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의 미신들…·지워진 믿음을 찾아가는 ‘유리알 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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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미신들…·지워진 믿음을 찾아가는 ‘유리알 유희’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1.02 1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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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신의 연대기: 지워진 믿음의 기록 | 이창익 지음 | 테오리아 | 544쪽

 

미신이란 사람들이 사물에 저장하고 공유하던 특수한 감정, 집합표상이다. 또한 미신이란 불안과 공포의 공동체이다. 우리의 종교적, 사회적 가치에 입각하여 다른 종교적 가치를 바라볼 때 미신이 탄생한다. 어떤 경우든 미신은 적합성이나 적절성에 대한 물음과 연결된다. 미신은 종교이면서도 정치에 속하는 것이자, 세속 사회에 들러붙어 분리되지 않는 끈적끈적한 종교이다.

미신이 마음속에서만 살고 있다면 우리가 일부러 미신을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미신이라 불리는 믿음은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늘 행동으로 표출되어 현실 질서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미신을 문제 삼는 것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도 여전히 ‘우리의 미신들’이 형성하는 체계 안에 갇혀 있을 것이기 때문이고 ‘우리의 미신들’이 지금 여기 현실 질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를 형성한 미신들을 살펴본다. 일제강점기는 미신이라 불리는 믿음이 특히 자연스럽게 유통되고 소통되던 세계이기 때문이다. 기우 의례, 인육포식, 풍장, 구타 치료, 백백교… 이러한 믿음이 일제강점기를 형성한다.

일제강점기의 사람들은, 산에 올라가 집단 방뇨를 하고 암장을 발굴하고 시장을 이전하고 용을 만들어 빌며, 기우제를 지냈다. 나병을 사람이 사람을 먹어야만 치료가 가능한 천형으로 인식하였다. 천연두는 역신이 일으킨 질병이며 사체를 풍우에 노출하면 역신이 떠난다고 믿어, 풍장을 하였다. 정신병은 영적 존재가 인체에 들어와 질병을 일으키는 것이므로 이 존재를 몸 밖으로 쫓아내면 병이 치료된다고 믿었고 퇴귀(退鬼)의 방법으로, 신이 내리기 좋은 물체인 복숭아나무로 만든 신장대[神將竿]로 병자를 구타했다.

1937년에, 살해당한 사체 304구가 발견되었다. 미발견 사체까지 계산하면 120여 건의 살인 사건을 통해 총 346명이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다. 백백교(白白敎) 교주와 교 간부의 살인 만행이었다. 백백교는 유사종교, 사교(邪敎), 요교(妖敎), 사이비종교의 대명사가 되었다.

도대체 왜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믿음을 지녔을까? 우리는 엉뚱하고 황당하고 무지몽매한 사람들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믿음조차 없었다면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누리기 힘들었던 세계를 상상해야 한다. 그러한 믿음이라도 있어야만 유지될 수 있었던 세계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다. 모든 평균적 가치를 침묵시키는 공포와 절망과 슬픔이, 현 세계를 부정하는 강력한 힘의 응결체가 이러한 믿음의 실체일 것이다.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 혹은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의 믿음은 미신이라 불린다. 우리는 과학이라는 여과지로 종교를 거를 때 여과지 위에 남는 찌꺼기를 미신이라 부르곤 한다. 근대적 과학과 근대적 종교가 담지 못하는 믿음은 미신이라 불린다. 미신은 결국 역사적으로 형성된 범주이다. 미신은 존재론적, 인식론적 범주가 아니라 정치적인 범주이다. 근대 세계가 지워버린 믿음은 미신이라 불린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신문기사, 경찰 기록, 재판 기록 등을 살펴 당대 도대체 무엇을 미신이라 비난하고 있는지 그 현장에 입회하여 보고자 한다. 날것의 자료를 통해 당대의 목소리로 상상하며 일종의 학문적인 ‘유리알 유희’를 하고자 한다. 지워진 믿음, 미신을 기록한 이 연대기를 통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얼마나 많은 믿음과 실천을 지우고, 얼마나 많은 종교를 삭제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면서 탄생한 세계인지를 감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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