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삼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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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1.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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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교양서20 제17강〉_  유병례 성신여대 명예교수의 「〈당시삼백수〉」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여덟 번째 시리즈 ‘교양서20’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파트너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교양서는 사회의 기본이 되는 인간 교육, 즉 교양 교육이나 인성 함양에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생각되는 도서다. 교양의 내용은 자기 수양의 지혜를 넘어 그리고 동양이나 서양의 문화적 전통을 넘어, 인간과 세계와 자연과 우주에 관계되는 넓은 독서를 포함한다. 전체 20회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자기 수련과 타자에 대한 공감과 사회적 필요와 삶의 배경이 되는 자연과 우주의 구성을 느낄 수 있고 알게 하는 기초적인 교양 도서 20권을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마주한 삶의 문제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주제 3. 문학 제17강 유병례 명예교수(성신여대 중국어문·문화학과)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편집국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당시삼백수〉


유병례 교수가 ‘시의 나라’ 중국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시가”이자 “형식미와 내용이 균형을 이룬 서정시의 최고봉”으로 평가되는 당시(唐詩), 그 “망망한 당시의 은하 가운데서” 손수(孫洙)라는 이가 “77명의 시인과 310수의 작품을 수록한” 선집인 『당시삼백수(唐詩三百首)』를 소개한다. 그 안에는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한 사회시 가운데 온유돈후한 언어로 정치적 효용을 발휘한 시”가 가려 뽑혀 있고 충담(冲淡)과 고원(高遠), 그리고 “남아도는 뜻이 무궁한” 언외지의(言外之意)가 “잘 발현된 전원시”가 함께 있으며 이루고자 한 바를 성취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는 “회재불우(懷才不遇)의 뜻을 기탁하거나 친구와의 이별 등을 읊은 시” 중에서 “함축과 흥취가 뛰어나고 언외지의가 풍부”한 작품들이 주로 담겨 있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조금이나마 훌륭한 작품을 음미할 수 있도록 여섯 가지 주제에 따른 시 각 두 수씩, 『당시삼백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시, 끝으로 “손수가 가장 주목”한 시성(詩聖) 두보와 시선(詩仙) 이백, 시불(詩佛) 왕유의 대표작까지 찬찬히 살펴보고 있다. 물론, 시간이 많이 흘러 이제는 “『당시삼백수』에 수록된 시가 당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시”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참 감정을 모아 함축과 절제로 표현한 중국 최고의 서정의 보고”임은 부인할 수 없는 만큼 당시 감상을 통해 “현재의 삶과 자아의 확장에 필요한 다양한 이미지와 정서를 선사받기”를 바란다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27일, 유병례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교양서20>의 17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당시삼백수』 출판 배경과 선시 기준

우리는 중국을 흔히 ‘시의 나라’라고 부릅니다. 당시(唐詩)는 시의 나라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시가입니다. 형식미와 내용이 균형을 이룬 서정시의 최고봉, 그것이 바로 당시입니다. 당나라(618-907)는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대외 개방 정책을 펼쳤고, 이전 왕조의 시가 성취를 계승 발전시켜 서정의 황금 시대로 만들었습니다. 황제로부터 관리, 기생, 승려, 무명씨에 이르기까지 시인들은 열린 흉금으로 자유롭게 참된 영혼과 진실한 감정을 노래하여 시가가 공전의 번영을 이룩하였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소개할 형당퇴사(蘅塘退士) 손수(孫洙 1711-1778)의 『당시삼백수(唐詩三百首)』는 망망한 당시의 은하 가운데서 77명의 시인과 310수의 작품을 수록한 당시 선집입니다. 그보다 다소 앞선 시기를 살다 간 왕사정(王士禎 1634-1711)과 심덕잠(沈德潛 1673-1769)도 당시 선집인 『당현삼매집(唐賢三昧集)』과 『당시별재(唐詩別裁)』를 각각 편찬하였습니다. 손수는 왕사정과 심덕잠 두 선배의 심미 취향을 절충하여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한 사회시 가운데 온유돈후한 언어로 정치적 효용을 발휘한 시를 가려 뽑았고 또 충담과 고원, 언외지의가 잘 발현된 전원시를 수록하였으며, 기타 회재불우(懷才不遇)의 뜻을 기탁하거나 친구와의 이별 등을 읊은 시 가운데, 함축과 흥취가 뛰어나고 언외지의가 풍부한 작품을 주로 수록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두보의 삼리, 삼별, 백거이, 원진, 피일휴 등 노골적으로 사회를 비판한 풍자시는 한 수도 수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 『당시삼백수』에 수록된 작품 가운데 성당시(盛唐詩)가 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도 손수가 성당시를 흥취가 뛰어나고 말은 다 하였으나 남아도는 뜻이 무궁한 언외지의가 풍부한 시로 간주하였기 때문입니다.

