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주의자들에게 장자가 말한다, 당신은 도를 보지 못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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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주의자들에게 장자가 말한다, 당신은 도를 보지 못한다고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1.02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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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라 - 독사의 사유: 장자와 철학 | 이정우 지음 | 그린비 | 368쪽

 

이 책은 천하통일을 위해 칼을 들고 싸웠던 전국 시대와 돈을 가지고 싸우는 후기 자본주의 시대가 다르지 않다고 진단하며, 다시 꿈을 꾸게 하는 고전으로서의 『장자』에 주목한다. 『장자』, 「내편」의 주요 대목을 저자가 직접 번역하고 해설한 이 책은 특정한 통념(doxa)에 고착된 사유들을 해체하고, ‘그 사유들의 갈라짐을 응시하고 보듬는’ 파라-독사(para-doxa)의 사유로써 변신을 꿈꾸자고 말한다.

장자가 살던 전국 시대에는 천하가 통일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세상을 짓눌렀다. 천하가 다원적이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용인될 수 없는 시대였다. 장자는 이런 흐름의 한가운데에서 삶을 영위해야 했던 인물이다. 한 가지 믿음과 통념, 즉 독사를 강요하는 분위기에서 장자는 과감하게도 파라-독사의 사유를 전개한다. 장자의 파라-독사는 우리가 흔히 아는 것처럼 이율배반이 아닌 다양한 해답이 모여 있는 세계 전체, 혹은 질문 자체를 가리킨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어떤 문제의 답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주어진 문제의 답/독사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 독사 내에서는 문제인 전체, 즉 파라-독사를 볼 수가 없다. 이 세계가 도의 얼굴들 중 하나라면, 우리는 도 자체를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답으로부터 문제로 거슬러 올라가 도를 사유해 볼 수 있고, 도에 더 가까이 가려고 노력할 수 있다. 장자의 사유는 바로 이런 파라-독사의 사유이다.

책의 전반에 걸쳐 저자는 ‘존재론적 달걀’을 이야기한다. 본래의 자연은 달걀의 큰 구이다. 그러나 그 구에는 인간이 비어져 나올 가능성도 들어 있었다. 작은 구로서의 인간은 스스로를 주체로 만들어 큰 구를 위협했지만, 그 결과는 스스로의 멸망일 것이다. 큰 구와 작은 구 전체, 즉 도에 입각해 사유하고 살 때에만 존재론적 달걀은 온전할 것이다.

파라-독사의 사유와 존재론적 달걀, 이 개념들은 모두 도를 알 수 없는 세계에서 도를 추구하기 위한 도구이다. 우리는 세계를 초월해 도를 내려다볼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어떤 특정한 제약이기에, 우리는 결국 이곳에서 출발해 사유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제약과 더불어 도의 사유를 추구해 나가는 것, 이것이 어느 주관성이나 상대성에 머물지 않고, 그 주관성과 상대성 자체를 깨닫는 일일 것이다.

1부 「대붕이 품은 무하유지향의 꿈」은 「소요유」를 화이위조(化而爲鳥)와 무용지용(無用之用)에 초점을 맞추어 논하고 있으며, 특히 장자 사상에 대해 모순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비판적으로 답한다. 화이위조에 대해서는 ‘~되기’의 관점에서, 그리고 무용지용에 대해서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가져야 할 가치로서 논하고 있다. 화이위조와 인순(因循) 사이에 모순이 존재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곽상의 해석을 비판하면서 장자 사유에 모순이 없음을 논증하고 있다.

2부 「파라-독사의 사유, 존재론적 평등」은 장자 사유의 중핵을 담고 있는 「제물론」을 다룬다. 첫 번째 장 ‘도와 만물’에서는 사람퉁소, 땅퉁소, 하늘퉁소를 도와 만물의 관계를 표현하는 비유로 이해하고 이를 존재론적으로 해명한다. 두 번째 장 ‘삶의 힘겨움, 앎의 어려움’에서는 장자 사유의 기본 정향을 논하면서, 특히 성심(成心) 개념이 이중의 의미를 띠고 있음을 지적한다.

아울러 제논과 칸트의 이율배반, 플라톤과 헤겔의 변증법, 그리고 노자와 장자의 파라-독사를 비교한다. 세 번째 장 ‘파라-독사의 사유’에서는 본격적으로 파라-독사 개념을 논하면서, 이 개념에 입각해 도추(道樞) 개념과 양행(兩行) 개념을 해명한다. 네 번째 장 ‘도의 존재론’에서는 『장자』 가운데에서도 특히 난해한 이 대목의 텍스트를 논리적으로 풀어 해명한다. 다섯 번째 장 ‘도의 에티카’에서는 장자가 지향하는 근본적인 에티카가 무엇인지를 해명한다. 마지막 장인 ‘물화’에서는 호접몽(胡蝶夢)의 존재론적 의미를 해명한다.

3부 「만물의 기와 통하다」에서는 「양생주」를 읽으면서 장자의 기철학과 인식론을 해명하며, 특히 혜강 최한기의 통(通) 개념과 연계하여 논한다. 저자는 오늘날의 사회는 미셸 푸코가 분석한 생명정치(biopolitique)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사회이며, 이런 삶의 양식을 ‘양생술’로 전환해야 함을 역설한다.

4부 「도를 품고 세상을 살다」는 「인간세」를 분석한다. 순자는 장자가 “자연만 알고 인간을 모른다”고 했으나, 「인간세」에서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장자의 고민이 펼쳐진다. 장자는 모든 것이 용(用)에 의해 평가되는 이 세상, 위험하고 잔인한 이 세상을 마음속에 도를 품고서 살아갈 것을 설파한다.

5부 「통념을 넘어, 인정의 바깥으로」는 「덕충부」를 분석한다. 저자는 이 대목을 ‘타자의 철학’으로서 풀어 간다. 발을 잘리는 월형(刖刑)을 당해 세상 바깥으로 내쳐진 올자(兀者)가 오히려 도를 깨달은 인물로 나온다. 도가 없음이 정상적으로 보이는 이 세상에서 도를 깨달은 사람은 온몸이 뒤틀린 기형, 괴물로서 등장한다. 그러나 이 세상이야말로 사실은 도의 차원의 왜상(歪像)인 것이며, 장자는 덕으로 충만한 기형, 괴물의 인물들을 통해 이 점을 설파한다.

6부 「대종사-되기, 죽음의 달관」에서는 「대종사」가 논의된다. 저자는 『장자』의 여러 편들이 전반부와 후반부가 대조를 이루도록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이 점은 「대종사」에서 두드러지며, 이 편의 전반부가 대종사의 높은 경지를 그리고 있다면 후반부에서는 죽음에 처한 비참한 상황들이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대조는 사실 동전의 양면이다. 누군가가 대종사에 오른 가장 분명한 징표는 바로 죽음에 처했을 때이기 때문이다. 장자는 죽음의 달관을 설파한다.

7부 「‘허’를 품고 다스리는 이」는 「응제왕」을 독해하면서 장자의 정치철학을 논한다. 특히 장자 정치철학의 근간을 허(虛)와 혼돈(混沌)으로 보고서 그 도가철학적인 의미를 해명한다. 저자는 허와 혼돈을 「제물론」에 나오는 하늘퉁소로 해석한다. 하늘퉁소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것에 인간의 기준을 적용해 구멍을 뚫는다면 허와 혼돈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 오히려 허와 혼돈에 기반해 정치를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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