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시대, 전선에 선 소수자들…권력과 함께 생성되고 증식되는 성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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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시대, 전선에 선 소수자들…권력과 함께 생성되고 증식되는 성 담론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1.10 0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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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퀴어가 ‘말’해 주는 것들: 우리는 정말로 진실한 성이 필요한가? 레즈비언·퀴어·젠더·섹슈얼리티 | 백승진 지음 | 세창출판사 | 264쪽

 

퀴어는 그동안 주연이 아닌 조연, 메인이 아닌 서브로 존재했다. 성에 관한 다양한 담론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과정 속에서 소수자들은 어떤 서사를 써 왔을까? 차별과 배척의 시대를 가로질러 퀴어의 입지는 어떻게 변모해 온 걸까? 저자는 성 소수자의 영역이라 읽힐 수 있는 사회적 논의를 영미 희곡과 영화, 퀴어 이론으로 접근하여 해석하며 그간 불거진 섹슈얼리티 논쟁을 과거와 현대를 교차하며 다각도에서 논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의 냉담한 시선과 수많은 내적 갈등을 견뎌야 했던 소수자들의 서사를 생생하게 재연하면서 섹슈얼리티, 인종, 계급을 넘어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퀴어의 세계를 조명하고, 궁극적으로 젠더 이데올로기를 극복할 것을 제시한다. 그리하여 퀴어가 ‘퀴어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사회에 만연한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부수고 섹슈얼리티의 범주를 확장함으로써, 퀴어적 감각이 담긴 새로운 각본을 쓰고 있다.

미디어 속에서 퀴어는 대개 혐오의 대상, 별난 존재로 묘사되었다. 퀴어에 대한 주류 담론은 이미 오래전부터 부정적으로 굳어져 왔고, 지금도 대다수 문화권에서 레즈비언/게이 분야는 다루기 부담스러운 주제다. 물론 시대를 반영하는 영화와 극작품에서도 성 소수자는 늘 주류 사회에서 소외되고 핍박받는 배역을 맡았다. 그들의 삶은 현실에서도, 가상에서도, 늘 폭력에 시달려 왔다.

따라서 퀴어는 세상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거나 숨겨야 했다. 때로는 사회적 편견에 맞서 싸우기도 하며 나름의 생존 전략을 만들어 시대에 따라 모습을 달리해 왔다. 이것은 영화와 극작품 속 퀴어의 인물에게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극 중 장치로 이용된 젠더의 개념과 수행 방식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작품에서 게이와 퀴어가 상징화된 모습은 이들이 사회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멸시와 조소를 머금은 대사는 당시 동성애자의 사회적 입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영화와 극작품 속에서 성 소수자는 비정상인으로 취급되고 있으며, 법의 보호에서 제외되고, 사회 규범에 의해 일방적으로 희생당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서사 속 퀴어는 늘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감내해야 한다. 그들은 기존 성역할 모델의 지배적인 가치 구도, 근거가 부족한 갖은 통념, 당시의 사회상을 그대로 연기하며 스스로 낙오자가 되는 것이다.

한 개인의 성 정체성은 늘 그대로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작품 속 퀴어의 위상은 조금씩 바뀌었다. 더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소극적이지 않은 인물이 나오거나, 그간 볼 수 없던 새로운 이슈가 발생하기도 하고, 변화된 인식이 색다른 결말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리고 이는 또 다른 해석을 가능케 한다. 즉, 성이 계속해서 새로운 담론을 생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 담론의 생산 과정은 권력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 우리 현실에서 권력과 성 담론은 함께 엮이며 전파된다. 성 담론은 권력이 행사되는 지점에서 발생하며, 권력은 성 담론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여 사회를 지배한다.

저자는 그러한 맥락에서 퀴어 서사에 있어 ‘권력’을 하나의 주제어로 본다. 권력과 퀴어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고, 권력과 소수자 담론이 맞닿은 지점을 비평한다. 그리고 책 전반을 관통하는 메시지로, 성 정체성이 특정 이데올로기가 강요하는 규범에 따라 억압되어 왔음을 밝힌다.

 

또한,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그동안 퀴어가 기존 질서와 이성애 규범이 요구하는 관계를 파괴했다는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짚고, ‘퀴어’에서 확장되는 다양한 단어들을 조합하고 시야를 넓혀 나간다. 마치 버틀러에게 젠더가 “되기(becoming)”로서 그 자체가 일종의 ‘움직임’이었던 것처럼, 젠더는 고정된 개념이나 “불변의 문화적 표시”가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되는 어떤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퀴어에게 덧씌워진 모든 이미지는 정치적이다. 따라서 퀴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기존의 시각을 탈피하고 성별 이분법을 해체해야 한다. 과거의 담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물론,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논의를 전복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차이의 미학의 구성원들과 공유”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이 책은 생물학적인 성, 사회적인 젠더, 섹슈얼리티에 관한 이론을 복합적으로 전개하고 인문학적인 해석을 시도한다. 한국 사회의 일반인들에게는 아직은 낯선 용어로 인식되고 있는 ‘캠프’ 개념부터, 성 소수자 박해의 역사와 퀴어 이론, 혐오의 양상을 이야기한다. 또한, ‘게이극’과 ‘퀴어극, ‘에이즈극’, 다양한 퀴어 영화를 비교하고 분석한다. 그리하여 흑백논리와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하고 퀴어를 퀴어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함을 역설한다.

우리는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역사와 문화를 초월해 한 가지 질문을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근대 서구 사회가 ‘순리(an order of things)’를 위해 진실한 성이 필요하다는 답을 집요하게 끌어내고 있다는 푸코의 사유, “우리는 정말로 진실한 성이 필요한가?”와 같은 질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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