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리버럴 아츠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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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리버럴 아츠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1.10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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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더를 위한 인문 교양 수업: 그리스·로마 3천 년 지혜를 한 권으로 만난다 | 나카무라 소이치 지음 | 윤은혜 옮김 | 청송재 | 340쪽

 

미국의 지성인들은 ‘It makes sense!(이치에 맞다.)’ ‘It doesn’t make sense!(이치에 맞지 않는다.)’라는 합리적인 사고 방식이 체화(體化)되어 있다. 그들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It doesn’t make sense!)’는 생각이 들면 아무리 막무가내로 밀어붙여도 수긍하는 법이 없다. 반면 일단 납득시키는 데만 성공하면 거칠 것 없이 일이 술술 진행된다. 이런 합리적 사고방식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최근 백 수십 년간 세계 표준을 장악하는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누리게 되는 바탕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면 이러한 합리적 사고 방식은 어떻게 체화되는가? 그것은 바로 모든 학부생들이 반드시 습득해야 하는 핵심 혹은 본질(core)로 인식하는 미국 명문대학 학부교육의 근간인 리버럴 아츠(liberal arts)를 통해서다.

이 책은 바로 미국이 세계 제패국으로서의 위상을 차지하도록 하는 데 중심역할을 하고 있는 리버럴 아츠는 어떻게 체계적으로 형성되어, 그리고 리버럴 아츠를 왜 공부를 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 그리고 리버럴 아츠 교육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 미국이 모든 부문에서 왜 세계 초유의 강국일 수 밖에 없는지를 밝히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학문은 자연학, 천문학, 수사학(修辭學, rhetoric), 논리학, 수학, 기하학, 철학, 건축학, 조선(造船), 예술 분야 등 여러 방면에서 발전했다. ‘헬레니즘’이라 불리는 이와 같은 학문이 리버럴 아츠의 기원이며, 고전 학문의 재발견을 통해 시작된 거대한 변혁이 바로 ‘르네상스(문예부흥)’다.

당시의 유럽은 암흑기라 불릴 정도로 수 세기에 걸쳐 반복된 파괴와 약탈로 인해 황폐해진 상태였다. 그로부터 ‘부활’하고자 기독교의 신학 철학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헬레니즘 사상을 도입한 것이 르네상스의 진정한 의미다. 그 선구자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대학이었다. 결과적으로 유럽은 암흑기를 벗어났으며, 현재의 글로벌 세계에서도 핵심에 위치하는 가치 체계가 탄생했다. 즉 리버럴 아츠야말로 서양 대학의 출발점이자, 부활을 가져다 준 구세주였던 것이다.

그 후 대항해 시대에 접어들어 신대륙이 발견되면서 세계는 지중해 중심에서 벗어나 대서양과 태평양이 중심이 되는 시대로 접어들었고, 머지않아 미국이 세계의 리더로 두각을 드러냈다. 이때 미국에서 개발된 교양 프로그램이 바로 리버럴 아츠다. 유럽 사회가 헬레니즘의 재발견으로 암흑기를 극복하고 현재와 같은 번영을 구축했듯이, 모든 학생들에게 무기가 될 수 있는 지식을 습득하도록 하는 것이 리버럴 아츠 교육의 목적이었다.

현대를 사는 우리가 리버럴 아츠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득한 기원전에 쓰여진 고전 문헌을 펼쳐보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 답은 크게 다섯 가지를 배우기 위함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① 선인의 사고방식을 배운다 ② 교육의 가치를 배운다 ③ 자유와 자립의 정신을 배운다 ④ 철학과 윤리학을 배운다 ⑤ 르네상스의 의미를 배운다.

첫째는 선인(先人)의 사고방식을 배우고,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겹쳐 보기 위함이다. 문명은 고전 학문에서 출발했다. 각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어떻게 사고했는가? 따라서 그것을 배워 축적하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문제의식과 사고방식에도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다.

둘째는 ‘교육’이란 근본적으로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함이다. 교육이란 시력을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시선의 방향을 바꾸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가장 효과적인 ‘방향 전환의 기술’이란 무엇일까?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그 답을 역사에서 찾아왔다. 자신이 가진 지식을 활용해서 국가를 건설하고 수많은 난관을 극복한 끝에 이윽고 고대 문명을 뛰어넘어 세계의 발전을 견인해 왔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자유와 자립의 정신에 대해서 배우기 위함이다. 더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을 찾아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고,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해낸 향상심(向上心)은 특히 젊은이들이 배울 만한 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실패와 비극도 있었다. 이는 같은 인간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교훈으로 삼아 경계해야 할 점이기도 하다.

넷째는 철학과 윤리학이 무엇인지를 배우기 위함이다. 두 학문 모두 언뜻 봐서는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지만, 쉽게 말하자면 ‘더 바람직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사회를 만들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다섯째는 르네상스 이후 지식의 계보를 배우기 위함이다. 리버럴 아츠와 르네상스는 깊은 관계가 있다. ‘르네상스’란 헬레니즘을 되새겨 연구한다는 의미이고, 현대에 와서 그 이후의 문헌까지 포함해 다시 한 번 배우고자 하는 것이 ‘리버럴 아츠’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리버럴 아츠 교육의 필요성이 주목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리버럴 아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 리버럴 아츠를 넓은 의미로 보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므로 학문과 사상의 영역에 딱히 제한이 없다. 예를 들어 일반교양으로서 서양의 미술사나 사상사, 음악사 등을 배우는 것도 리버럴 아츠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리버럴 아츠 수업은 일반교양이라기보다는 바람직한 인간이 되기 위한 훈련 과정에 가깝다. 따라서 리버럴 아츠 수업을 특정한 지식을 얻기 위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물질적인 교환가치를 얻기 위해서가 아닌 한 단계 더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한 시련이자 수행인 것이다.

리버럴 아츠는 동아시아의 역사에서도 큰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시대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아득한 거리가 있는 헬레니즘이 동아시아에서까지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정의, 미덕, 행복, 사랑과 같은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관을 전제로 한 사상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았던 시대의 그리스에서는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라는 풍조가 만연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정의와 미덕은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하는 것이며, 이런 인식을 정착시키는 것을 국가 운영의 기본 원리로 삼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철학을 철학으로서만 보지 않고, 역사를 역사로서만 끝내지 않고, 더욱 유기적으로 조합하여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이자 보편적인 의문에 대해서 탐구하게 하는 것이 미국식 리버럴 아츠 교육이다. 그 목표는 전 세계 어디에서든, 또는 정치든 비즈니스든 어떤 분야에서든 사회 곳곳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간을 키워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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