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체지향 존재론을 통해 화이트헤드 철학을 새롭게 읽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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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체지향 존재론을 통해 화이트헤드 철학을 새롭게 읽어낸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1.10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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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물들의 우주: 사변적 실재론과 화이트헤드 | 스티븐 샤비로 지음 | 안호성 옮김 | 갈무리 | 400쪽

 

화이트헤드의 말처럼 우리가 “동료 피조물들의 민주주의 속에” 있음을 받아들인다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어떻게 변하게 될까? 인간중심주의를 포기하고 인간이 창조의 정점이라는 우리의 주장을 포기하는 데 동의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 책은 비상관주의적 사고에 대한 사변적 실재론의 일반적인 주장, 즉 인간 정신이 관계하고 이해하는 방식과 떨어져서 존재하는 사물 및 객체에 대한 주장을 탐구한다. 저자 스티븐 샤비로는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가 현재에 지배적인 사변적 실재론 사상을 예상했고 그에 대한 이의를 제기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한 세기 동안의 형식화와 정화를 향한 집요한 근대주의적 시도를 거쳐, 어쩌면 애초에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한 시대에 화이트헤드는 마치 우리의 뇌리에 스며들듯이 돌아온 것이다.

우리가 물려받은 여러 가정이 우리 주변에서 경험하는 실재를 기술하거나 이해하는 데 더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짐에 따라, 세계를 파악하는 새로운 방식을 전개하려는 이 최근의 사변적 실재론 사유 흐름의 노력은 방대하다. 저자에 따르면 사변적 실재론은 여러 위험을 안고 있지만, 탁월한 사변 소설 작품이 그러하듯이, 외부의 것들을 바라보는 제한적인 관점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해주며, 미학과 아름다움을 생명의 원리로서 되찾을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20세기 후반에 철학은 언어론적 전환에 기반하며 반실재론적인 경향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다양한 경험적이고 개념적인 공간에 비인간 객체가 현현한 것으로 정의될 수 있는 근대성의 한계를 의식하고 생태 위기가 급박해짐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실재론이 등장했다. 이는 거칠게 사변적 실재론과 신유물론으로 분류될 수 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듯이, 생태위기는 사회경제적, 정치적 요인들에 훨씬 더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를 단순히 ‘인간에게 있어서의 세계’로만 보면서 인간이 그 힘과 성취에 있어서 유일무이하고 전체로서의 우주에서 특별히 중요하다는 인간중심주의적 철학은 생태위기를 초래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요인들을 허용하고 그러한 요인들에 토대를 제공해왔다. 최근 등장한 다양한 형태의 실재론은 그러한 토대를 해체하거나 최소한 수정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 특히 자세하게 고찰되는 사변적 실재론이라는 젊은 철학적 조류는 퀑탱 메이야수가 “상관주의”라고 명명한 특정한 모순을 추적한다. 상관주의란 주체와의 관계를 떠나서 객체 ‘그 자체’는 파악할 수 없다는 학설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 모순으로부터 빠져나와 메이야수가 “거대한 외부”라고 부른 곳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반면, 저자는 화이트헤드가 “자연의 이분화”(의식에 나타나는 현상으로서의 자연과 그러한 의식의 원인으로서의 자연의 분열)라고 부른 것에 근대 사상이 기반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상관주의를 피하는 또 다른 대안을 찾고자 한다. 상관주의와 자연의 이분화는 아주 다른 필요와 관심에서 유래함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무관한 것이 아닌데, 우리의 경험이 두 개로 찢겨 왔기 때문에 그 두 개를 다시 붙이기 위해 상관주의 구조가 필요했다고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칸트는 실재가 그 자체로 어떤 것임을 기술하려는 독단주의를 금지하고 자연을 의식에 나타나는 것으로 제한한 결정적인 철학자였다. 그렇게 저자는 사변적 실재론이라는 프로젝트에 담긴 칸트적 배경을 주장하고 사변적 실재론이 칸트적 배경에 대해 취하는 다양한 입장을 살펴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제거주의적 사변적 실재론으로 분류할 수 있는 메이야수와 브라시에는 현상적 경험을 환원하거나 근절시키는 입장을 취한다(사변적 유물론, 과학주의). 반면, 그레이엄 하먼과 레비 브라이언트, 이언 보고스트, 티머시 모턴의 입장을 대변하는 객체지향 존재론은 실재와 알려진 것 사이의 칸트적 간극을 인간-세계 관계에만 독점되는 것이 아닌 모든 존재에 적용되는 것으로 확장하며 상관주의의 극복을 모색한다. 저자는 객체지향 존재론을 통해 화이트헤드 철학을 새롭게 읽어내면서, 동시에 화이트헤드 철학을 통해 객체지향 존재론을 비판적으로 읽어낸다.

이는 이중적인데, 저자는 자신의 입장이 제거주의적 사변적 실재론보다는 객체지향 존재론에 더 친밀함을 인정하며 객체지향 존재론을 통해 화이트헤드를 새롭게 독해하지만, 동시에 정동 과정과 파악, 느낌 등의 화이트헤드주의적 용어를 통해서 객체지향 존재론에 대한 비판을 전개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샤비로는 사변적 실재론을 비판적으로 읽어내면서 화이트헤드 철학을 또 다른 대안으로서 발전시킨다.

이 책은 서론과 일곱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에서 샤비로는 이 책을 저술하게 된 동기와 목표를 서술하고 각 장의 내용을 짧게 요약한다. 1장 「자기향유와 관심」에서는 미학과 윤리학에 대한 화이트헤드의 입장을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입장과 비교하고, 각각 존재의 고유성과 관계성을 대변하는 자기향유와 관심에 관해 고찰한다. 논의가 진행되면서 자기향유와 관심이 사실은 별개의 과정이 아님이 밝혀진다.

2장 「활화산」에서는 화이트헤드의 철학과 그레이엄 하먼의 객체지향 존재론을 비교하며, 한편으로 객체지향 존재론을 통해 화이트헤드를 새롭게 독해하고, 다른 한편으로 화이트헤드 철학을 통해 객체지향 존재론을 비판적으로 독해한다. 3장 「사물들의 우주」에서는 하먼의 하이데거 독해와 영국의 낭만주의에 관한 화이트헤드의 독해를 통해 객체와 과정, 사물과 경험을 고찰하며 사고를 위한 유혹으로 기능할 수 있는 몇 가지 명제를 제시한다.

4장 「범심론 그리고/혹은 제거주의」에서는 상관주의에 대한 칸트적 배경을 논하고, 우리가 일단 상관주의를 거부하면 우리는 노골적인 제거주의(존재는 근본적으로 사고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와 일반화된 범심론(모든 곳에 사고가 내재하여 있음을 선포하는 것) 사이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고 주장한다. 5장 「범심론의 귀결」에서는 정신성이 물질의 기본 속성이라는 테제를 개관하고, 화이트헤드 철학의 범심론적 발상을 반환원주의적 자연주의라는 형태로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6장 「비상관주의적 사고」는 현존하는 사변적 실재론자들이 사고를 설명하는 방식에 담겨 있는 여러 문제점을 고찰하며,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저자는 비지향적이고 비반성적이며, 대체로 의식적이지 않은 “자폐적인” 사고의 이미지를 제시한다. 7장 「아이스테시스」에서는 6장에서 논한 사고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인간 판단에 국한되지 않는, 특히 인간의 주체성에 중심을 두지 않는 미학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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