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한국 결혼식의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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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한국 결혼식의 변천사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1.09 2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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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학술신간]

■ 『두 가지 스타일의 한국 결혼식: 전통과 현대의 이중주』 | 주영하·양미경·조희진·김혜숙·정헌목 외 1명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 | 2021. 12 | 280쪽

 

‘전통식 결혼식’과 ‘현대식 결혼식’이 공존하는 한국의 결혼식 문화를 민속학·인류학·사회학의 시각에서 살핀 『두 가지 스타일의 한국 결혼식: 전통과 현대의 이중주』(주영하 외 지음)가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에서 발간됐다. 

대표 저자 주영하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는 “2010년대를 중심으로 한국의 결혼식 문화에 대한 현상학적 사실을 현지조사와 문헌연구의 방법을 사용하여 민속지(ethnography)로 재구성하고 그것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서 오늘날 한국의 사회적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결혼식 문화의 실상을 파악하고 그 대안을 민속학·인류학·사회학의 시선으로 도출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라고 책의 집필의도를 밝혔다. 이 책은 지난 100여 년 사이에 정착된 한국 결혼식의 변화 양상과 형식, 혼례를 둘러싼 논의 과정과 결과, 혼례 복식과 음식 등 결혼식을 구성하는 중요 지점을 구체적으로 살피고 그 의미를 분석했다.

 

 

■ 한국 결혼식과 맥도날드화 

오늘날 ‘결혼식’ 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결혼예식장에서 서양식 예복을 입은 두 사람이 주례자 앞에서 본식을 치르고 난 뒤에 온돌방에서 한복을 입고 폐백을 드리는 풍경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이 뒤섞인 묘하고 특이한 광경이다. 이러한 ‘동서양 결혼식 문화의 융합체’인 한국 결혼식은 19세기 말에 서양 선교사의 도래와 함께 서양식 혼례가 소개되어 우리나라 전통혼례와 접목된 이후 변화를 거듭한 결과이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식은 가족과 친인척, 그리고 사회의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경제적 유대망을 만드는 기제로 활용되었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경제적 수준이 향상되면서 상업주의에 압도되어 전문장소에서 의례업체에 의해 주도되는, 간편성과 효율성을 지향하는 ‘결혼식의 맥도날드화’가 이루어졌다.

 

■ 결혼식을 통제한 정부와 욕망한 국민 

한국의 결혼식 문화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국가의 역할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 조선총독부의 <의례준칙> 반포를 필두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69년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 제정, 1973년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로 개명, 1993년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 전문 개정, 1999년 ‘건전가정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 등이 이루어졌다. <의례준칙>은 혼례를 간소화하여 허례허식을 일소한다는 목적을 내세웠으며, 이러한 담론은 해방 이후 한국정부에 의해 제정·개정된 관련 법률에서 그대로 반복되었다. 다만 시대 상황에 따라 정부가 규제·강제하는 정도가 달랐을 뿐이다. 유신 무렵에 가장 강력하게 규제했으며 이후 점차 규제의 종류와 강도가 줄어들었다. 

이처럼 혼례에 대한 규제 내지 권고를 정부가 끊임없이 시도한 것은 많은 국민이 결혼식이 너무 호화롭고 사치스럽게 치러진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례를 인생의 대사(大事)로 인식하고 그를 통해서 사회적 위치를 과시하고 체면치레를 하려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심지어 공권력이 삼엄했던 유신 시기에도 국가의 눈치를 보면서 <가정의례준칙>에 맞지 않는 혼례를 치르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혼례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와 욕망이 컸다는 증거일 것이다.   

 

■ 욕망의 웨딩드레스, 형식의 한복  

혼례복식은 ‘혼례를 위해 필요하다고 여겨지거나 직접적으로 사용되는 신랑·신부의 의복과 장식 모두’를 가리킨다. 이 책에서는 ‘웨딩드레스’와 ‘한복’에 주목했다. 

웨딩드레스는 혼례의 시각적 상징물이다. 또한 혼례의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일종의 기호이기도 하다. 웨딩드레스에는 신부의 ‘자기만족’과 ‘타인의 시선 의식’이 투영되어 있다. 특히 웨딩드레스를 입고 치르는 본식은 모든 하객에게 개방되어 있고 주목의 대상이기 때문에 ‘가성비(價性比, 가격 대비 성능)’에 대한 평가에서 매우 후하다. 이에 비해 폐백에서 입는 한복의 가성비 평가는 매우 경직되어 있다. 폐백이 가족 중심의 폐쇄적 의례이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신부가 신랑 친척들에게 공식적인 인사를 드리는 자리인 폐백이 동등한 혼인 관계와 동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웨딩드레스는 자기만족과 과시의 표현물로서 ‘욕망’이 강렬하게 투영되어 있는 반면, 한복은 시댁에 대한 예우와 체면의 상징물로서 최소한으로 갖추고자 하는 ‘형식’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했다. -266쪽“

 

 

■ 혼례음식에 융합된 전통과 현대 

혼례음식은 협의로는 ‘함떡·폐백 음식·이바지 음식 등 혼인 과정에서 음식 자체로 특별한 의미나 상징을 지니며 진설·교환·선물되는 것’을 지칭하지만, 보다 넓은 의미로는 ‘혼가에서 하객에게 대접하는 잔치(피로연) 음식’까지 포함한다. 