 

2. 왜 300여 수만 가려 뽑았는가? 

손수는 5만 수 가까이 되는 당시 중에서 왜 300여 수만 가려 뽑았을까요? 주지하다시피 『시경』은 중국 최초의 시가 모음집입니다. 현존하는 『시경』에 수록된 시는 총 311편이며, 그중 여섯 작품은 단지 시 제목만 전해집니다. 공자 생존 당시 『시경』은 단지 ‘시삼백’, 혹은 ‘시’로만 지칭되었고 시경이라는 명칭은 한나라 때부터 사용되었습니다. 손수가 5만 수 가까이 되는 당시 가운데서 300여 편만 가려 뽑은 것은 『시경』의 정신을 잇는다는 자부심의 발현으로 이 시집이 바로 중국 시가의 맥과 전통을 계승한 점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렇다면 손수가 선집한 당시는 구체적으로 300 몇 편인가. 손수의 『당시삼백수』는 발간된 후 원본은 사라지고 주석본과 함께 전해졌는데 각 주석본마다 편 수가 다릅니다. 주석서마다 편 수에 차이가 있는 것은 동일한 제목으로 같은 주제를 연이어 지은 연작시를 모두 수록하였는지 일부만 수록하였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3. 『당시삼백수』에 수록된 작가의 신분과 작품의 체재

『당시삼백수』에는 총 77명의 작가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성명 불상자 2명을 제외한 75명은 모두 당나라의 관리이거나 관리가 되고자 하였던 사람입니다. 77명 가운데 작품이 단 한 수만 수록된 시인이 38명입니다. 우리한테 잘 알려진 시인이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은 시인도 많습니다. 지명도가 있든 없든 대부분 과거에 합격한 사람으로 크고 작은 벼슬을 하였습니다. 

『당시삼백수』에는 당시의 전모를 알 수 있도록 각 체재별로 대표작을 가려 뽑아 수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당시삼백수』에 수록된 시의 체재는 아래와 같습니다.

                   5언     7언
고시(古詩)    35수    28수
율시(律詩)    80수    54수
절구(絶句)    29수    51수
악부(樂府)    18수    25수

고시는 형식이 율시나 절구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운 시입니다. 특히 구절 수에 제한이 없습니다. 물론 압운은 해야 합니다. 한 구절이 오언으로 이루어진 고시는 오언고시, 칠언으로 이루어진 고시는 칠언고시입니다. 서정, 서경, 의론 등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기에 격렬한 감정과 사연을 시로 나타내고자 할 때 고시를 즐겨 씁니다.

율시와 절구는 평측, 구절 수, 글자 수, 대구 등 정형화된 형식을 요구하는 시인데 당나라 때 생긴 시형이므로 금체시(今體詩) 혹은 근체시(近體詩)라고도 합니다.

악부(樂府)는 한나라 때 음악을 관장하는 악부라는 기관에서 채집한 시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후 악부시를 모방하여 지은 후대 작가들의 작품도 악부시라 칭합니다. 구절 수, 글자 수 등 형식이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음악성이 강조되는 시이기도 합니다.

