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노래에 철학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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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노래에 철학이 있다고?
  • 김광식 서울대·인지문화철학
  • 승인 2022.01.09 23: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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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BTS와 철학하기: 소유에서 존재로, 넘버원에서 온리원으로, 진리에서 일상으로』 (김광식 지음, 김영사, 288쪽, 2021.11)

 

“Man muss noch Chaos in sich haben,
 um einen tanzenden Stern gebären zu können!”

BTS의 노래 <피 땀 눈물> 뮤직비디오는 이 말을 크게 비추며 마무리된다. 이 말은 니체의 말로 “춤추는 별을 낳으려면 혼돈을 지녀야 한다.”라는 뜻이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머리말에서 한 말이다. 도대체 <피 땀 눈물>이라는 노래가 이 말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 노래를 듣는 이나 이 뮤직비디오를 보는 이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문화철학자로서 매우 궁금했다. <BTS와 철학하기>는 그 궁금증을 풀어보려는 시도다.

니체에게 ‘춤추는 별을 낳는 일’은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초인이 되는 일이다. 초인은 틀에 얽매인 보통 사람을 넘어서는 사람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틀에 얽매인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사람이다. 따라서 초인이 되려면 혼돈을 지닐 수밖에 없다. 나를 넘어서는 내가 되어야 하니까. 나를 넘어서는 것은 나의 가치관을 넘어서는 것이며, 나의 가치관을 넘어서면 가치관의 혼돈에, 아노미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뒤집어 말하면 가치관의 혼돈에 빠져야 초인이 될 수 있다.

여기서 넘어서는 주체와 넘어서지는 대상이 같다. 넘어서지는 나는 부정되어 내려가고, 넘어서는 나는 긍정되어 올라간다. 그러므로 ‘나를 넘어섬’은 나를 부정하는 동시에 나를 긍정하는 것이고, 나를 내리는 동시에 나를 올리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부정해 나를 긍정하는 것이고, 나를 내려 나를 올리는 것이다. 상승을 위한 몰락이고, 창조를 위한 파괴다.

좋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BTS의 노래 <피 땀 눈물>에 있는가? 있다! BTS의 <피 땀 눈물>은 바로 “내 피 땀 눈물 내 마지막 춤을 다 가져가”도 좋을 만큼, “내 피 땀 눈물, 내 마지막 내 차가운 숨을 다 가져가”도 좋을 만큼 달콤하지만, 동시에 위험천만하기도 한, 상승을 위한 몰락, 창조를 위한 파괴라는 모험을 노래한다. BTS는 성장을 위해 방황이라는 “독이 든 성배”를 “알면서도 삼켜버린”다. “더는 도망갈 수조차 없어 [성장/방황이] 너무 달콤해 너무 달콤해 너무 달콤해서” “내 피 땀 눈물 내 마지막 춤을” “내 피 땀 눈물 내 차가운 숨을” 다 바친다.

이러한 생각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도 만날 수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라는 <데미안>의 유명한 말에 이러한 생각은 잘 나타나 있다. 아브락사스는 세상을 창조하는 존재다. 그는 세상 모든 것을 완전히 새로 만들어내야 한다. 창조하는 존재는 자유로운 존재다. 주어진 선과 악이란 틀에 갇히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수 없다. 그는 선과 악의 저편에 있다. 나만의 고유한 세상을 만드는 아브락사스가 되려면 나에게 주어진 모든 선과 악의 틀을 깨야 한다. 아브락사스는 바로 초인이 되려는 나 자신이다. 니체의 초인 철학과 매우 닮았다. 그럴 수밖에. <데미안>은 헤세가 니체의 초인 철학을 문학으로 구현한 거니까.

BTS는 이 모든 것을 알고 <피 땀 눈물>을 노래하는 것일까? 그렇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피 땀 눈물>은 앨범 <WINGS>의 타이틀 곡이다. 네이버 앨범 소개에 따르면 <WINGS>는 “난생처음 유혹과 마주해 고민하고 갈등하는 청소년들의 노래”이며 “멤버들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겨 있다. BTS는 <WINGS>를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모티브로 삼아 제작했다고 밝혔다. 앨범 제목 <WINGS>는 알을 깨고 비상하는 새의 날갯짓을 상징한다. “고통과 환희를 반복하는 일곱 소년들의 모습”은 <데미안>의 유명한 상징인 “알에서 깨어나 날아오르려는 새들의 날갯짓”을 연상하게 한다.

 

                                                                피 땀 눈물 뮤비

<피 땀 눈물>의 뮤직비디오에도 <데미안>의 세계관을 상징하는 내용이 곳곳에 담겨 있다. 선과 악의 대비를 보여주는 조각상, 타락과 추락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그림 <반란 천사의 몰락>과 <이카루스를 위한 탄식>, RM이 마시는 ‘독이 든 성배’ 같은 압생트, 뷔가 그림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으로 추락하는 장면, 진이 유혹에 빠져 검은 날개를 펼친 반란 천사에게 키스하는 장면 등 수많은 상징이 곳곳에 숨어 있다.

