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델과 이재명의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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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델과 이재명의 대담
  • 김진영 부산대학교·정치학
  • 승인 2022.01.0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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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마이클 샌델 교수와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가 지난 연말 온라인 대담 한 것을 이제야 보았다. 대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여유가 없어 이 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유튜브 다시보기로 보았다. 주지하다시피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는 2010년 번역본이 나온 이후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차지하며 200만 부 판매 등의 기록을 경신한 바 있다. 샌델 교수는 지난해 모 TV 프로그램에 온라인으로 출연하여 한국 출연진들에게 원격강의를 하기도 하였다. 

대학교수들이 쓴 사회과학 서적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기가 일반적으로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서는 왜 그토록 많은 한국독자들을 끌어들였을까? 간단히 말해, 한국사회가 ‘정의’에 목말랐기 때문일 것이다. 바꿔 말해, 한국사회가 정의롭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 그만큼 많기 때문일 것이다. 정의에 대한 이런 목마름에도 불구하고 왜 어느 정치인도 샌델의 정의론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표명하고 논하는 사람이 없었을까? 평소 의아하던 차 이재명 후보의 샌델과의 대담은 대선 시기를 맞아 늦었지만 시의적절해 보인다.

정의와 공정은 이 시대 한국사회의 주요 화두이다. 전 세계가 신자유주의를 추종한 지난 40여 년 간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어 사회공동체에 심한 균열이 구조화되었다. 신자유주의를 선도하던 미국은 선진국 중 가장 양극화가 심한 나라가 되었고, 한국도 통계청 지표 (팔마비율 Palma ratio)에 의하면 OECD 주요 36개 국가 중 불평등 순위가 30위라고 한다. 숫자가 적을수록 평등한 나라이니 우리의 위치를 알 만하다. 미국도 한국도 신자유주의를 따른 지난 시간 동안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부자는 점점 더 부자가 되고 중하층은 상대적으로 점점 더 가난해졌다.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의 중추인 중산층은 점점 쪼그라들었다. 이에 더해 진행 중인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는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지금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는 당면한 가장 엄중한 문제이다.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정책이 필요하겠지만 이날 두 사람의 대담 중 기회의 평등, 그중 교육기회의 평등과 노동의 가치의 평등이 특히 주목할 만했다. 한국사회가 불평등을 해소하고 보다 공정한 사회가 되려면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란 이재명 후보의 질문에 대한 샌델 교수의 답은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유명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잘 살 수 있게 되어야 한다. 그리고 유명 대학에 과다하게 교육비 투자가 편중되어 있는 데 반해, 앞으로는 기술과 취업훈련에 교육재정 투자가 증가되어야 한다. 둘째, 노동과 기술직에 대한 사회적 존중이 필요하다. 일자리가 보장되고 모든 노동에 차별 없이 적정 임금이 보장되어야 한다. 샌델 교수는 미국의 경험에서 이런 주장을 하게 되었지만 한국의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고 했다. 오늘날 한국의 대학입시와 사교육의 과열된 풍조는 가히 전 세계에서 으뜸이다.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부유층 자녀가 유명 대학을 나오고 높은 보수를 받는 전문직에 종사하게 되는 사이클이 반복되며 부와 지위의 대물림이 이루어지는 ‘신(新)신분사회’가 되었다고 리처드 리브스(Richard V. Reeves)는 그의 ‘20대 80의 사회’에서 지적한다. 신(新)신분사회는 한국의 수저계급론과 같은 개념이다.

신(新)신분사회는 국가공동체의 균열을 심화시키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국가발전을 기약할 수 없다. 소수가 부와 지위를 독점하는 사회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창의력과 재능의 수원지를 고갈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인 입시위주 교육 시스템을 타파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재능과 인성, 기술훈련에 투자해야 한다. 샌델 교수의 제안을 한국에 적용하여 구체화시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서울 소재 소수 대학에 공적, 사적 교육비가 편중되는 시스템을 혁파하여 지방 거점 대학들을 육성하고, 전문기술을 익히는 대학들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은 꼭 지적하고 싶다.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없이 모든 노동이 평등한 임금을 받고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아야 한다. 교육개혁을 포함하여 정의와 공정을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논하는 국민적 공론의 장이 열려야 한다.

교육제도의 혁명적 개혁이 없이는 불평등과 양극화가 근본적으로 치유될 수 없다. 샌델 교수와의 대담에서 오고간 이야기들이 단지 선거용 이벤트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공정과 정의에 대한 대중들의 갈망에 대해 정치인들은 진지하게 답할 자세를 갖추기 바란다.


김진영 부산대학교·정치학

미국 시라큐스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국제정치경제와 국제관계를 연구하고 가르치며,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최근 저서로 <신자유주의의 쇠퇴와 그 이후: 자본주의 4.0과 베이징 컨센서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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