 

4. 『당시삼백수』에 수록된 시의 내용

『당시삼백수』에 수록된 작가 대부분이 관리가 되기를 추구하는 사람이거나 관리입니다. 과거 시험의 핵심인 진사과는 시 창작 능력이 아주 중요하였습니다. 시는 외물에 대한 주체의 반응이므로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내용이 결정됩니다. 주체가 관리 혹은 관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인 경우, 주로 관리 생활을 둘러싼 애환이 시 내용의 중심을 이룹니다. 관리의 가장 큰 포부는 황제의 측근으로 활약하면서 자신의 야망과 포부를 이루어보고 싶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를 이루지 못할 때 이른바 회재불우의 탄식을 노래하거나, 은둔과 은일에 대해 노래합니다. 회재불우의 탄식을 노래하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불우한 옛사람들을 소환하여 자신의 불우를 기탁하는 방법을 쓰기도 하고, 또 궁녀의 한과 원망을 부각하여 한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당시삼백수』에 옛사람 혹은 관련 유적을 소환한 소위 영회고적시(詠懷古蹟詩)와 궁녀의 한을 읊은 궁원시가 많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관리는 국가의 안위에 늘 우환 의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식이 시적 형상화를 통해 나타난 것이 바로 영사시입니다. 영사시는 역사적 인물이나 역사 사건에 대해 서술하고 평가하고 개탄하면서 국가의 흥망이나 개인의 회포를 기탁하는 시입니다. 또 관리는 이리저리 임지를 옮겨 다니거나 정치적 좌절로 인해 좌천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따라서 이별을 노래한 송별시가 시의 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편 당나라 때는 안록산의 난과 변방 이민족과의 전쟁이 빈번하였으므로 전쟁을 소재로 한 시도 많이 창작되었습니다. 특히 변방 이민족과의 싸움에서 전몰한 병정들의 죽음을 통해 반전사상을 드러내기도 하고 전란으로 인한 백성들의 피폐한 삶을 노래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한 시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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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손수가 가장 주목했던 시인 - 두보, 이백, 왕유

『당시삼백수』에는 두보의 시가 39수로 가장 많이 수록되었고 다음으로 이백 34수, 왕유 29수의 순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청나라 초 시단(詩壇)의 두 거장 왕사정과 심덕잠의 시론의 긍정적인 면을 수용한 결과입니다.

손수는 심덕잠 시론의 영향을 받아 시교의 중요성도 인정하였고 왕사정의 시론의 영향을 받아 신운과 언외지의도 중시하였습니다. 시가의 사회적 역할을 중시하여 두보의 작품을 이백보다 더 많이 수록하였습니다만 두보 작품 중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사회를 비판한 시는 빼버리고 은미하게 에둘러 비판한 시를 수록하였습니다. 안록산의 난으로 인한 백성들의 고통과 빈부의 양극화 현상을 직설적으로 묘사한 “주문주육취(朱門酒肉臭),로유동사골(路有凍死骨)” 즉 ‘부잣집엔 고기와 술이 썩는데 길에는 얼어 죽은 뼈가 뒹구네’와 같은 시구가 나오는 시는 수록하지 않고 대신 에둘러 당시의 백성들의 고통을 묘사한 「춘망(春望)」을 수록하였습니다. 진실한 감정을 산수자연에 녹여 언외지의(言外之義)가 풍부한 산수전원시도 중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산수전원시파에 속하는 왕유 시를 29수, 맹호연을 15수, 위응물의 작품을 12수, 유종원 5수를 수록하였던 것입니다.

우선 두보의 시를 소개하겠습니다.

「춘망(春望)」

國破山河在 나라는 망가져 산하만 남아 있고
城春草木深 장안성은 봄이 되어 초목 우거졌다.
感時花踐淚 시국을 서러워하니 꽃도 눈물 흘리고
恨別鳥心驚 이별을 한스러워하니 새 소리에도 놀란다.
烽火連三月 봉홧불 계속해서 석 달 동안 타오르니
家書抵萬金 고향 소식 한 통이 만금이나 나간다.
白頭搔更短 흰머리 긁어서 더욱 적어지니
渾欲不勝簪 이제는 동곳도 꽂지 못하겠구나.