폐백 음식은 과거 신부 어머니나 이웃, 친지가 마련하던 때보다 전문업체를 이용하면서 음식의 종류가 고급화되었으며 외관도 화려해졌다. 이바지 음식은 1980~1990년대에 성행하였으나 현재는 축소, 생략되거나 현금으로 바뀌는 추세이다. 신랑과 신부를 위한 큰상을 차리지 않으면서 이바지 음식의 의례적 의미가 약화되고, 혼인 피로연을 더 이상 집에서 치르지 않고 집에서 대접하는 규모도 줄어들어 필요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피로연 음식은 다양한 연령과 지역, 계층의 하객들이 잔치 음식에 보다 만족할 수 있도록 뷔페식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았다. 뷔페식 피로연에서는 직계가족이나 친인척조차도 같은 테이블에 모여 앉아 음식을 먹기가 어렵고, 경우에 따라서는 옆 테이블의 하객이 신부 집 손님인지, 신랑 집 손님인지, 아니면 다른 결혼식에 온 하객인지조차 알 수 없다. 따라서 현재의 피로연은 여럿이 모여 동시에 음식을 먹기는 하지만 공식(共食)을 통해 ‘우리 의식’을 고양하거나, 음식을 함께 먹고 나눔으로써 사회적 유대를 공고히 하던 전통은 계승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 결혼식의 탈정형화, 작은 결혼식

이 책은 오늘날 획일적인 혼례문화를 거부하고 ‘작은 결혼식’ 등 탈정형화된 결혼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것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혼례의 상업화 과정에서 키치화된 한국의 예식 형태를 이제는 부자연스럽고 촌스러운 것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실제로 진행되는 서구식 예식을 접해온 최근의 젊은 세대는 한국의 전문예식장에서 연출되는 요소들을 이도 저도 아닌 괴상한 혼종으로 받아들인다. (중략) 한국의 일반적인 예식 절차가 “내용이 분명치 않은 어떤 ‘가상의 문화적 원전’에 따른” 키치일 뿐이라면, 키치의 부자연스러움을 참을 수 없게 된 젊은 세대에게 이는 굳이 따라야 할 문화적 전통이 아니다. 과거 산업화 시기와 뒤이어 90년대 소위 ‘세계화’ 초창기를 거치면서 단순히 서양 스타일에 대한 모방 욕구를 바탕으로 현대 한국의 예식이 자리 잡았다면, 이제는 키치를 넘어 자신의 뜻을 반영한 결혼식을 치르고자 하는 욕망이 등장한 것이다. -253쪽“

 

■ 성스러운 의례에서 세속적 이벤트로 

아놀드 반겐넵은 성(聖)과 속(俗)의 이분법을 받아들이면서, 문명이 덜 발달한 사회일수록 성에 의한 속의 지배가 강력하게 나타나며, 성이 인간생활의 거의 모든 측면을 지배하고 있다고 했다. 과거 우리나라의 혼례는 풍부한 상징이 등장하고 종교적 요소가 매우 강했던 등, 성(聖)과 밀접히 결부되었다. 이에 비해 현대 결혼식은 성보다는 속과 주로 결부된다. 근래에 치러지는 결혼식 준비의 일반적 절차는 거의 모든 행동이 무언가를 구매하거나 구매하기 위해 결정하는 것으로, 철저히 상업화되어 있다.

혼인에 대한 사회적 규범과 기대는 점점 변화하고 있다. 성(聖)과 결부되고 풍부한 상징과 종교적 성격을 가지고 있던 혼례는 세속화되고 상품화되었으며, 이제는 성스러운 하나의 의례라기보다는 이벤트로까지 여겨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례는 여전히 한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치르는 일생의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것이 오늘 우리가 ‘결혼’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지은이> 

* 주영하. 민속학·음식문화 전공,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문화예술학부 교수. 『음식을 공부합니다』(2021), 『백년식사』(2020), 『조선의 미식가들』(2019) 등의 논저가 있다. 
* 양미경. 민속학 전공,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강사. 『종가제례음식: 충청편』(2020), 『음식구술사』(공저, 2019), 『한국인, 무엇을 먹고 살았나』(공저, 2017) 등의 논저가 있다. 
* 조희진. 사회학(사회사) 및 민속학 전공, 인천대학교 강사. 『한 권으로 읽는 화성시사』(2020), 『한국인, 어떤 옷을 입고 살았나』(공저, 2017), 『사물로 본 조선』(공저, 2015) 등의 논저가 있다. 
* 김혜숙. 민속학 전공, 책과 구술의 음식사연구소 연구위원. 『음식구술사』(공저, 2019), 『조선 지식인이 읽은 요리책』(공저, 2018), 『한국인, 어떤 집에서 살았나』(공저, 2017) 등의 논저가 있다. 
* 정헌목. 인류학 전공,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문화예술학 부교수. 『가치 있는 아파트 만들기』(2017), 『마르크 오제, 비 장소』(2016), 『백년의 변혁』(공저, 2019) 등의 논저가 있다. 
* 양영균. 인류학 전공,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문화예술학 부교수, 『한국인, 어떤 집에서 살았나』(공저, 2017), 『한국의 도시 지역공동체는 어떻게 형성되는가』(공저, 2016), Re-Orienting Cuisine(공저, 2015) 등의 논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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