켰고 그 결과 환자들은 자신의 질병을 숨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균에 대한 집착은 우리 사회 곳곳에 한센병이 만연해 있다는 근거 없는 두려움으로 이어집니다. 국가는 이 보이지 않는 균과 환자를 색출하려 노력했지만, 숨어 있는 환자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고, 결국 이미 국가에 등록된 환자의 주변에서 균을 색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낙인과 차별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또 치료제가 등장해 완치된 이들에게서조차 의학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완치된 이들에게 질병이 재발할 수도 있다는 극히 낮은 가능성에 근거해 그들을 죽을 때까지 통제하려 한 것입니다. 국가는 한편으로는 한센병은 나을 수 있는 질병이라며 차별하지 마라고 선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완치된 이들을 ‘음성 환자’라 부르며 치료제를 복용하도록 하고 관리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균에 대한 집착은 환자 또는 완치자 가족에게까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한편 이 책은 혐오, 낙인, 차별로 인한 고통의 역사만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강고한 낙인과 차별, 그리고 강제격리의 구조 속에서 한센인들은 때로는 생존과 치료를 위해서, 때로는 차별과 격리에 맞서고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위하여 노력했습니다. 한센인 조직은 우리나라 최초의 환자 자조단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한센인 공동체는 종교 공동체이자 경제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공동체 속에서 독특한 소수자 정체성과 문화를 발전시키도 했습니다. 이 책은 외부인은 알기 힘든 그들만의 이야기들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현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은 단순히 확진자/사망자수, 백신, 치료제, 방역, 격리와 같은 의료적 언어만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과거 여러 팬데믹을 대처하는 방식은 당대의 의학, 정치, 경제, 문화에 영향을 받지만, 반대로 팬데믹은 그러한 것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변화시키고 강화시킵니다. 예를들어 코로나19는 인종주의를 다시 한번 강화시켰습니다. 한국에서는 중국인에 대해서 전세계적으로는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확산되었습니다. 한센병의 역사 속에서 경험했듯 감염자를 질병 매개자로 낙인찍어 차별해도 되는 무엇으로 격하시키는 순간 팬데믹을 막는 것은 어려워집니다. 오히려 감염자를 우리 이웃으로 사람으로 대할 때 감염병의 확산을 막는 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범죄자를 색출하듯이 환자를 찾아내고 처벌하듯이 통제하는 것은 혐오와 낙인의 문화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WHO 등 여러 국제기구에서는 이러한 감염병 확산에 직면하여 낙인과 차별을 금지하고 소수자의 인권을 강조하는 매뉴얼들을 만들었습니다. 팬데믹과 맞선 역사 속에서 인류가 쌓은 지혜와 유산은 혐오와 낙인, 차별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 여기고 보살피며 인권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센병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교훈 중 하나입니다. 


김재형 한국방송통신대학교·사회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의료사회학, 역사사회학과 인권과 관련된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최근에는 코로나19와 관련한 여러 연구에 참여했다. 논문으로는 「식민지기 한센병 환자를 둘러싼 죽음과 생존」 등이 있으며, 공저로는 『절멸과 갱생 사이: 형제복지원의 사회학』,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등이 있고, 단독 저서로는 『질병, 낙인: 무균사회와 한센인의 강제격리』가 있다. 현재는 권위주의시기 부랑인, 장애인,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을 단속해 집단시설에 수용해온 과거사 사건을 조사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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