이 시는 두보가 안록산의 난 때 장안에 연금되어 있을 때 지은 시입니다. 안록산 반란군이 장안까지 쳐들어오자 현종은 장안성을 버리고 서둘러 피난길에 올랐고 장안성은 금세 반란군의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첫 연은 수사가 매우 독특한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우선 첫째 구와 둘째 구의 대구가 매우 정교합니다. ‘국파(國破)’와 ‘성춘(城春)’은 상반된 뜻을 지닙니다. 망가진 나라와 생기 가득한 봄, 선명하고 강렬한 대조를 이루면서 산산조각 난 왕조의 운명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어렵게 쌓아 올린 당나라의 찬란했던 문화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려앉았습니다. 하지만 대지의 산하에는 생기 가득한 봄이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전란이 휩쓸고 간 산하가 온전하겠습니까? 산천도 초목도 전란에 불타고 말발굽에 짓밟혀 망가졌을 겁니다. 그런데 시인은 산하는 그대로라고 하였습니다. ‘파(破)’와 ‘재(在)’라는 이원 대비법을 사용하여 국가가 엉망이 된 것[國破]을 상대적으로 부각시켜 강조한 것입니다. 피눈물 나는 절규이자 한탄입니다. 산하만 남겨 있고[山河在]에 숨겨진 뜻은 자연적인 질서를 제외한 인간 질서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무너져 내린 왕조와 전란 속에서 신음하는 백성들의 풍비박산 난 삶입니다. 경치를 묘사한 듯하지만 실은 시인의 비탄을 경치에 기탁한 것입니다.

둘째 연은 반란군 말굽 아래 짓밟힌 암담한 조국, 그리고 전란에 신음하는 백성들의 고통스러운 삶에 가슴 아파하는 시인의 마음이 드러난 구절입니다. 앞의 두 시구보다 감정의 색채가 농후합니다. 어여쁜 꽃과 아름다운 새 소리는 아름다운 봄 경치의 전형입니다. 찬란한 봄볕 아래 핀 어여쁜 꽃, 맑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노래하는 새들의 노래는 보고 듣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해줍니다. 그런데 이것을 보면서 눈물이 나고 놀라는 건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암담한 조국의 현실과 고통스러운 백성의 삶이 더욱 대비되어 그런 것이지요. 시인의 슬픈 마음이 대상에게 스며든 것입니다. 이런 것을 감정이입이라고 하지요. 이 시구는 ‘시국을 서러워하니 꽃도 눈물 흘리고 이별을 한스러워하니 새도 놀란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꽃과 새를 의인화해서 표현했다는 것이죠.

셋째 연은 전쟁이 오랫동안 지속되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봉화는 당시의 정보 통신 수단입니다. 적의 공격이 있을 때 위급을 알려주는 신호이지요. 삼월(三月)은 ‘3개월 동안’ 혹은 ‘오랫동안’이라는 두 의미로 모두 해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의 제약을 받는 정형시이기에 단어와 단어 사이의 문법 관계를 명확히 나타낼 수 없거든요. 그래서 다의적인 해석이 나오는 겁니다. 어떤 해석이든 전쟁이 오래 지속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고향 소식 한 통이 만금이나 나간다’는 오랜 전쟁으로 인해 가족과의 서신 왕래가 매우 힘든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국가의 장래와 가족의 안부를 걱정하며 애태우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마지막 연에서는 시인의 초조하고 근심스러운 마음을 머리를 긁적이는 행동으로 나타냈습니다. 흰머리는 내면의 슬픔을 구상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슬픔으로 머리가 센 것이죠. 머리를 긁적이는 것은 초조한 마음을 행동으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고 가족의 생사도 알 수 없습니다. 시름으로 머리는 허옇게 세고 흰머리는 긁을수록 빠져서 동곳조차 꽂지 못합니다. 갈수록 의미가 단계적으로 심화되면서 시름 또한 깊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침울한 내면의 정서를 정제된 언어로 엄격한 율시의 형식을 통해 읊어낸 두보 최고의 걸작입니다. 이 시는 말발굽 소리, 병사들의 신음, 전장의 참혹한 광경을 묘사한 구절이 하나도 없지만 전장에서 신음하는 백성들의 비참한 모습과 전쟁으로 무너진 왕조의 불행한 역사를 언외에 기탁하였습니다. 곱씹을수록 여운이 풍부한 시입니다.