물론 <BTS와 철학하기>는 <데미안>을 넘어 니체의 초인 철학으로 한뼘 더 깊이 들어간다. 자기 긍정을 낳는 자기 부정과 타자 부정을 낳는 자기 부정을 구분한다. 초인을 지향하는 이는 주인의 태도로 자기를 긍정하는 마음인 자긍심을 가지고 지금의 자기를 넘어서 더 나은 자기를 창조하려 한다. 하지만 노예의 태도로 사는 이는 자기를 부정하는 마음인 열등감이나 시기심을 가지고 자기보다 더 뛰어난 다른 이를 파괴하려 한다. 자긍심을 가지고 하는 방황은 지금보다 더 나은 자기를 창조하는 건강한 성장을 낳지만 열등감이나 시기심을 가지고 하는 방황은 다른 이를 끌어내리거나 밟고 올라서는 더 못난 자기를 만드는 병든 ‘성장’, 아니 퇴화를 낳는다.

<BTS와 철학하기>는 여기서 니체의 영원회귀와 운명애 사상으로 한뼘 더 깊이 들어간다. 같은 삶이 영원히 돌고 돌더라도, 다시 말해 똑같은 삶을 한 번 더 살겠냐고 물으면, “이것이 삶이던가. 좋다, 다시 한번!”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부정하고픈 자기와 자기 삶마저 운명으로 받아들여 긍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춤추는 별’, 곧 ‘슬퍼도 기쁜’ 즐거운 초인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건강하고 즐거운 방황과 성장을 할 수 있다면 내 피 땀 눈물을 다 가져가도 좋다고 노래한다.

한국 음식을 알리는 가장 좋은 방식은 모든 종류의 한국 음식을 다 맛보게 하는 것일 테다. 그게 힘들다면 차선책은 대표적인 한국 음식 한 가지를 맛보게 하는 거다. 마찬가지로 <BTS와 철학하기>를 알리는 가장 좋은 방식은 그 책의 모든 내용을 다 이야기하는 것일 테다. 그게 힘들어 차선책으로 대표적인 내용 한 가지를 이야기했다. 다른 이야기들도 내용은 다르지만 비슷한 모양으로 펼쳐진다. 1악장에서는 핵심 열쇠 말로 노랫말을 풀이한 뒤 문학 작품이나 영화를 바탕으로 그 핵심 메시지를 살펴본다. 2악장에서는 그 생각을 어울리는 철학으로 뒷받침한다. 3악장에서는 노래와 철학의 공통된 핵심 생각을 간추리고 신화나 동화를 빌어 마무리한다.

5년 전에 낸 <김광석과 철학하기>가 고대, 근대, 현대 철학을 대표하는 12명의 철학으로 김광석의 노래 12곡을 ‘행복’이라는 주제로 해석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철학적 지혜를 찾았다면, <BTS와 철학하기>는 현대 독일, 프랑스, 영미 철학을 대표하는 12명의 철학으로 BTS의 대표 노래 12곡을 ‘자유’라는 주제로 해석하고, 각자의 모양에 맞는 자유로운 삶을 위한 철학적 지혜를 찾는다. <김광석과 철학하기>를 철학 개론이나 철학사 입문서로 읽어도 좋듯이, 이 책은 현대 철학 입문서로 삼아도 좋다. 철학을 어려워하는 이들이 어려운 현대 철학을 쉽지만 가볍지 않고 재미있지만 진지하게 즐길 수 있는 책이다. 맨 뒤에는 현대철학 지도를 그려 보여주고 짧은 해설을 덧붙여 현대철학의 전체 모습과 갈래를 들여다볼 수도 있다.

자유는 성장이다.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홀로 설 수 있는 나로 성장한다는 뜻이다. 세상의 도움은 늘 파르마콘이다. 독이 든 당근이다. 성장을 돕지만 다른 한편으로 성장을 가로막는다. 아이러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나를 떠나라! 그리고 내게 맞서라!”(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김광식 서울대·인지문화철학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공과대학 과학·기술·철학과에서 인지문화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서울대 기초교육원에서 교양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인지과학의 성과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인지철학자이자, 여러 문화현상의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는 문화철학자이다. 저서로 『행동지식』, 『김광석과 철학하기』, 『다시 민주주의다』(공저), 『세상의 붕괴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공저) 등이 있고, 논문으로 「인지문화철학으로 되짚어 본 언어폭력」, 「인지문화철학으로 되짚어 본 동성애혐오」, [사이버네틱스와 철학], [한국사회에 반말공용화를 묻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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