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기 미국과 소련이 만든 플루토늄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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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기 미국과 소련이 만든 플루토늄 유토피아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1.0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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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루토피아: 핵 재난의 지구사 | 케이트 브라운 지음 | 우동현 옮김 | 푸른역사 | 784쪽

 

원자력은 인간에게 전력, 국가 안보를 위한 핵무기 재료 등 여러 가지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에 따른 비용이 만만찮다.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질병,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에 따른 엄청난 후유증은 원자력이 정말 저렴하고 안전한 평화적 기술인가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원자력 재난의 비교사를 통해 찬핵과 반핵의 이분법을 넘어 원자력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효용(국가 안보를 위한 핵무기, 전력, 플루토피아 시민의 경우 엄청난 복지)이 특정한 사람들에게 개인화되고 비용(저선량 피폭으로 인한 질병과 고통)은 사회화되는 방식을 되돌아보게 도와준다.

저자 케이트 브라운Kate Brown은 ‘플루토늄plutonium’과 ‘장소topia’ 또는 ‘이상향Utopia’의 합성어 ‘플루토피아Plutopia’를 만들어 냉전기 미·소 양국의 지도자들이 “엄청난 규모의 핵탄두와 그 중핵인 플루토늄 구球를 비축하기 위해”(5쪽) 어떻게 비용을 최소화했는지, 어떻게 비판에 반박했는지, 어떻게 핵가족 노동자들의 불만을 잠재웠는지 등을 꼼꼼하게 살핀다.

관습적으로 냉전은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라는 진영 간의 대결로 설명된다. 하지만 모든 부문에서 대결만으로 점철되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미·소가 핵무기 개발을 위해 만든 플루토늄 도시는 거의 모든 부분 동일했다. 미국과 소련의 플루토늄 생산 공장 근처 지역사회들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바로 워싱턴의 리치랜드Richland와 우랄의 오죠르스크Ozersk이다.

냉전기 미국과 소련은 군사·복지 부문에서 경쟁하면서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공장 주변에 이상향에 가까운 복지 도시 ‘플루토피아Plutopia’를 지었다. 플루토피아 주민들은 조국을 위해 플루토늄을 만들면서 풍요(소비자적 권리)를 제공받았다. 하지만 그 대가로 건강(생물학적 권리)과 자치(정치적 권리)를 포기해야만 했다.

원자력 시설에서의 끔찍한 사고와 인근으로의 방사성 물질 유출, 그리고 그에 대한 대비와 감시의 부재는 비교적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다. 반면 저준위 방사성 물질의 유출과 그것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었을 경우 발생하는 재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이 책은 이 같은 일상적/저준위 원자력 재난의 연대기를 비교사적으로 보여준다.

나아가 저자는 플루토피아 내부의 시민/인민들이 복지 유토피아를 누리는 대가로 자신들의 시민적·정치적·생물학적 권리를 “자발적으로” 내놓았다는 사실을 새롭게 밝힌다. 미국과 소련의 플루토피아 주민들은 지역 자치와 선거, 국가적 행정 제도상의 편입, 구조적으로 피폭되지 않고 건강하게 살 권리를 정부 주택 보조금, 풍부한 재화의 구입, 우수한 치안, 자녀 교육 혜택 등의 편익과 맞바꿨다.

이러한 목소리는 냉전기와 탈냉전기에 이르기까지 국가 안보의 수사修辭를 통한 지역 내 원자력 시설의 유지 강화(리치랜드)와 외부인들의 접근과 거주를 차단하는 폐쇄 도시closed city 선호(오죠르스크)로 나타났다. 그러한 풍경 안에서 원자력 시설 근처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더 큰 피해를 영원히 받게 되었다. 하지만 배상이나 지원보다는 오히려 그들에 대한 편견과 무시만이 강화됐다.

책의 전반부에 특히 잘 드러나듯, 플루토피아의 역사는 성별화된gendered 노동의 역사이기도 하다. 미국과 소련을 막론하고 방사성 용액을 증류하고 채집하는 일의 최전선에는 플루토피아에 거주했던 여자 노동자들이 존재했다. 미국의 거대 기업 중 하나인 제너럴 일렉트릭GE과 소비에트의 원자력 산업 공히 조금 더 피폭의 가능성이 높은 일에 여성을 배치했다. 그러한 노동의 보이지 않는 분업은 젠더에 더해 계급적으로 그리고 인종적으로도 진행되었다.

이 책은 어느 한 차원의 방법론에 국한되지 않고, 비교사, 도시사, 환경사, 냉전사 등 역사학의 각종 세부 방법론을 절묘하게 배합하며 창의적이면서도 모범적인 역사 연구의 선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저자는 특히 인간 행위자(설계가, 계획가, 정책결정자 등)가 구획한 인위적인 공간들과 그 사이에 놓인 장벽, 철조망, 관문 등이 얼마나 쉽게 비인간 행위자들(방사성 입자, 피폭된 풀을 먹은 가축의 고기, 공기와 물의 대류 등)에 의해 무시되고 지켜지지 않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방법론은 피폭의 범위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한편 저선량 피폭의 주된 피해자가 대개 사회적 최약자이자 플루토피아 근처에 사는 “아랫바람사람들”과 “하류사람들”임을 보여주면서 사회사, 재난사, 핵 역사의 통찰도 제공한다. 아울러 폐쇄 도시에 출입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방법을 통해 그 도시 주민들, 주변 거주민들과 진행한 인터뷰는 문서보관소 자료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 역사상을 보충해주며 때때로는 강화하기도 한다.

미국의 경우 플루토피아는 캘리포니아, 텍사스, 조지아, 아이다호 및 뉴멕시코 등지에서, 소련의 경우 우랄, 카자흐스탄, 시베리아, 유럽 러시아의 일부 지역에서 재현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지구상에서 플루토늄을 생산하는(재처리하는) 공장이 있는 곳 근처 플루토피아의 존재를 합리적으로 의심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척도 또한 제공한다.

이 책의 백미는 시민/인민이 수행하는 자체적 연구의 타당성을 문서보관소 자료와의 비교를 통해 보여주는 부분이다. 대개 “과학의 언어”를 구사하는 과학자들은 “학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는 권력을 가진 이들의 심기를 거슬리지 않게 여러 전술들을 구사하며 보수적으로 학술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 나오는 원자력 재난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도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러한 구조적인 힘에 맞서, 책에 등장하는 여러 행위자들은 미국과 소련을 막론하고 자신과 가족, 친구, 주변인들의 건강 영향(저선량 피폭)에 대한 상세한 조사를 수행하고 기록하고 이를 공개하고 정당한 배상을 받으려고 했다. 물론 그러한 시도는 “과학의 언어”를 쉽사리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은 민중의 과학을 수행하는 이들이 막대한 어려움과 난관에도 불구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측면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원자력 시대의 “선구자들”의 행동은 원자력 재난사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는 이들에게 영감과 용기, 지지를 건네주고, 원자력 시설을 운영하는 정부와 전문직 계층을 상대로 한 더 많은 민주주의와 투명성에 대한 요구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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