 

다음은 이백의 시입니다. 자유분방하고 호방한 기풍과 기묘한 상상, 대담한 과장, 강렬한 서정을 지닌 그의 대표작 「장진주」를 소개하겠습니다.

「장진주(將進酒)」

君不見黃河之水天上來, 奔流到海不復回.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황하의 물 하늘에서 와서 세차게 달려가 바다에 이르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君不見高堂明鏡悲白髮, 朝如青絲暮成雪.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고대광실 밝은 거울 슬픈 백발은 아침에 까만 실 같더니만 저녁 되어 눈처럼 하얘졌는 것을.
人生得意須盡歡, 莫使金樽空對月. 살면서 득의하면 반드시 즐거움을 다해야 하리니, 술단지를 홀로 달빛 아래 두지 말지어다.
天生我材必有用, 散盡還復來. 하늘이 나 같은 재주꾼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이상 반드시 쓰일 것이요, 천금은 다 쓰면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라오.
烹羊宰牛且爲樂, 會須一飮三百杯. 양 삶고 소 잡아서 즐겨보세, 한번 마셨다 하면 삼 백 잔은 마셔야 하리.

岑夫子, 丹丘生, 將進酒, 杯莫停. 잠선생 단구씨, 술 드시오, 술잔 내려놓지 말고.
與君歌一曲, 請君爲我傾耳聽. 내 그대에게 노래 한 곡 불러줄 터이니 그대 날 위해 귀 기울이고 들으시오.
鐘鼓饌玉不足貴, 但願長醉不復醒. 아름다운 음악 맛 좋은 음식 귀중하지 않소, 다만 영원히 취해서 깨어나지 않기 바랄 뿐이오.
古來聖賢皆寂寞, 惟有飮者留其名. 옛부터 성현은 모두 쓸쓸히 생을 마쳤으니, 술 마신 자만이 이름을 남겼을 뿐이오.
陳王昔時宴平樂, 斗酒十千恣歡謔. 진사왕이 그 옛날 평락관에서 연회를 베풀 때, 한 말에 만 냥 하는 술 맘껏 마시며 즐겼소.
主人何爲言少錢, 徑須沽取對君酌. 주인은 왜 돈이 없다고 말하는가? 곧장 술 받아와 그대와 대작하리니.
五花馬, 千金裘, 呼兒將出換美酒, 與爾同銷萬古愁. 값비싼 명마, 천금 가죽옷, 아이놈 시켜 맛 좋은 술과 바꿔와서, 그대와 더불어 만고의 시름 녹여보리라.

이 시는 천보 연간에 궁중에서 잠시 당 현종의 총애를 받던 이백이 양귀비와 고력사의 참언으로 궁중에서 내쫓긴 후 하남성 일대를 유랑하다가 숭산 부근에 있는 잠훈(岑勛)과 원단구(元丹丘)를 만나 음주를 하면서 지은 시입니다.

첫 두 구절은 기세가 아주 호방합니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황하의 강물 하늘로부터 와서 세차게 바다로 흘러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고대광실 밝은 거울 속 하얀 백발은 아침에는 검은 실 같던 것이 저녁 되어 눈처럼 희게 된 것을!’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 자연의 이치로 인생의 이치를 비유한 것입니다. 인간의 삶은 일회적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재방송도 녹화 방송도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두 번째 구절에서는 한 번뿐인 인생인데 너무나 짧고 유한하다는 것을 과장해서 비유했습니다. 아침에 검던 머리가 저녁에 하얗게 되었다고 하였으니까요. 역시 과장의 대가 이백답네요. 인생은 순식간에 끝나고 만다는 것을 그렇게 비유한 것입니다. 첫 두 구절의 기조는 인생의 원초적 비극을 읊은 것이지만 호탕하고 거침없는 필치와 대담한 과장으로 포장되어 호방하고 자유분방한 느낌을 받습니다. 슬픔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이백 시의 특징입니다.

 

세 번째 구절에서는 ‘득의(得意)’니 ‘진환(盡歡)’이니 하는 시어가 등장합니다. 인생은 이렇듯 유한하고 찰나적이니 득의한 순간이 있으면 즐겁게 놀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득의는 뜻을 이루었다는 의미인데 거창하게 정치적 포부를 이루었다는 의미의 득의가 아닙니다. 일상을 살면서 바라던 일, 즉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만난다든가 술을 마시고 싶었는데 술 마실 기회를 얻었다는 것 등 사소한 일상에서의 작은 성취를 의미합니다. 이백이 이 시를 지은 것은 잠훈과 원단구를 만나 술을 권하며 지은 시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의 득의는 오랫동안 만나고 싶어 했던 친구를 만남을 의미합니다. 중국 말에 ‘주봉지기천배소(酒逢知己千杯少)’가 있습니다. 친한 친구를 만나면 천 잔을 마셔도 적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술잔을 달빛 아래 그대로 두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술 한잔 들어가더니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솟구칩니다. 하늘이 나라는 인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이상 반드시 쓰일 때가 있다고 한 말이 그렇습니다. 자신에 대한 강한 자부의 표현이며, 그런 인재를 알아주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분노가 꿈틀거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구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천금은 써버리면 또다시 돌아온다.’ 대책 없이 낭만적이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듯합니다만 이 역시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분노를 낭만적으로 포장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그다음부터는 질탕한 술자리를 묘사합니다. 돈이야 없다가도 생기는 법이니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난 이 순간 원 없이 마시고 즐기자는 것입니다. 역시 이백답게 과장법을 또 동원하는군요. 술안주로 노가리 몇 개, 오징어 몇 마리, 과자 몇 봉지가 아니라 아예 양과 소를 통째로 잡고 술은 300잔은 마셔야 한다고 말입니다. 술도 있고 친구가 있는데 노래가 빠져서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노래를 부르는데 가사가 심상치 않습니다. 종고찬옥(鐘鼓饌玉)으로 비유된 부귀영화는 중요한 게 아니다, 다만 술에 취해 영원히 깨어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부귀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물론 정당하게 부귀영화를 이룬다면 싫어할 이유가 없는 거지요. 당나라 지식인이 부귀영화를 이루는 길은 오직 하나. 조정의 관리가 되어 황제의 총애를 얻고 자신의 포부를 현실에 펼쳐보든가 전쟁터에 나가 적군을 물리치고 혁혁한 공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백은 지식인으로서 죽을 때까지 그런 포부를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위 시구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데 대한 역설적인 표현 즉 아이러니입니다. 다만 영원히 취해서 깨고 싶지 않다는 표현 역시 아이러니입니다. 술 한잔 마실 겨를 없이 국가를 위해 백성을 위해 일하고 싶지만 남아도는 건 시간뿐이니 시간을 소비하는 데 술만 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의치 못한 자신의 신세를 역시 이백답게 호탕하게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현실에서 뜻을 못 이룬 게 어찌 이백 하나뿐이겠습니까, 옛날 성인과 현인들도 살아 있을 때는 별로 빛을 보지 못했고 고생스러운 삶을 살았다면서 술을 마신 자만이 이름을 후세에 남겼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진사왕 조식(曺植)이 평락관(平樂館)에서 연회를 열 때 맘껏 마시고 즐긴 고사를 읊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조식은 아버지 조조에게 총애를 받았지만 형 조비(曹丕)의 견제로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참으로 맘대로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 그로 인한 분노,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잊기 위해서라도 술을 더 마셔야겠습니다. 돈이야 다 써버리면 또 생기는 법, 주인장 돈 아끼지 말고 돈 되는 물건 다 가져다가 술과 바꿔오시오, 그 술로 만고의 슬픔을 녹여봅시다!

호탕하게 웃고 떠들고 자유분방하던 분위기가 순식간 시름으로 변합니다. 알고 보니 호방하고 자유분방한 기세로 과장된 서정을 하였지만 그 내면은 슬픔이 가득 고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거배소수수경수(擧杯消愁愁更愁)인 것입니다. 인생의 비애와 회재불우의 비애를 읊었지만 호방하고 자유분방한 기세로 과장하였기에 비탄에 잠겨 신음하는 패배자의 모습을 느낄 수 없는 시입니다.

 

이제 시불로 칭해지는 왕유의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과향적사(過香積寺)」

不知香積寺 향적사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
數里入運峰 몇 리나 들어왔네, 구름에 싸인 봉우리 따라.
古木無人徑 고목 우거진 숲엔 오솔길도 없는데
深山何處鍾 깊은 산 어디에서 종소리는 울리는가.
泉聲咽危石 샘물은 뾰족한 바위틈에서 흐느껴 울고
日色冷靑松 햇살은 푸른 소나무 차갑게 비춘다.
薄暮空潭曲 땅거미 지는 고요한 연못 구비에서
安禪制毒龍 고요히 참선하며 독룡을 제압하리.

향적사 가는 길의 정적과 청정한 광경을 청각 이미지와 시각 이미지, 정과 동의 대비를 통해 읊었습니다. 묘사한 경치는 사실상 시인의 마음속 경지를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세속적 욕망과 집착이 강한 사람일지라도 이렇듯 고요하고 깨끗한 경치를 순례하노라면 어느덧 자연 속에 몰입되어 고요하고 담담한 심경이 되지 않을까 싶군요. 마지막 연은 안선 즉 고요히 참선하며 망령되이 생기는 분별심인 독룡을 제어하겠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나와 너, 시와 비 같은 이분법적 분별심을 없애기를 권계합니다. 세속적 욕망과 집착은 모두 분별심에서 나온다고 보는 것이죠. 절을 찾아가는 도중, 시인이 목도한 맑고 고요한 경치는 이미 시인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잡념을 잠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잠재해 있을 분별심마저도 불법으로 깨끗이 뽑아버리겠다고 하는군요.

 

결어

손수의 『당시삼백수』는 건륭 29년(1764)에 편찬되었고 편찬자인 손수와 그의 부인 서란영(徐蘭英)의 의도에 맞추어 만들어졌습니다. 그후로부터 257년이 지난 지금, 『당시삼백수』에 수록된 시가 당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시라고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후 속속 편찬된 당시 관련 시집에는 『당시삼백수』에 수록되지 않은 많은 시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당시삼백수』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참 감정을 모아 함축과 절제로 표현한 중국 최고의 서정의 보고라는 점이 아닐까요. 공자는 시를 순수한 영혼의 울림, 즉 사무사(思無邪)라고 그 본질을 꿰뚫어보았습니다. 순수한 영혼의 울림을 모아놓은 『당시삼백수』를 통해 현재의 삶과 자아의 확장에 필요한 다양한 이미지와 정서를 선사받기 바랍니다. 적절한 절제의 미덕과 충일한 여백의 미학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일상에서 향유하기 어려운 진정을 음미하는 즐거움과 시공을 뛰어넘는 인간 보편의 진솔한 삶의 체취도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황폐한 마음을 인간다운 정서로 촉촉이 적시고 아름다운 선율을 감돌게 하여 정겨운 눈길로 우리의 이웃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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